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월부터 병원에서 비급여 진료를 많이 받으면 보험료가 4배 뛰고, 병원에 덜 가면 보험료를 깎아주는 새 실손보험이 나온다. 실손보험이 ‘팔면 팔수록’ 손해보는 상품이 될 정도로 보험사 적자 문제가 심각해지면서다. 일부 보험사는 젊은 층에게도 혈액 검사를 의무화하는 등 가입 문턱을 높여 문제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도수치료나 각종 주사제 등 비급여 진료를 중심으로 과잉진료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비급여를 과도하게 받는 상위 1.8%의 보험료를 확 올려받겠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실손보험 혜택을 소폭 줄이는 대신, 보험료 부담 역시 줄이는 식의 방향을 잡았다.
◇과잉진료에 실손보험 적자 눈덩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4세대 실손보험 상품이 내년 7월부터 출시된다고 9일 밝혔다.
실손보험 상품을 개편하는 이유는 보험사 입장에서 ‘팔면 팔수록 손해나는’ 보험이 됐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은 3800만 국민이 가입한 ‘국민보험’이다. 그러나 2017~2020년 쌓인 적자액만 6조2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실손보험 손해율은 131.7%다. 손해율이란 고객한테 받은 보험료 대비 내준 보험금의 비율을 뜻한다.
적자 상품으로 전락한 이유는 일부 환자와 의사들이 비급여 위주로 과잉 진료를 받거나 유도하기 때문이다. 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 행위를 말한다. 가격이 비싸거나 비필수 의료 행위인 경우가 많다. 가입자 셋 중 둘(65.7%)은 한 해 보험금을 한 푼도 안 받고, 병원 자주 가는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 절반 이상(56.8%)을 타는 구조다.
그러면서 보험사들은 실손보험을 ‘덜’ 팔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기존 실손보험 판매사(30개사) 중 11곳(생명보험 3개사, 손해보험 3개사)이 실손보험 판매를 접었다. 금융 당국은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국민 의료비 부담이 가중되고 실손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될 것”이라고 했다.
◇1년 비급여 300만원 이상 받으면 보험료 4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금융 당국이 마련한 새 상품의 핵심은 비급여 보험료 차등제 도입이다. 기존 실손보험은 급여·비급여를 함께 보장받거나, 일부 비급여(도수·증식·체외충격파,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만 따로 떼어서 가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번 상품은 급여만 보장받을지, 아니면 급여와 비급여를 함께 보장받을지 소비자가 선택한다.
비급여 특약 보험료는 비급여 의료를 얼마나 이용하는지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비급여 보험금을 한 푼도 안 탄 가입자(전체 73% 추정)는 보험료가 5% 할인된다. 비급여 이용량이 100만원 미만인 2단계 가입자(전체 25% 예상)는 할인·할증이 없다. 보험금 상위 2% 가입자는 보험료가 오른다. 비급여 보험금 100만~150만원이면 2배, 150만~300만원이면 3배, 300만원 이상이면 4배가 될 전망이다.
다만 실제 할인·할증은 통계가 확보된 이후부터 시행된다. 금융 당국은 출시 3년 이후부터 할인·할증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불가피하게 병원에 자주 갈 수밖에 없는 암 환자, 치매 환자 등에 대해선 할증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새 상품은 환자 자기부담금도 기존 상품보다 많다. 현재 실손보험에서는 급여 10~20%, 비급여 20%가 환자 본인 부담이다. 반면 새 상품에선 급여 20%, 비급여 30%가 된다. 또 통원 치료 시 공제금액도 올라간다. 지금은 외래 1만~2만원, 처방 8000원이다. 새 상품은 급여 1만원(단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2만원), 비급여 3만원이 된다,
새 상품은 자기부담금이 올라가는 대신 보험료를 기존 상품보다 낮췄다. 지난 2009년 이전에 판매된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보다는 약 70%, 2009~2017년 표준화 실손보험보다는 약 50%, 2017년부터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는 신(新)실손보험보다는 약 10% 저렴할 예정이다. 금융 당국은 또 “기존 상품의 높은 손해율을 감안할 때, 기존 상품과의 보험료 격차는 향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그래서 갈아탈까, 말까
내년 7월 이후 신규 가입자는 원하든 원치 않든 새 실손보험 상품만 가입할 수 있다. 아예 과거 상품을 선택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다만 이미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기존 보험을 유지할지, 아니면 새 상품에 가입할지 선택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기존 실손보험 가입자가 원하는 경우, 새 상품으로 간편하게 전환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심사로 전환을 허용하는 방안 등이 검토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본인이 평소 병원 이용 횟수가 어떠한지 등을 따져서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새 상품은 보험료가 싼 대신, 혜택도 그만큼 적다. 따라서 병원을 덜 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소비자라면 새 상품이 매력적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병원도 안 가는데 보험료가 계속 오른다’는 불만을 가졌던 소비자라면 전환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현재 비급여 진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소비자라면 기존 상품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