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의 일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시장 전문가들은 “친환경 에너지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8년 뒤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조언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이제 석유·가스 등 전통 산업에 투자해야 하며, 친환경 에너지는 잠시 관심 투자처에서 빼두라는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오바마 정부 시절 대표적인 전통 에너지 산업 주식인 엑손모빌 주가는 무난하게 상승했다. 2013년 6월에는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라서기도 했다. 반면 친환경 에너지를 대표하는 태양광 에너지 지수는 바닥을 기었다.
반면 트럼프 정부에서 엑손모빌 주가는 고꾸라졌다. 심지어 지난 8월에는 다우존스 지수에서 퇴출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반면 태양광 에너지 지수는 트럼프 정부 말기에 오히려 무섭게 치솟고 있다.
한국에 ETF(상장지수펀드)와 ELS(주가연계증권)를 처음 도입한 배재규 삼성자산운용 부사장(CIO)은 “전문가들 예측조차 빗나가기 쉽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예측에 기반한 투자 대신, 주가 지수에 장기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4~5일 온라인(www.chosun-moneyexpo.co.kr)으로 열린 ’2021 대한민국 재테크 박람회'에서 ‘한국 ETF·ELS 오리진이 전하는 성공 투자’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예측 버리고 시장에 장기 투자하라”
배 부사장은 이날 “개인 투자자들은 대부분 시장 전망·예측에 기반해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환율·금리가 어떻게 바뀔 것 같은지, 주가 지수는 얼마나 오르거나 내릴지, 향후 정부 정책에 따른 수혜주는 무엇인지 등을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는 전문가들의 예측조차 빗나가기 쉽다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사례를 든 오바마·트럼프 정부 정책에 따른 에너지 산업 수혜주에 대한 예측이 어긋난 게 대표적이다.
앞으로 어느 산업·종목이 유망할지 등을 예측해 좋은 수익을 내려는 걸 ‘액티브(active) 투자’라 부른다. 배 부사장은 “시장에서는 이미 액티브 투자 대신, 이론적인 방법으로 입증된 방법·전략에 따라서만 투자하는 패시브(passive) 투자가 대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에서도 지난 10년간 액티브 펀드에서는 91조원이 유출됐다. 반면 패시브 펀드에는 14조원이 들어왔다. 그는 “투자 전문가들조차도 시장에 대한 전망·예측에 의존하지 않고 투자하는 패시브 투자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미국 대통령 선거에 따른 수혜주를 찾지 않고 미국 주식시장 전체(S&P500 지수)에 조금씩 쪼개 투자했다면 성과가 어땠을까. 어느 대통령이든 가리지 않고 주식 시장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해왔다는 게 배 부사장의 조언이다.
그는 미·중 무역분쟁을 예로 들면서 “미·중 갈등은 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있었다”면서 “그게 미칠 영향을 두려워했다면 올해 초에도, (코로나 사태가 터진) 몇 달 전에도 투자를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올해 주식 시장 활황에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배 부사장은 “주식 시장은 짧게 보면 굴곡이 있지만 길게 보면 지속해 성장할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 투자하면 손실을 볼 수도, 더 이득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점을 늘려서 보면 투자는 장기간 지속해야 하는 게 맞다”고 했다.
◇ “여러 자산에 분산 투자하면 ‘패닉 손절’ 줄인다”
배 부사장은 광범위한 분산 투자를 강조했다. 국내 주식에만 투자하지 말고 미국 등 다른 나라 주식에도 적절히 나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코스피 지수(배당 재투자)는 연평균 수익률이 4.5%였지만, 미국 S&P500 지수는 9.8%였다”면서 “여기에 환율 변동에 따른 효과까지 고려하면, 투자 성과가 4.5배 가까이 난다”고 했다. 한국 주식에만 투자했다면 이런 과실을 못 따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미국 주식에 100% 투자했다면 연평균 수익률이 13.5%였다. 반면 국내 주식 30%, 미국 주식 30%, 국내 채권 40%로 분산 투자했을 땐 수익률이 6.7%였다. 그런데도 배 부사장은 “주식에만 투자하지 말고 채권 같은 자산군에도 분산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주식에만 ‘올인’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에 대해 배 부사장은 “수익률만 생각하면 미국 주식에만 전액 투자하는 게 좋았을 수 있지만 변동성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이 나쁠 때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떨어지는 정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 부사장은 “만약 손실이 30% 넘게 나오면 상당수 투자자는 못 견디고 손절매를 할 것”이라면서 “잘 분산돼 변동성이 적은 포트폴리오를 보유했다면 손절매를 하지 않고 시장이 회복되길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분산투자가 ‘패닉 손절’을 막아주고, 장기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 상황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예컨대 20~30대는 위험자산인 주식 비중을 70%, 안전자산인 채권 비중을 30% 정도로 가져갈 수 있다. 반면 60대 이상 고령층은 안전자산인 채권 비중을 70% 정도로 높이는 게 맞을 수 있다.
배 부사장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투자법이 지루해 보일 수 있다”면서도 “짧은 기간에 수익을 거두려고 하지 말고, 평생에 걸쳐 부(富)를 증진한다는 관점에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