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다’의 영어 단어 ‘retire’를 재미있게 풀어보면 ‘타이어를 새로 바꾼다(re+tire)’는 뜻이다. 즉 은퇴는 자동차 타이어를 다시 갈고 열심히 달려야 하는 시기다. 그러려면 100세 시대에 남은 40년을 달릴 타이어를 꼼꼼히 준비해야 한다. 은퇴 생활비 계획이 그 시작이다.
◇적정 생활비에 취미·여가 비용 더하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 후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할까?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 후 최소 생활비로 205만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적정 생활비는 이보다 약 90만원 높은 294만원이다.
적정 생활비는 현재 본인 가계 지출의 70~80% 선이 적당하다. 여기에 지금 꾸준하게 즐기는 취미·여가 비용을 더하고, 은퇴 후 줄어들 자녀 교육비를 빼면 정확하게 은퇴 후 생활비를 따져볼 수 있다.
적정 생활비를 정했어도 목표로 하는 은퇴 생활비는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1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420만원)을 나가고 한 달에 한 번 골프(30만원)를 즐기는 경우, 적정 생활비(294만원)에서 해외여행 경비를 12개월로 나눈 35만원과 골프 비용인 30만원을 더해 월 359만원을 은퇴 생활비로 잡아야 한다.
◇개인연금으로 현금 흐름 안정적 확보
은퇴 생활비를 정했다면 자산을 점검해보자. 지난 1월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유 자산 70% 이상이 부동산 등 실물 자산에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은퇴 시점에 부동산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하려 했을 때 내가 가진 부동산이 잘 팔리지 않으면 평가 가격보다 싸게 매도해야 하는 위험이 있다. 양도세 등 세금 문제도 발생한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재산세 과세 표준을 넘을 경우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돼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그렇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건강보험료 지출이 생길 수 있다.
부동산 실물 자산이 현금 흐름을 제약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은퇴 준비 과정에서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준비하거나 현재 갖고 있는 부동산으로 현금 흐름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연금저축(세제적격 개인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 노란우산공제 등 이른바 ‘3대 절세 상품’을 이용해 은퇴 자금과 절세를 동시에 준비할 수 있다. 연금저축의 경우 연 4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퇴직금을 IRP에 가입해 추가액을 적립하면 연 납입액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2017년 이후부턴 자영업자도 IRP 가입이 가능해졌다. 노란우산공제 역시 조건이 되는 자영업자는 우선 가입을 검토해 봐야 한다. 계좌 압류가 금지되고 최대 5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있으며 인출 시 퇴직소득으로 계산돼 소득세 절세 효과도 있다.
◇주택 팔아 생활비 마련? 주택연금 살펴보자
주택연금을 활용해볼 수도 있다.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매월 일정액을 연금 형식으로 받는 것이다. 현재 주택 가치를 담보로 본인이 미리 써버린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향후 자식에게 물려줄 유일한 자산이 집이라는 정서 때문이다. 그래서 노후 생활비를 확보하기 위해 평수를 줄이거나 더 낮은 가격의 주택으로 옮겨 차익을 얻으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생활 조건은 이전보다 열악해진다. 주택연금은 생활환경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현금 흐름을 얻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작년 말 한국주택금융공사법이 개정돼 주택연금 가입 연령이 기존 60세에서 55세로 낮아졌다. 가입 가능한 주택 가격도 시가 9억원에서 공시지가 9억원으로 완화됐다. 또 주거용 오피스텔에 살아도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올해 6월부터는 가입자 사망 후 배우자에게 자동 승계되는 신탁 방식 주택연금도 도입돼 주택연금 활용도가 높아졌다. 9억원 주택을 보유한 70세라면, 주택연금으로 매월 267만5000원(종신 지급 방식·정액형 기준)을 수령할 수 있다.
다만 주택연금 연금액은 가입 당시 집값에 비례한다. 일단 가입하면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연금액이 바뀌지 않는다. 집값이 높을 때 가입해야 연금액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집값 상승 요인이 있다면 가입을 늦추고, 하락 요인이 있다면 빨리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
최근 집값이 치솟자 주택 가치만큼 연금을 못 받는다고 여겨 주택연금을 해지하는 사람이 늘었다. 하지만 한 번 주택연금을 해지한 뒤 가입하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3년간 재가입이 제한되고, 집값의 1.5%인 초기 보증료도 재가입시 또 내야하기 때문이다. 주택연금 해지시 이제까지 받은 연금을 한꺼번에 돌려줘야 해 목돈이 필요하단 점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