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4년째 맥줏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진아씨는 최근 1만2000원에 팔던 계란말이 메뉴를 없앴다. 계란 10개를 풀어 두툼하게 내놓는 대표 메뉴지만, 최근 급등한 계란 값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작년만 해도 4000~5000원에 납품받던 계란 한 판(30구) 값은 요즘 9000원까지 뛰었다. 계란과 같이 들어가는 야채와 식용유 값까지 재료비 비율이 판매값의 절반에 육박한다. 계란 재고가 쌓이면, 예전보다 손해가 더 큰 상황이지만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모임 금지’가 시행되면서 손님은 이전의 30%로 떨어졌다. 이씨는 “올 초 차를 팔아서 구한 현금과 주택담보대출까지 받아 겨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앞길이 막막하다”며 “문을 닫고 품이라도 팔고 싶지만 가게 차릴 때 진 빚이 남아 폐업도 못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텅 빈 식당 - 지난 27일 최근까지 영업을 했던 서울 명동의 한 식당이 텅 비어 있다. 인건비 상승과 코로나 거리 두기로 매출이 줄어 힘들었던 자영업자들은 요즘 식자재값 상승의 직격탄까지 받았다. 폐업을 고려 중인 자영업자들은 밀린 대출금 때문에 문을 닫는 것도 쉽지 않다고 호소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최저임금 인상에 코로나로 인한 영업 단축으로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최근엔 물가 폭등이라는 직격탄까지 맞아 3중고에 내몰리고 있다. 인건비 상승에는 직원 수를 줄이고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때는 배달·포장으로 버텼지만, 식재료값마저 폭등하자 이제는 팔아도 남는 게 없는 상황에까지 온 것이다. 수익이 줄어든 업주들이 임차료 같은 고정비를 내기 위해 빚을 내면서, 자영업자 대출은 급증하고 있다.

◇”식재료값 급등에 남는 게 없다”

2021년 7월 28일 서울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를 찾은 한 고객이 계란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계란(30구)은 5163원에서 7416원으로 43.6%, 삼겹살(100g)은 2349원에서 2660원으로 13.2%, 상추(4㎏)는 2만8052원에서 4만4160원으로 57.4% 올랐다. 메밀·녹두 가격도 60~70% 가량 뛰었다. 업소용 식용유 가격도 지난 6개월 사이 37~59% 올랐다./김연정 객원기자

손님이 줄어든 식당들은 원가 상승에도 음식값을 올리지 못하고 식자재비 인상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김영규씨는 광어·연어·소라 같은 수산물 가격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작년 1㎏당 1만5000원 수준이던 광어 납품가는 올해 2만9000원으로, 연어는 1만15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뛰었다. 소라는 베트남·태국 등 주 생산지가 코로나 타격을 받으면서 1만7000원이던 단가가 2만5000원까지 뛰었다. 하지만 메뉴 값은 그대로다. 김씨는 “손님이 없어 횟감 절반을 버릴 때도 있다”며 “코로나에도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오랜 단골인데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그는 “월세에 인건비, 관리비 등 고정비만 매달 970만원 드는데 손님은 예전의 4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두·밀 같은 글로벌 곡물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최근엔 폭염으로 채소값까지 뛰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상추(4㎏)는 2만8052원에서 4만4160원으로 57.4% 올랐다. 메밀 가격도 50% 안팎 뛰었다. 업소용 식용유 가격은 지난 6개월 사이 50%가량 올랐다.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 중구의 P식당은 최근 몇 달 새 처음으로 적자를 봤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사실상 저녁 장사를 접은 상태에서 계란·상추·파 등 식자재값이 급등한 탓이다. 김모 사장은 “점심때 8000원짜리 찌개를 팔면 사실상 남는 게 없고 저녁 장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방법이 없다”며 “그냥 긴 여름휴가나 다녀올 생각”이라고 했다.

◇”폐업할 돈도 없다” 자영업자의 절규

장사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지만 폐업도 쉽지 않다. 장사를 접는 순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권리금을 포기해야 하고, 신용보증기금 보증이 자동 철회돼 가게를 열 때 받은 은행 대출과 정부 지원금을 일시에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대치동에서 6년째 주점을 하고 있는 이상봉 사장이 그런 경우다. 그는 “예년 월 3000만원이던 매출이 이달 700만원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반면 재료인 콩기름은 2만7000원에서 4만원대로, 두부는 4000원에서 5000원으로 뛰었다. 그는 인건비도 안 남아 가게를 접으려 했지만 포기했다. 장사 시작할 때 받은 사업자 대출 3000만원과 소상공인 대출 6000만원을 한 번에 갚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이 사장은 “가게를 시작하면서 권리금을 5000만원이나 냈는데 폐업을 하면 권리금은커녕 1억 가까운 빚을 한 번에 갚아야 한다”며 “진작 가게 문을 닫지 않은 걸 후회한다”고 말했다.

폐업을 못 한 가게들이 빚으로 버티면서 자영업자 대출은 쌓여만 간다. 작년 1분기 700조원이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 2분기 841조원까지 늘었다. 통계에 안 잡히는 사금융까지 합치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정부가 국민 88%를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뿌린다지만 이 돈이 소상공인들에게 돌아가긴 어렵다”며 “자영업자 대출 급증이 우리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만큼 해당 재원을 자영업자에게 직접·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