금융감독원이 상급 기관인 금융위원회로부터 벗어나겠다면서 ‘독립 계획서’를 곧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가운데 간만에 금감원 우군(友軍)이 등장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다. 입법조사처는 금감원을 금융위로부터 독립시키되 국회 통제를 강화하고 각종 책임을 확실히 물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흥미로운 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윤 원장의 측근이었던 원승연 전 금감원 부원장 등이 함께 쓴 논문까지 인용하며 논리를 폈다는 것이다.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책임 때문에 금감원 권한이 약해지고 ‘예속’이 더 심해질지, 아니면 ‘이제라도 제대로 감독하라’면서 권한을 더 늘려줘, 윤 원장이 학자 시절부터 가져온 방안이 실현될지 관심이 쏠린다.

윤석헌(왼쪽) 금융감독원장과 은성수 금융위원장/국회 사진기자단

◇"엑셀·브레이크 분리해야"

국회 입법조사처 김경신 금융공정거래팀장과 이수환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은 12일 ‘우리나라 금융감독 체계 개편 필요성 및 입법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라임·옵티머스 사태 재발을 방지하고, 금융 감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현행 금융정책·감독 체계의 한계를 직시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진이 꼽은 가장 큰 문제는 금융위원회가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을 함께 맡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감독 집행 기구인 금감원 예산 등을 통제하고 있다. 금융 산업을 키우기 위한 ‘엑셀’과 금융 산업의 문제를 막기 위한 ‘브레이크’가 한 기관에 쏠려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진은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을 금융위원회라는 하나의 조직이 수행하면 ① 금융정책이 감독정책을 압도할 가능성이 있고 ②감독 정책을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 확보라는 본연의 책무보다는, 경기 대책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금융위-금감원 업무 분담, 남 탓 공방으로 이어져"

금융감독업무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나눠 맡는 것 역시 문제라고 했다. 현재 금융감독과 관련해 규정을 만들거나 고치는 등 ‘감독 정책’은 금융위원회가 한다. 보고·조사 등 ‘집행’은 금감원이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금융 감독에 대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금융위·금감원이 서로 탓을 하며 면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실제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금감원의 감독 실패를 넌지시 거론한다. 반면 금감원 내에서는 “사모펀드 사태 책임은 금융위 규제 완화 탓 아니냐”는 기류가 강하다. 서로가 남 탓 하고 있는 모양새다. 연구진은 또 “금융감독의 정책과 집행이 분리된 현 체제 하에서는 감독 집행에 있어서 혼란과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했다.

◇"금감원 독립시키고 국회 통제 강화"

연구진은 “금융 산업 정책에 관련된 업무는 금융위원회가 수행하되, 금융 감독 업무는 금융 감독 기관이 독립적으로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마디로 금감원을 독립시키자는 것이다.

특히 금감원의 예산·인사를 독립시키자고 제안했다. 현재 금감원의 예산·결산은 금융위 승인을 받게 돼 있다. 그렇다고 ‘방만 경영’이 이뤄지도록 할 순 없으니, 업무 관련 예산에 대해 국회 통제를 받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현재 한국은행은 일부 예산은 기획재정부 장관 승인을 받고, 나머지 예산은 국회 통제를 받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신 금융 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장치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국회를 통해 금융 감독 기관에 설명 책임을 부담하게 하고, 평가 보고서를 외부 전문가·감시단체에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또 금융 감독 기관의 부정부패 등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강화하고, 민사적인 책임을 묻는 방안도 거론했다.

◇간만에 금감원 우군 등장

앞서 윤석헌 금감원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감독 당국의 독립성 문제에 대한 질의를 받고 “조만간 금융감독원 독립 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은 (금융위에) 예산·조직·인력이 다 예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금융위와 금감원이 각각) 금융 산업 육성과 감독이라는 상치되는 목적을 같이 안고 있다 보니 출발에서부터 문제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같은 자리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독립성이 보장된) 한국은행도 (예산에 대해) 기획재정부 통제를 받는다”면서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기획재정부의 통제를 받도록 하면 마음에 들겠냐”고 맞불을 놓기도 했다.

윤 원장은 학자 시절에 금융위를 해체하고, 금감원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실제 입법조사처 연구진은 이번 보고서에서 윤 원장의 학자 시절 논문을 인용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조만간 국회에 ‘독립 계획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 참고문헌 중 일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공저자로 참여한 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