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금융상품이 코인 투자 열풍 때문에 된서리를 맞고 있다. 2030세대를 겨냥해 고금리 예금·적금을 내놓아도 코인 투자 열기에 가려 잘 팔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24일 최고 연 6% 금리를 주는 ‘우리페이 적금’을 내놨다. 기본금리 연 1%에 우리페이 서비스 결제 계좌와 급여 이체를 우리은행 계좌로 이용하면 최대 연 1%포인트, 우리페이 계좌 결제 서비스로 3개월 내 30만원을 결제하면 2%포인트, 1년에 200만원 결제 시 2%포인트 우대금리를 주는 조건이다. 출시 후 3일간 4845명이 이 적금에 가입했다.

이 은행은 작년 7월에도 연 최고 6% 금리를 주는 ‘우리 매직6 적금’을 출시했는데, 사흘 만에 1만972명이 가입했었다. 1년도 안 돼 최고 금리가 같은 상품의 가입 실적이 반 토막 난 것이다.

◇코인 광풍에 “연 6% 고금리 적금도 우습다”

물론 이번에 나온 우리페이 적금은 월 불입액이 20만원까지라 1년 만기 후에 손에 쥘 수 있는 이자가 6만5000원으로 많지 않다. 그러나 지난해 2월 하나은행에서 연 최고 금리 5.01%인 ‘하나더적금’을 출시했을 때는 이틀 동안 83만명이 가입하는 ‘적금 대란’이 일어났었다. 이 적금도 월 최대 불입액이 30만원이라 만기 후 이자는 8만2000원 정도에 불과했다.

은행들은 올해 고금리 상품 판매가 부진한 원인을 가상 화폐 투자 열풍에서 찾고 있다. 지난 1년여간 가상 화폐 광풍에 금융 시장이 밀리며 고금리 적금마저 맥을 못 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루에도 20~30%씩 왔다 갔다 하는 코인판에 있다 보면 1년에 6% 이자가 눈에 들어오겠느냐”며 “저금리 시대에 나름 특판을 준비해도 실적이 예전같지 않다”고 했다.

이제 금리보다 가상 화폐 시장이 예·적금의 운명을 쥐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지난해 4월에 비해 국내 4대(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가상 화폐 거래소 투자금은 11조4000억원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 정기 예·적금 잔액은 39조6394억원 줄었다. 은행권에서는 기존 예·적금 상당액이 가상 화폐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도권 진입 넘보는 가상 화폐

가상 화폐의 제도권 진입이 가속화하면서 기존 금융권의 고전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상 화폐로의 자금 이동이 계속되고 있다.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고액 자산가 대상으로 내놓은 비트코인 펀드가 출시 9개월 만에 투자금 1억235만달러(약 1140억원)를 모았다고 27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했다. 피델리티는 지난 3월에는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하겠다고 미 금융 당국에 신청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26일(현지시각) 가상 화폐도 장기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는 자산인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블랙록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는 이날 주주총회에서 가상 화폐 투자 의향을 묻는 주주의 질문에 “가상 화폐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며 이같이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