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99, 100. 세는 것도 지쳤습니다. 딱 100번째 이력서까지 탈락하는 순간 마음을 내려놨어요. ‘코로나 시대’에 당장 취업하기는 힘들 것 같으니, 잠시 좀 쉬었다가 나중에 다시 도전하기로요.”
다니던 대기업이 적성에 맞지 않아 지난해 퇴사한 이모(30)씨는, 퇴사 후 1년간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썼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3년 전 처음 대기업 구직을 시도할 때만 해도 서류 전형은 대부분 통과했는데, 올 상반기엔 아예 상황이 달라졌다.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 문까지 다 두드렸는데, 서류 통과조차 못 한 경우가 허다했어요. 더구나 중소기업은 아예 경력직만 뽑더라고요.”
코로나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연령별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청년층은 취업 문을 두드리다가 지쳐 아예 구직 활동을 접는 반면, 60세 이상 노인 일자리는 꾸준한 증가세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생존과 비용 절감을 위해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하면서 청년 구직자들 사이에선 “기약 없는 기다림이 너무 힘들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냥 쉬었다' 235만명으로 최고치
통계청이 16일 발표한 ’11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2724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27만3000명 감소했다. 취업자 수는 지난 3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세다. 역대 최악이었던 외환 위기 당시 16개월(1998년 1월~1999년 4월) 이후 최장 기록이다. 그나마 이번 조사가 진행된 11월 셋째 주(16~20일)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1단계로 완화된 덕분에 취업자 수 감소 폭이 10월(42만1000명)보다 줄었지만,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은 12월에는 취업자 수 감소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3차 확산에 대한 고용 영향이 12월과 내년 1월에 나타날 가능성이 커 우려된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달에는 아무 구직 활동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었다”는 ‘쉬었음’ 인구가 235만3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11월 기준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쉬었음’ 인구를 연령별로 쪼개보면, 청년층(15~29세)에서 가장 큰 폭(9만5000명, 27.1%)으로 늘었다. 아르바이트마저 끊겨 나가는 청년들의 ‘코로나 채용 절벽’이 반영된 것이다. 작년 말 일본 기업 취업이 확정됐다가 코로나 여파로 채용이 취소된 박모(26)씨는 “외출도 못 한 채 집에서 눈치만 보고 있으려니 너무 고통스럽다”며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독서실도 못 가고, 코로나 끝나기만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 세금으로 뒷받침하는 공공 일자리 등으로 60대 이상 고령 취업자만 늘어나는 연령별 일자리 양극화 현상은 11월에도 9개월째 이어졌다.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작년 같은 달 대비 37만2000명 늘어났지만, 15~29세(-24만3000명), 30대(-19만4000명), 40대(-13만5000명), 50대(-7만4000명) 등 다른 연령대 취업자 수는 모두 줄었다. 또 임시 근로자(-16만2000명)와 일용 근로자(-4만4000명)는 줄었는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용 근로자는 3만8000명 늘었다. 청년이나 임시·일용직 등 단기 일자리를 구하는 취약 계층 고통이 더 가중된 것이다.
◇중소기업까지 신규 채용 줄여
청년들은 중소기업 일자리를 얻기도 어렵게 됐다. 중소기업 동향자료에 따르면, 10월 기준 300인 미만 중소기업 취업자 수는 2436만명으로 올해 1월(2418만5000명)보다 소폭 늘었지만, 29세 이하 취업자는 같은 기간 23만4000명 감소했다. 30대 취업자도 32만6000명 줄었다. 중소기업연구원 노민선 미래전략연구단장은 “중소기업들이 사람을 새로 뽑아 교육하기 보다는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중소기업 신규 채용이 크게 줄어들어 청년들의 구직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못하는 상황이라 우려된다”며 “고령 일자리 같은 단기 보조금 일자리 정책으로 노동 시장의 실체만 왜곡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 경쟁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