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코로나 진단키트 회사인 씨젠에 입사한 A(32) 과장은 성과급이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지난 2분기 연봉의 50%, 3분기에 연봉의 25%와 고급 시계를 성과급으로 받은 데 이어, 연말에는 연봉만큼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직원들의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신종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매출이 작년보다 10배 많은 1조원을 돌파했고, 주가도 연초 대비 7배 뛸 만큼 회사가 급성장했다. A 과장은 “업무량이 폭증했지만 회사가 그만큼 성과급으로 보상해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말·연초 직장인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성과급이다. 올해 직장인들의 성과급은 심각한 양극화를 겪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경제를 할퀴면서 기업들의 성과급 지급은 줄어들고 있다. 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최근 기업 505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 기업의 72.5%가 연말 성과급 지급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해보다 3.9%포인트 높은 것으로, 최근 6년 새 가장 높은 수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수혜로 회사 실적이 좋아지면서 성과급을 두둑이 챙기게 된 직장인도 적지 않다. Mint가 코로나로 희비가 엇갈린 직장인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증권·게임·테크·바이오 기업 ‘두툼’
증권사에서 ‘평범한 부서’로 여겨졌던 리테일영업부와 PB(프라이빗 뱅킹) 직원들의 성과급이 작년보다 크게 늘어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학개미’ ‘동학개미’ 등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늘어 거의 모든 증권사들이 오래간만에 호황을 누린 덕분이다. 최근 몇 년간 연말엔 명예퇴직, 부서 전출, 인원 감축 등 살벌한 내용을 담은 ‘지라시(정보지)’가 정신없이 돌았는데, 올해는 흉흉한 얘기도 쏙 들어갔다. 반면 IB(투자은행), 대체투자 등 ‘엘리트’가 모인 일부 부서는 올 한 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외국계 금융사에서 팀장급으로 일하는 김모(33)씨는 “진행 중이던 M&A 딜이 신종 코로나로 인해 중단돼 한 해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성과급 대박은커녕 인력 충원하기도 쉽지 않을 지경”이라고 했다.
집에 틀어박혀 게임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일부 대형 게임사들도 ‘통 큰’ 성과급을 지급 중이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김택진 대표 명의로 모든 직원에게 연말 특별 격려금 2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실적 개선을 격려하고 NC다이노스 우승을 자축하는 의미도 있다. 넥슨은 올해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게 1000만원의 휴가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웹젠, 넷마블 등도 실적이 괜찮아 성과급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이런 와중에 본업(本業)이 아닌 부업으로 돈을 벌어 성과급을 준 회사도 있다. 미국 IT(정보기술) 기업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올 들어 비트코인 7만여 개를 사들였다가, 비트코인 값이 치솟아 상당한 평가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직원들은 매분기 성과급을 받는데, 지난 3분기 성과급이 전년 동기 대비 20~50% 올랐고, 연말 성과급도 전년 동기 대비 비슷한 수준으로 오를 전망이다.
◇상당수는 “작년만큼만 줘도 땡큐”
여행·면세점·항공업 등 코로나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직장인들은 애당초 성과급을 포기한 분위기다. 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 기업에서 일하는 B차장은 지난해 연말 보너스로 연봉의 50%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월급이 크게 줄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기는 중이다. 지난해 좋은 실적을 낸 면세점이 올해 “지난해 매출에 육박하는 적자를 볼 수 있다”고 할 만큼 어렵다. 여행업계에선 “주4일 근무제로 월급마저 깎인 마당에 성과급을 기대하긴 어려운 분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대기업 간에 업종별·계열사별로 성과급 격차가 커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는 최근 삼성전자와 비교해 삼성디스플레이의 성과급이 너무 적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올해 삼성전자의 상당수 주력 사업부는 하반기 보너스로 기본급의 100%를 받고, 연봉의 30~40%를 초과이익성과급으로 받게 된다. 하지만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의 올해 성과급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도 다른 계열사 입장에선 ‘배부른 투정’이다. 한 삼성 계열사 직원은 “삼성디스플레이는 그나마 얘기라도 꺼내볼 여건이지만, 패션이나 에버랜드 등은 올해 실적이 너무 나빠 성과급 기대도 못한다”고 했다.
대형 시중은행들은 올해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가계 대출 급증으로 이자 수입은 늘면서 실적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성과급 지급을 하자니, “빚내서 집 사느라 등골 휜 서민들의 돈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는 말을 들을까 봐 눈치를 보고 있다. 한 은행 고위 임원은 “저금리 장기화로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성과급이 예년만큼만 지급돼도 다행이라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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