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억원 넘게 신용대출을 받은 후 1년 이내에 규제지역에 있는 집을 사면 대출을 회수당하게 된다.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쓴다는 뜻)’로 집을 사는 사람이 늘어나자, 금융 당국이 강력한 규제를 들고나온 것이다. 적어도 신용대출을 끌어다 집 사는 일만은 막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앞서 신용대출 증가세가 가팔라지자 금융 당국에선 “영끌 수요가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 추정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규제에 들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해왔다. 돈에 꼬리표가 달려 있지 않아, 신용대출 받은 돈을 집 사는 데 썼는지 가계 생활자금으로 썼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난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금융위는 단순한 해법을 찾아냈다. 신용대출 이후 집을 산다면, 해당 신용대출이 주택 구입용도로 쓰였다고 가정하고 회수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신용대출까지 끌어 쓰지 않으면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상황을 만들어놓고, 지금 와서 대출조차 못 하게 ‘사다리 걷어차기’에 나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억 이상 신용대출 후 집 사면 대출 회수…‘마통’도 포함
금융위원회는 13일 이런 내용을 담은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한 확장적 정책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확대됐다”면서 “현 시점에서 적정 수준의 선제적인 가계대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금융위는 오는 30일부터 1억원 초과 고액 신용대출에 대한 사후 용도 관리에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한 자산시장 투자 수요를 억제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규제 시행일 이후 신용대출 총액이 1억원을 넘을 때, 대출 후 1년 내 규제 지역의 주택을 구입하면 해당 신용대출을 회수하기로 했다.
다만 이미 신용대출을 1억원 넘게 받아 쓰고 있는 사람은 회수 대상에서 빠진다. 규제 적용 대상은 규제 시행일(30일) 이후 신규로 1억원 넘게 신용대출을 받거나, 신용대출을 추가로 받아 1억원이 초과하게 된 경우다. 예컨대 지금 4000만원을 빌려쓰고 있고, 다음달 7000만원을 추가로 신용대출을 받는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내년 1월에 집을 사면, 규제 시행일 이후 빌린 7000만원은 즉각 회수된다.
만약 이미 신용대출을 1억원 넘게 받았는데, 규제 시행일(30일) 이후 만기를 연장해야 하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는 ‘기존 대출’로 여겨져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금융위는 “기존 신용대출의 기한을 연장하는 경우, 금리 또는 만기 조건만 변경하는 경우 등은 규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마이너스 통장도 이 규제 대상에 들어간다. 예컨대 다음달 1억원 한도로 마이너스 통장을 뚫고, 몇 개월 내 규제 지역의 아파트를 샀다고 해보자. 그러면 전체 1억원 모두가 회수 대상에 들어간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실제 빌려쓰고 있는 돈이 10만원, 100만원이더라도 그렇다. 금융위는 “실제로 대출한 금액이 아니라 금융기관과 약정 당시 설정한 한도금액을 대출총액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연봉 8000만원 이상 직장인, 주담대 받으면 신용대출 한도 줄어든다
금융위는 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강화하기로 했다.
DSR이란 연 소득 대비 전체 가계부채 원리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5000만원을 벌어 2000만원을 빚 원금·이자 갚는 데 쓴다면, DSR은 40%로 계산된다. 현재 DSR 규제는 ‘금융회사’ 단위로 적용된다. 예컨대 은행은 평균 DSR을 40%로 관리하면 된다. A씨에게 내준 대출이 DSR 20%면, B씨에게는 DSR 60%쯤 대출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지난해부터 특수한 경우에 한해 빌린 사람(차주) 단위로 DSR 규제(은행 40%, 비은행 60%)를 적용하기로 했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구입하려고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다. 규제 지역의 상대적으로 고가인 아파트를 사는 사람에게는 신용대출 또는 주담대 한도를 빡빡하게 하기로 한 것이다.
이달 30일부터는 이처럼 빌린 사람 단위로 DSR 규제를 적용하는 대상을 넓히기로 했다. 앞으로 연 소득 8000만원 넘는 사람이, 신용대출을 1억원 넘게 받을 때도 차주 단위 DSR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고소득자가 이미 주담대를 받았다면, 이후 은행에서 “신용대출 한도가 줄었다”는 안내를 듣게 된다. 반대로 신용대출이 1억원 넘게 있다면, 주담대 한도가 기존 대비 줄어들 수 있게 됐다.
금융회사의 고(高) DSR 차주 비중 규제도 강화된다. 현재 시중은행은 DSR 70%가 넘는 대출을 전체 15%, 90%가 넘는 대출을 전체 10%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 앞으로는 DSR 70% 이상 대출 비중을 전체 5%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 또 90%가 넘는 대출은 3%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 각각 3분의 1토막 나는 셈이다. 이제 자산은 많지만 소득이 얼마 없는 사람 등에 대한 대출을 줄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신용대출 현황 매달 점검…증가폭, 지난달 절반 수준 관리
금융위는 당장 다음주 월요일(16일)부터 시행되는 규제도 발표했다. 앞으로 은행권은 자체 신용대출 관리 목표를 만들어야 하고, 금융 당국은 이를 지키는지 매달 점검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신용대출이 급증하기 이전 수준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급증하기 이전 수준’이란 게 어떤 의미일까.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 국장은 “(코로나 사태 이후) 신용대출이 급증하기 이전에는 신용대출 증가액이 월 2조원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면서 “은행별 사정이 제각각이라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긴 어렵지만, 그 수준에 맞춰서 관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신용대출 증가액은 지난 8월 6조3000억으로 정점을 찍고, 9월 3조5000억원, 10월 3조9000억원 수준으로 다소 내려왔다. 금융위는 앞으로 지난달 대비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지도록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셈이다.
금융 당국은 또 “소득 대비 과도한 신용대출이 취급되지 않도록 상시 점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 소득 2배가 넘는 신용대출’을 예시로 들었다. 앞으로 신용등급이 어떠하든, 연 소득 2배 정도 대출받는 건 어려워지는 것이다.
◇내년 1분기에는 더 큰 폭탄 온다
금융위는 장기 추진 과제로 차주의 상환 능력에 중심을 둔 심사 제도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DSR 규제를 전면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 등을 담은 ‘가계부채 관리 선진화 방안’을 내년 1분기 중 발표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현행 금융 회사 단위의 DSR 규제를, 차주 단위의 DSR 규제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 주담대 취급시 적용되는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차츰 DSR로 대체하기로 했다.
또 금융회사 단위의 DSR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해 40% 수준으로 하기로 했다. 현재 시중은행은 평균 DSR을 40% 이내로 관리하지만, 다른 금융회사들은 훨씬 넉넉하다. 특수·지방은행 80%, 카드사 60%, 보험사 70%, 저축은행·캐피탈 90%, 상호금융 160% 등이다.
이처럼 DSR 규제를 강화하면 청년층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소득은 얼마 안 되지만 앞으로 월급이 늘어나며 빚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위는 미래 소득창출 가능성이 높은 청년층에 대해선 미래 예상 소득을 추가적으로 감안하는 등 DSR 산정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