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의 총쏘기 게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을 즐겨하는 회사원 김규태(30)씨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테슬라의 신차 ‘모델Y’를 뽑기 위한 게임 내 미션에 도전한다. 지난 12일부터 크래프톤과 테슬라가 선보인 특별 이벤트다. 게임 속 적들을 피해 테슬라 공장 안으로 진입해 숨겨져 있는 장치를 찾아 누르면, 컨베이어 벨트에서 파란색 모델Y가 조립되기 시작한다. 조립이 완성되면 차량에 올라탄 뒤 ‘자율주행’ 모드로 게임 속 전장(戰場)을 질주하며 적들을 공격한다. 김씨는 “게임 속에서 모델Y를 타다 보니 현실에서도 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고 했다.
코로나로 기업들의 대면(對面) 마케팅이 어려워진 가운데, 게임 속 가상현실이 마케팅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테슬라 같은 완성차 업체를 비롯해 식품·패션·은행·항공사 등 다양한 기업들이 게임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특정 게임에 충성도가 높은 게임 이용자들 대상으로 마케팅을 했을 때 홍보 효과는 훨씬 좋다”고 말한다. 코로나 사태로 게임 이용자 수가 폭증한 것도 기업들로서는 게임 마케팅에 눈을 돌리게 하는 요소다. 일례로 크래프톤의 경우 주력 게임인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에서 다른 기업과 마케팅 협업이 2019년 상반기 6건에서 올해 상반기 20건으로 크게 늘었다.
◇식품·자동차·항공사… 앞다퉈 게임 속으로
게임 업계와 협업에 가장 적극적인 건 식품업계다. 스마일게이트는 지난 14일 MMORPG(여러 명이 동시에 하는 모험성장게임) ‘로스트아크’에서 프랜차이즈 업체 맘스터치 로고가 찍힌 가상의 치킨 세트를 획득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게임 속 캐릭터가 이 치킨 세트를 먹으면 능력이 세지는 효과를 보는 것이다. 맘스터치의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로스트아크 캐릭터가 그려진 치킨세트를 팔고 게임 내에서 아이템으로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는 이벤트가 동시에 열렸다. 맘스터치 측은 “행사 첫날 전국 매장의 주문 건수가 평균치 대비 2배 넘게 늘었다”고 말했다. 넥슨은 지난 7일부터 경주 게임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안에서 오뚜기 진라면을 형상화한 카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항공 업계도 게임 마니아를 공략하며 코로나 쇼크 극복에 나섰다. 에어서울은 이달 2일부터 18일까지 컴투스의 야구게임 ‘프로야구 2021’ 안에서 국내선 항공권 응모 이벤트를 열고 있다. 에어서울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게임 광고 모델인 KBO(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사인볼을 받을 수 있는 오프라인 이벤트도 마련했다. 에어서울 관계자는 “게임 이용자들이라면 다른 저가 항공보다 에어서울을 선택할 이유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게임과의 협업 사례가 매우 드물었던 은행업계나 화장품업계도 게임 속으로 진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세계 최대 e스포츠 경기 ‘리그오브레전드’의 한국 프로리그 팬들을 위한 적금을 지난달 출시했다. 응원하는 구단의 성적에 따라 우대 금리가 제공되는 상품으로, 응원팀이 우승하면 연 0.7%의 추가 금리가 보너스로 주어진다. 지난 2월에는 아모레퍼시픽이 네오게임즈의 농장경영 게임 ‘레알팜’에서 유자 아이템을 수확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레알팜 캐릭터가 그려진 ‘달빛유자’ 마스크팩 세트를 출시해 완판에 성공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게임 마케팅을 통해 젊은 세대와 접점을 늘리면서 브랜드 홍보와 매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패션쇼가 열리는 게임 세상
코로나 이후 게임 속 자신의 캐릭터를 치장하고 개성을 표현하는 가상 패션 아이템 인기가 폭발하면서, 기성 패션 기업들도 속속 게임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프랑스 명품 패션 브랜드 줄리앙 푸르니에는 배틀그라운드 게임 내 캐릭터가 착용하는 의상과 장신구 등을 디자인하기로 했다. 미국 나이언틱의 ‘포켓몬고’ 게임 속에선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가방·티셔츠·모자 등이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지난 5월엔 구찌가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 전용 한정판 패션 아이템을 선보였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오프라인 마케팅이 쉽지 않은 만큼 게임을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는 업체는 앞으로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