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서울의 한 백화점 앞에서 명품 매장에 들어가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명품 브랜드 샤넬은 6월 말 일부 고객에게 “매장 방문을 금지한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7월부터 시행하는 ‘부티크 경험 보호 정책’에 따라 샤넬이 ‘판매 유보 고객’으로 지정한 사람에게는 상품을 팔지 않겠다는 취지입니다. 판매 유보 고객이 되면 물건 구매는 물론 샤넬 매장을 방문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본지가 단독으로 입수한 샤넬의 새 규정을 보면 판매 유보 고객은 △매장을 과도하게 반복적으로 방문하거나 △샤넬 상품을 지나치게 많이 사들이거나 △다량 매집 고객에게 자신의 명의를 사용하도록 허락한 사람을 지칭합니다. 샤넬은 지금까지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리셀러(재판매업자)의 구매를 금지했는데, 이를 ‘다이궁’(代工)으로 불리는 중국인 보따리상과 명의를 빌려 장사하는 대행 업체로까지 확장한 것입니다.

샤넬은 새로운 규정으로 매장 방문이나 쇼핑이 금지된 고객의 항의나 충돌에 대비하는 방법도 마련했습니다. “응대 거부는 불법”이라고 항의하는 고객에겐 “고객센터로 확인하라”거나 “내부적인 절차에 따라 법적 확인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하는 식입니다. 고객의 폭언·폭행이나 영업방해 행위에 대비해 초기 2주간 경호원을 추가 배치하고, 법률 자문 서비스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샤넬은 다이궁 등의 매장 방문 등을 금지하는 ‘강수’를 둔 이유로 “다른 고객도 공평하게 방문·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샤넬이 일부 고객과의 갈등이 불가피한 조치를 도입한 것은 국내 명품 시장이 중국 보따리상과 리셀러들의 ‘사재기’로 왜곡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내 명품 시장은 코로나 장기화에도 최대 매출을 잇달아 경신하고 있습니다. 내국인 이용객과 매출이 줄었지만, 외국인 매출이 대폭 늘었습니다. 업계에서는 외국인 매출의 90% 이상이 다이궁에게서 발생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재기나 대리 구매 등 비정상적인 쇼핑 문화가 생긴 데엔 샤넬 같은 명품의 책임도 있습니다. 매장 앞에서 밤샘 대기를 하고, 백화점 문이 열리면 쇼핑하러 뛰어가는 ‘오픈 런’ 같은 소비자의 불편함이 있어도 ‘한정판 브랜드 이미지를 지켜야 한다’며 개선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고 없이 상품 가격을 수십 만~수백 만원씩 올린 탓에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들여 비싸게 되팔려는 리셀러의 표적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또 다른 명품 까르띠에가 최근 일부 VIP 고객에게만 가격 인상을 예고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문자를 받지 못한 고객들이 “차별하느냐”고 항의했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하룻밤 사이 수십 만~수백 만원씩 가격이 오르는 일정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명품들이 일부 VIP 고객에겐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왜곡된 쇼핑 문화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일부 명품 브랜드가 언제까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