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빅테크 플랫폼의 보험 판매·중개 서비스에 대한 판매 규제 도입이 논의된다. 은행의 보험 판매(방카슈랑스)처럼 판매 수수료나 특정사 상품 판매 비중 등에 대해 규제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변액보험이나 일반 손해보험 시장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 새로운 보험사가 등장하도록 촉진하는 방안도 추진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25일 오전 도규상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산업 미래전망과 경쟁도 평가’ 회의를 열었다. 앞서 금융 당국은 지난 2018~2019년 금융산업 경쟁도평가위원회를 꾸려 보험업·부동산신탁업·은행업·금융투자업·저축은행업 등에 대해 경쟁도 평가를 진행한 바 있다. 특정 업종이 충분히 경쟁적인지, 아니면 독과점 상태인지 따져 진입 규제 완화 필요성 등을 따지는 것이다.
금융위는 한기정 서울대 교수(위원장)를 포함한 12명의 2기 경쟁도평가위원을 위촉했다. 연내 보험업에 대한 평가를 마치고, 내년 상반기 신용평가업, 내년 하반기 은행·신용카드 등 순서로 평가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도규상 부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며, 고객의 경험이 중요해지는 ‘빅블러’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면서 “현재의 진입과 영업규제 등이 디지털 금융 촉진과 혁신에 부합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플랫폼 보험 판매 시 공정 경쟁하도록 해야”
위원회는 각 산업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분석하는 것 이외에도, 금융산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 개선 방향을 검토하기로 했다. 보험산업에서 집중 논의될 주제는 ‘플랫폼의 보험업 진출 환경 속에서 공정경쟁 촉진방향’이다.
이 이슈는 지난 7월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초록 공룡’ 네이버가 보험 판매 시장 진출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다. 당시 네이버는 손해보험업계 2~4위사인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과 제휴해 자동차보험 비교 서비스를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특히 논란이 된 건 네이버가 내건 조건이었다. 이들 업체의 자동차보험 견적을 비교해 보여준 뒤, 새로 계약이 체결되면 보험료 11%를 광고비 형식으로 받아 가는 방식이 거론됐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러다 네이버 같은 빅테크에 상품을 납품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금융위는 “향후 핀테크, 빅테크 등 플랫폼의 보험 판매·중개 서비스 진출은 가속화될 것이며, 보험회사와 플랫폼 간 다양한 제휴·협력도 확대될 전망”이라면서 “산업 특성상 나타날 수 있는 우월적 시장 구조에 대한 규율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예컨대 시장 지배력을 통한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해 소비자들이 내는 보험료가 올라가거나, 보험 판매 시장의 경쟁 감소(독과점)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기존 채널과의 공정한 경쟁 질서가 중요하다”고 했다. 예컨대 은행의 보험 판매(방카슈랑스) 시에는 판매 수수료, 특정사 상품의 판매 비중 등에 대해 다양한 규제가 도입·운영되고 있다.
◇”생존·변액보험, 일반손해보험은 경쟁 부족”
금융위는 이날 보험연구원이 작성한 보험업 경쟁도 평가 초안을 공개했다. 보험산업이 대체로 경쟁적이거나 이윤이 별로 남지 않는 상황이지만, 일부 보험은 경쟁이 부족하다는 내용이다.
초안에 따르면, 생명보험시장 전체의 HHI(허핀달-허시먼) 지수는 1037로 분석됐다. HHI 지수는 각 참여자들의 시장 점유율(%)의 제곱 합으로 계산하며, 1200 미만이면 경쟁 시장으로 분류된다. 1200~2500은 집중시장, 2500 이상은 고(高)집중 시장으로 본다. 생명보험시장이 대체로 경쟁 시장이라는 얘기다.
다만 세부 종목별로 생존보험(건강·상해 등), 변액보험 등 저축·자산관리 보험종목에서 ‘집중 시장’으로 판단했다. 특히 변액보험은 작년 HHI지수가 1643으로 2017년(1191) 대비 상승하는 추세다. 따라서 변액보험 및 생존보험 시장에서 진입 장벽을 낮추는 내용의 영업규제 개선 방안 등이 검토될 예정이다.
손해보험업에서는 일반손해보험은 ‘집중시장’, 자동차·장기손해보험은 ‘경쟁시장’으로 평가했다. 앞서 2018년 경쟁도평가위원회는 일반손해보험에 경쟁이 부족하기 때문에 소액·단기 보험사 등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금융위는 “새로운 진입 규제 완화가 의도된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판매채널·상품개발·영업행위 등에 대한 종합적인 규제 완화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