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자영업 손실보상법 추진에 나서면서 정확한 재정 추계조차 없는 법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5건, 국민의힘 3건, 정의당 1건 등이다. 22일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발의한 손실보상 특별법안은 보상액이 최대 125조원 넘는 규모다.
◇손실 보상 비용 ’125조원+알파'
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정부 방역으로 영업이 금지된 업종은 전년보다 줄어든 매출의 70%를 월 3000만원 한도 안에서, 집합제한 업종은 손실 매출의 60%를 월 2000만원 한도 안에서 보상받는다. 일반 업종도 줄어든 매출의 50%를 월 1000만원 한도 안에서 보상받는다. 업체별 매출 감소분이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지만 민 의원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한 달에 24조7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작년 9월부터 영업금지가 본격화한 것을 감안하면 최근 5개월 동안 최대 123조원을 손실 보상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 범위 내에서 코로나 위로금을 지급한다. 소비 진작 차원이라지만 단순 계산으로 최대 2조6000억원이 추가된다. 또 영업금지 업체의 금융회사 대출 이자와 통신요금·공과금을 전액 감면해 줘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자나 통신요금을 못 받게 되는 은행이나 통신사는 정부 세액공제로 피해를 일부 보상받는다. 손실 보상 규모가 최대 125조원을 넘는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해 네 차례 편성한 추경 예산(67조원)의 2배 규모다.
◇정부 ”국가 채무 내년 1000조원 돌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여당에서 속도를 내고 있는 자영업 손실 보상 법제화에 우려를 표시한 것은 결국 이런 문제 때문이다. 최근 10년 새 정부 부채는 2배로 늘었다. 지난해 11월까지 정부 채무는 826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지난해 늘어난 빚만 127조원으로 전체 국가 채무의 15%를 차지한다.
홍 부총리는 이날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 상황, 재원 여건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정책 변수 중 하나”라고 했다. 정부 방역 조치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지만 나라 살림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권의 드라이브에 휘둘려 자영업자 손실 보상안을 잘못 짜면 나라 살림이 거덜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종현 경상대 교수는 “법제화가 될 경우 정치권의 무분별한 지출에 제동을 걸 장치가 없어질 수 있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면서 국가 채무가 빠르게 늘어나는 등 재정 여건이 악화되어 가고 있다”며 “적자 국채 발행이 지난해 약 103조원, 올해 약 93.5조원, 내년에도 1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고 국가 채무 총액은 내년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15~2019년 5년 동안에 적자 국채 발행 규모가 연평균 28조원이었는데, 지난해는 103조원으로 뛰었으며, 앞으로 몇 년 동안 급증세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최근 한국의 국가 채무 증가 속도는 세입과 재정 규모로 볼 때 미래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했다.
◇기재부 “재정 상황 언급한 것뿐 반발 아니다”
전문가들과 정부 관료들은 홍 부총리의 이날 발언이 영업 손실 보상 법제화 과정에서 이 같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한 것이라고 한다. 홍 부총리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짚어볼 내용이 많다”며 “제도화 방법은 무엇인지, 외국의 벤치마킹할 입법 사례는 있는지,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하면 되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소요 재원은 어느 정도 되고 감당 가능한지 등을 짚어보는 것은 재정 당국으로서 의당 해야 할 소명”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홍 부총리가 손실보상제 추진을 밀어붙이는 정치권의 압박에 반기를 들었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기재부에서는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자영업 손실보상제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검토해야 할 것이 많고 우려할 바가 많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