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의 한 중국집. 사장 김모(60)씨가 “쿠팡이츠 배달요”라며 삼선간짜장 곱빼기가 들어있는 봉지를 건네자, 구석에 앉아 있던 배달원이 받아 문을 나섰다. 1만원짜리 한 그릇을 판 김씨가 실제 정산받는 금액은 고작 5070원. 부가세 448원을 떼고 남는 4482원이 쿠팡이츠 몫 중개 수수료와 카드 결제 수수료, 배달비로 나간 탓이다. 김씨는 “단건 배달이 늘면서 배달료 부담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음식 배달 시장에서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의 단건 배달 경쟁이 과열되면서 자영업자들이 배달료 폭탄을 맞고 있다. 한 번 배달에 한 집만 가는 단건 배달은 여러 가게를 들러 차례로 배송하는 ‘묶음 배달’보다 고급화된 서비스다. 하지만 묶음 배달(3500~4000원)보다 배달료가 1000~1500원가량 비싸다. 자영업자 78만명이 가입한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배달업체 간 경쟁으로 단건 배달이 늘어나면서 수입이 줄고 있다”는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다. “배달업체 쪽에서 음식점 리스트 위쪽에 노출해주겠다며 배달비를 업주가 다 부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글도 쏟아진다. 식당 주인이 원하면 손님이 배달료를 더 부담하도록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배달 주문량이 줄 수밖에 없어 자영업자들로선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배달료를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배달료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경기도 성남에서 한식집을 하는 김모(52)씨는 최근 주력 메뉴인 제육덮밥 도시락 가격을 7500원에서 8500원으로 올렸다. 김씨는 “가격을 올리니 고객들이 별점 테러를 하면서 주문 건수가 줄었지만 배달료를 조금이라도 보전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2019년 6월 쿠팡이츠가 처음 시작하면서 배달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높아지자 국내 최대 배달업체인 배달의민족도 지난 4월 ‘배민원’이라는 단건 배달 서비스로 맞불을 놓았다. 현재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의 단건 배달 비용은 플랫폼 이용료 1000원, 카드 수수료 3%에 배달료 5000원으로 똑같다. 배달료를 가게 주인이 고객에게 일부 부담시킬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단건 배달이 확산하면서 자영업자들의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 6년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황모(32)씨는 지난 6월 쿠팡이츠와 배민의 단건 배달(6월 1~24일 집계)만으로 매출을 136만2500원 올렸지만, 수중에 들어온 돈은 88만원에 불과했다. 주문 건마다 적게는 20~30%, 많게는 50%까지 수수료·배달료 명목으로 빠져나갔다.
소비자들이 다 만족하는 것도 아니다. 서울 강남에서 도시락집을 운영하는 정모(57)씨는 “단건 배달이 묶음 배달보다 소비자들이 체감할 정도로 빨리 배송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4단계 거리 두기 이후 배달 주문이 크게 증가하면서 단건 배달도 음식이 다 식어서 도착했다는 항의 전화를 여럿 받았다”고 말했다.
◇영세 배달업체에도 불똥
대형 배달업체가 주도하는 단건 배달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 불똥이 영세 배달업체까지 튀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서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는 장모(31)씨는 지난달 이용하고 있던 영세 배달업체로부터 “배달 기본 요금을 500원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업체는 문자에서 “지난 10여 년간 기상이나 야간 할증 없이 거리 요금제로만 운영해왔지만, 쿠팡과 배달의민족이 배달 기사를 데려가려고 추가 요금을 지급하니 배달료를 올리지 않으면 인력을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배달의민족과 쿠팡은 단건 배달 이후 배달 기사 확보를 위해 건당 배달 수수료 1만5000원 추가 지급이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에 캠핑카·금덩이 같은 경품까지 내걸며 공격적으로 인력을 모집하고 있다. 결국 손해를 보면서까지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려는 두 공룡 배달업체의 치킨게임 속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와 소비자, 영세 배달업체까지 모두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도한 단건 배달 경쟁 때문에 배달 시장 전체가 크게 왜곡되고 있다”며 “배달 공룡들은 말로만 자영업자와 상생한다고 하지 말고 배달 수수료를 낮추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