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윤 ‘닷’ 대표가 차고 있는 시계가 점자 스마트 워치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닷’은?

점자 스마트 워치로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리고, 촉각 패드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 줄로만 가능하던 점자 기기를 모니터 한 면에 가능하게 만들었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그림, 지도 등을 표현할 수 있는 ‘닷 패드’는 구글 번역기처럼 13개 언어로 자동 점자 변환이 가능하다.

오는 2022년 미국의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특별한 스마트 패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손으로 만지는 촉각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디바이스이다. 텍스트나 그림이 자동으로 점자로 변환돼 촉각 모니터에 나타난다. 글은 물론이고 수학시간 복잡한 도형이나 그래프를 손으로 만지며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바로 만지면서 작업할 수도 있다. 엑셀 작업도 가능하고, 키노트나 파워포인트로 비주얼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컴퓨터게임을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점자책으로 그림을 접할 수는 있었지만, 스마트 기기에서 점자로 비주얼을 구현하는 것은 꿈의 기술이었다. 지금까지 점자용 단말기는 텍스트를 딱 한 줄의 점자로 나열하는 수준이었다. 한 페이지에 한 줄이 표시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식이다. 그러니 비주얼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20여년 동안 전 세계에서 도전했지만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숙제로 남아 있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기술혁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한국의 30세 청년이다. 미국 학생들이 사용할 촉각 패드를 만든 스타트업 ‘닷’의 김주윤 대표이다.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만난 김주윤 대표는 “미국 정부의 1000억원 규모 시각장애인 촉각·점자 전자 교과서 디바이스 공급자로 선정돼 현재 세부적인 사항을 협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13개 언어로 자동 점자 변환

‘닷 패드’는 점자 모듈 개수에 따라 얼마든지 여러 줄로 만들 수 있다. 때문에 비주얼 표현이 가능하다. 독보적 기술의 핵심은 초소형, 초경량화와 텍스트뿐만 아니라 그림까지 점자로 변환하는 코딩 기술이다. ‘닷’은 스타트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관련 특허기술만 100여건이라고 한다. 초소형, 초경량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점자 모듈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점자 모듈이 휴대용 라이터 크기였던 것을 작은 손톱 크기로 줄였다. 한 개의 모듈에는 8개의 전자석 점이 박혀 있고 이 점들이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점자를 만든다. 이 기술이 집약된 제작공장은 경기도 부평에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문자뿐만 아니라 그림을 점자로 변환하는 코딩 기술이다. 구글 번역기처럼 텍스트나 그림을 넣으면 자동으로 점자로 변환된다. 점자도 언어별로 다르다.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13개 언어가 가능하다. 한국어는 한국식 점자로, 영어는 영어식 점자로 자동 번역된다. ‘닷’의 기술은 점자 스마트 시계인 ‘닷 워치’로 시작해 텍스트 전용 점자 리더기인 ‘닷 미니’, 그리고 ‘닷 패드’로 이어지며 진화하고 있다. 한 줄짜리 점자 리더기 시대를 한 차원 높여준 ‘닷’의 기술은 1억명 중증 시각장애인의 삶을 혁신할 수 있다. 비주얼 작업이 가능해지면 시각장애인들도 좀 더 전문적인 일자리에 도전할 수 있다.

‘닷’을 세상에 먼저 알린 것은 ‘닷 워치’이다. 점자로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과 연결해 문자나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글을 읽을 수 있다. 기존에도 디지털 점자 리더기가 있었지만 무겁고 크고 비싸서, 사는 것도 갖고 다니는 것도 어려웠다. ‘닷 워치’는 무게가 단 33g에 불과하다.

‘닷 워치’의 이력은 화려하다. 창업 전인 2014년 ‘닷 워치’ 아이디어로 KBS 창업 오디션 프로그램인 ‘황금의 펜타곤 시즌2’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 4월 창업을 하고 2016년 세계 3대 디자인 상인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 수상, 스타트업계의 올림픽인 ‘겟 인 더 링(Get in the Ring)’ 우승, 칸 국제광고제 혁신부문 금상을 휩쓸었다. ‘칸’은 국내 스타트업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으로 ‘구글 알파고’에 근소한 차이로 그랑프리를 뺏겼다. 모두 ‘닷 워치’가 정식 출시도 되기 전의 일이다. 2017년에는 상금 1000만엔이 걸린 일본의 창업경진대회 ‘슬러시 도쿄(SLUSH Tokyo)’ 피칭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비 원더와 세계적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가 출시 전부터 선주문을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닷 워치’는 2017년 정식 출시돼 현재는 20여개국에 판매되고 있다. 김 대표는 외국의 시각장애 어린이가 ‘닷 워치’를 차고 “어메이징”을 외치며 활짝 웃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기뻐할 때 가장 보람 있다”고 말했다. ‘닷’은 글로벌 사회적기업 확인증인 ‘비콥(B-corp) 인증’도 받았다. 파타고니아, 탐스처럼 세상에 이로운 기업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지난 3월에는 UN의 SDG(모든 사람이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잘 이행한 기업, 개인에게 상을 수여하는 월드서밋어워드2020 ‘Inclusion & Empowerment’ 부문에서 우승자로 선정됐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하는 예비 유니콘기업 후보 명단에도 올라 있다.

