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서 집값이 치솟으면서 남몰래 속앓이하는 공공기관이 있다. 집을 담보로 노후 자금을 대주는 ‘주택연금’ 제도를 담당하는 주택금융공사다.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뛰자 담보물(주택) 가치만큼 연금을 못 받는다고 생각해 주택연금을 해지하는 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 번 주택연금에 가입한 뒤에 해지하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해지하면 3년간 재가입이 제한되는 등 불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1~9월 주택연금 해지, 작년 1.3배 급증
14일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올해 1~9월 주택연금 해지 건수는 1975건으로 작년 전체 건수(1527건)에 비해 30% 가깝게 증가했다. 연말까지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2000건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빠르게 오른 최근 몇 년 사이에 주택연금 해지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16년 954건, 2017년 1257건, 2018년 1662건 등이다. 작년(1527건)에는 소폭 줄었는데 올해 들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주택연금은 고령자가 살고 있는 집에 계속 살면서 매달 일정 금액을 연금 형식으로 받는 상품이다. 해당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주택금융공사가 보증을 서고, 은행이 대출을 일으켜 가입자에게 연금을 주는 일종의 역(逆)모기지론이다. 가입자가 사망하는 등 연금 지급이 끝나면 집을 처분해 지금껏 받은 연금과 그에 대한 이자(현재 기준 약 1.7%)를 상환하는 구조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가구의 자산 약 80%가 부동산에 묶인 상황에서, 거주 중인 집을 활용해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 유용한 제도다.
그런데 굳이 주택연금을 해지하는 이유가 뭘까. 주택연금 연금액은 ‘가입 당시의’ 집값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올해 60세가 시가 6억원 주택으로 가입하면 매달 124만원이 나온다. 같은 조건인데 집값이 9억원이면 연금액은 187만원으로 뛴다. 하지만 일단 가입하면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연금액은 안 바뀐다. 집값이 6억원일 때 주택연금에 가입하고, 몇 달 뒤에 집값이 9억원으로 뛰었더라도, 가입 당시의 가격(6억원)이 기준이라 연금액은 매달 124만원이 나온다. 집값이 6억원에서 3억원으로 떨어지더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노후 자금이 마땅치 않아 주택연금을 최대한 많이 타려면 집값이 비쌀 때 가입하는 게 좋다. 집값이 비교적 쌀 때 가입한 사람 입장에선 일단 해지한 뒤에 비싼 집값으로 다시 가입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다.
◇”집값 올라도 손해 아냐…해지 신중해야”
하지만 집값이 올랐다고 주택연금을 해지하는 게 좋은 선택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한 번 가입한 주택연금을 해지하려면 목돈이 든다. 여태껏 받은 연금을 한꺼번에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돈을 마련하려고 은행에서 돈을 꾸거나 다른 자산을 팔면 가뜩이나 불안한 노후가 더 불안해질 수 있다. 또 주택연금에 처음 가입할 때는 일종의 가입비(초기 보증료)를 내야 하는데, 중도에 해지한다고 이 돈을 돌려주진 않는다. 초기 보증료는 보통 집값의 1.5%다. 해지 후 재가입하려면 이 돈을 또 내야 한다.
주택연금 연금액을 높이려고 해지했다가 평생 주택연금 가입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주택연금은 한 번 중도 해지하면 3년간 재가입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요즘처럼 집값이 빠르게 오르면 자칫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한 가격 제한을 넘어버릴 수 있다. 현재 공시가 9억원(시가 12억~13억원)이 넘는 주택으로는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없다.
무엇보다 집값이 오른다고 주택연금 가입자가 손해를 보는 건 아니라고 주택금융공사는 강조한다. 주택연금 가입자가 사망하는 등 연금 지급이 끝나면, 주택금융공사는 지금껏 지급한 연금액과 당시 집값을 비교해 정산한다. 만일 집을 팔아 지금껏 준 연금과 이자를 다 갚고도 남는 돈이 있다면, 그 돈은 자녀 등 상속인에게 돌려준다. 주택금융공사가 가져가는 게 아니다. 비록 가입 후 집값이 오른다고 연금액이 늘어나진 않지만, 그만큼 자녀 상속액이 많아지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