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환 기획재정부(기재부) 제2차관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재정관리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김가람(37)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작년 10월 기재부에 사표를 내고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8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재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지 만 10년째였다. 그는 지난 정부 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유럽과 아시아를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묶고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해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방안) 업무를 담당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청년 일자리 정책을 총괄하는 일자리경제지원과 사무관을 거쳐 작년부터는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인구정책 실무를 맡았다. 정년을 넘긴 고령자의 고용을 유지하면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 굵직한 정책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일자리 정부' 일자리 사무관 사표 내고 국회 비서관으로

김 사무관이 기재부를 떠나자 선후배 관료들 사이에서는 “에이스 사무관이 떠났다”는 탄식이 나왔다. 작년 6월 말 조재순 공정위 경쟁정책과 서기관이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겨 충격을 준 적이 있는데, 경제 정책 컨트롤타워인 기재부에서도 인력 엑소더스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 기재부 동료는 “사명감이 강한 친구였는데,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 대신 계약직인 국회 보좌진으로 간 것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의 ‘젊은 피’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예전에도 학계나 기업으로 공무원들이 자리를 옮기는 경우는 많았지만, 과장이나 국장 등 간부가 아닌 경제 부처 공무원들이 입법부인 국회 보좌진으로 연거푸 자리를 옮긴 것은 이례적이다.

기획재정부의 ‘젊은 피’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예전에도 학계나 기업으로 공무원들이 자리를 옮기는 경우는 많았지만, 과장이나 국장 등 간부가 아닌 경제 부처 공무원들이 입법부인 국회 보좌진으로 연거푸 자리를 옮긴 것은 이례적이다.

기재부의 한 국장은 “기재부는 과거에도 업무가 고되고 승진이 느렸지만, 30대에 궤도를 튼 적은 거의 없었다”며 “기재부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최근 젊은 직원들이 빠져나가면서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국회 비서관은 사무관과 같은 5급이지만, 계약 기간이 없기 때문에 고용 안정성이 낮다. 기재부의 위상 추락은 경제정책 결정 구조가 청와대와 여당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관료들 사이에서 나온다. 김가람 비서관은 본지 통화에서 “(홍남기) 부총리의 일자리 정책 현장 행사나 인구정책 관련 간담회를 해보면서 조금 더 현장에 가깝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친김에 국회로 방향을 틀었고, 기재부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을 국회에서 구현하고 싶다. 정확히 말해 ‘정치’를 해야 일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기획 부서가 아니라 호치키스 부서” 자조

김 비서관의 경우는 새로운 도전을 택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젊은 기재부 공무원의 연이은 퇴사는 기재부는 물론이고 경제 부처 전반에 경고등을 켜고 있다. 작년 1월 기재부 예산실 고용환경예산과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한 사무관은 공직 생활 1년 만인 지난 26일 “AI(인공지능)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며 공직을 그만뒀다. 같은 부처의 한 서기관은 “야전에서 경제를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일해왔는데, 장관이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 ‘홍백기(홍남기+패배 선언)’ 소리를 듣는 현실에서 누가 밤을 새워 일을 하겠냐”며 “여당이 정해준 지정곡을 부르는 나팔수가 된 것 같다. 관료가 아니라 당의 직원이라는 뜻에서 ‘당료(당과 관료를 합친 말)’라고 부른다”고 했다.

기재부는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등 다른 경제 부처를 총괄하면서 지자체와 정치권의 요구를 조절하는 재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경제정책 ‘기획’이나 나라 살림을 지키는 ‘재정 파수꾼’ 면에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 내달 초 출근하는 27명의 기재부 신입 사무관 가운데 일부는 1·2·3지망을 모두 기재부가 아닌 부처를 썼는데 기획재정부로 배정됐다.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는 당정이 추진하는 자영업자 손실보상 제도화에 기재부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 데 대해 “이게 기재부의 나라냐”고 질타했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선 ‘기재부의 나라'라는 말을 듣기엔 기재부 위상이 쪼그라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전직 경제 부처 차관은 “테크노크라트의 몰락에 세종시 이전,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 등이 합쳐져 관료 기피 현상 자체가 심해졌다”며 “말이 기획재정부지, 당의 말을 받아 편집하는 ‘호치키스(스테이플러)’ 부서라고 할 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