점자 모듈을 초소형·초경량화했다. 300개 모듈이 들어간 촉각 디스플레이는 텍스트뿐 아니라 그림·지도도 표현할 수 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창업

김 대표는 1990년생이다. 25살에 ‘닷’을 설립해 이 모든 일을 이뤄냈다. ‘닷’ 이전에도 그는 세 번의 창업을 하고 세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그동안 대학을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 가능한 일이냐고? 김 대표는 “10년을 꽉 채워 살았다”고 했다. 김 대표의 10년은 몇 줄의 화려한 성과로 압축되지만, 행과 행 사이에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만큼 힘든 일이 많았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이 일에 뛰어들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면서 “몇 년 전에는 공황장애까지 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학창 시절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책을 읽고 창업의 꿈을 키웠다.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졸라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에 진학했다. 창업하려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1학년 때부터 전공인 ‘사회과학’보다는 창업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앙트프러너십(기업가정신)’을 부전공으로 하고 창업스쿨 등을 쫓아다녔다. 그곳에서 만난 인도 출신 엔지니어와 함께 첫 창업을 했다. 1학년 때였다. “링크드인과 비슷한 네트워크 서비스인 ‘드림스 링커(Dreams Linker)’를 구상했는데 동업자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인도로 돌아가버렸다. 개발자가 빠지니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첫 사업의 실패가 준 교훈은 개발을 모르면 창업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수학을 못해 문과에 간 내가 코딩을 배우기 시작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두 번째 창업 아이템은 유학생과 한국의 유학 예정자들을 멘토와 멘티로 이어주는 서비스였다. 주변의 반응은 좋았지만 학생비자인 유학생의 경우 아르바이트 허용이 안 돼 포기했다.

세 번째는 트럭판 우버로 ‘왜건(Wag -on)’이라는 웹서비스를 론칭했다. 일이 없는 트럭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웹이었다. 세 번의 창업 중 가장 반응이 좋았다. 영업을 맡았는데 매일 출근길이 고역이었다. 일을 하는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1년을 버티다 사업을 접었다. 세 번째 창업에서 배운 것은 ‘가치 있는 일을 하자!’였다.

세 번의 실패는 결국 ‘닷’으로 연결됐다. 룸메이트가 지체장애인이다 보니 장애인들의 불편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눈에 점자 성경책이 무려 20여권에 달하는 것이 보였다. 한 권도 가지고 다니기 힘들 정도로 두꺼웠다.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해 보자!’고 생각했다. 2014년 대학을 휴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유타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 성기광 공동대표까지 끌어들였다. 성 대표도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고 합류했다. 원룸을 얻어 합숙하면서 ‘닷’을 창업했다. 수백만원짜리 점자 리더기를 해체해 문제를 찾고 방법을 찾으면서 시작해 놀라운 기술 혁신을 만들어냈다. 창업 초기 사람들이 믿어주지도 않고 투자자들도 외면할 때 격려를 해준 사람은 스티브 잡스였다.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노력하고 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의 인생은 훨씬 장대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대부분 당신보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신이 그것을 바꿀 수 있다. 당신만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진실을 깨닫는 순간 당신의 삶은 영원히 바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스티브 잡스의 영상을 보며 힘을 얻은 덕분에 오늘의 ‘닷’을 만들었다.

전 세계 ‘배리어프리’를 위해

‘닷 워치’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오픈 게임에 불과하다. 본 게임은 ‘닷 패드’이다. 미국 정부가 표준으로 삼을 ‘닷’의 기술은 중국·한국·일본·EU·중동을 포함, 전 세계로 확대될 예정이다. 현재 미국 내 글로벌 기업들과 전 세계 보급을 위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한국을 비롯해 세계 주요 도시들이 추진하는 ‘스마트시티’에서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배려시설)’는 필수이다. ‘닷 패드’의 기술은 여기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닷’은 ‘닷패드’를 중심으로 장애인·비장애인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길안내 키오스크를 만들었다. 카타르 정부, 미국 애리조나주의 피닉스 시청과 공항, 이집트, 동계올림픽을 앞둔 베이징 등 전 세계에서 ‘닷’을 찾고 있다. 세계 유명 박물관의 ‘배리어프리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구글에서도 본사 정문에 설치할 길안내 지도용으로 요청이 왔다. 부산시의 ‘무장애 교통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일단 서면역에 ‘닷’의 배리어프리 길안내 키오스크가 설치됐다. 부산시는 서면, 부산역 2곳에 설치해 실험한 후 부산의 120개 지하철역에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다.

글로벌 프로젝트가 줄줄이 걸린 ‘닷’에 2020년은 운명의 해였다. 뒤늦게 군대를 가서 올해 제대하고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내려던 참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연구개발비가 워낙 많이 들다 보니 ‘닷’으로서는 올해 본격적으로 매출이 기대되는 해였다. 김 대표는 “창업은 유리알을 씹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창업하지 말라”는 엘런 머스크의 영상을 보면서 위로받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어도 창업을 선택했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래도 창업”이라면서 “극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하나의 점(Dot)을 연결해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은 회사 이름처럼 가치 있는 그의 도전은 전 세계 장애인들이 정보의 장벽 없이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에 한 점을 찍었다.

다음 추천 주자는? 힐세리온 류정원 대표

추천 이유 세계 최초로 휴대용 초음파 기기를 개발하고 AI를 접목해 헬스케어 시장에서 혁신을 만들고 있다. 힘든 길을 앞서 걷고 있는 선배 창업자로 존경한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주간조선이 만난 스타트업의 프런티어들의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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