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호주의 총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5%쯤 된다. 2019년 한해에만 130만명의 중국 관광객이 호주를 찾아 15조원을 썼다. 호주내 외국인 유학생의 30%는 중국인이다. 단일 국가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중국 경제 의존도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작년 5월 중국이 한국에 대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을 닮은 전방위 무역 규제를 호주에 퍼부을 때만 해도, 호주의 항복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16개월이 지난 지금, 승리의 추는 호주로 기울었다.
‘코로나 불황’까지 닥친 지난해 호주의 대중국 수출은 1년 전 보다 2.1%만 감소했고 올 상반기에는 작년 동기 대비 21% 넘게 늘어난 게 이를 보여준다. 인구는 54배, 경제규모는 9배 큰 중국에 맞서서 호주가 굴복은커녕 이기는 비결은 뭘까.
◇10개월 인내 뒤 ‘中 급소’ 쳐
2018년 8월 집권한 자유당 정부는 경제적 이익 상실이 두려워 중국에 굴복한 예전 정부와 달리 호주의 주권(主權)을 최우선시했다. 그해 호주의 5G 통신사업에 중국 IT기업인 화웨이의 참여 배제를 결정했다. 이듬해 4월에는 국제사회 차원에서 중국의 코로나19 기원과 책임에 대한 조사를 공식 요구했다.
이에 격분한 중국 정부는 작년 5월부터 11월까지 호주산 보리·면화·목재·랍스터·구리·와인·관광객 등 13개 분야에서 수입 제한과 금지, 통관 불허 같은 보복을 취했다. 반(反)덤핑 관세율은 80~200%였다. 캔버라 주재 중국대사관은 작년 11월 14개 반중(反中)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협박했다. 중국 관영매체 간부는 “호주는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껌”이라며 능멸했다.
스콧 모리슨 총리는 그러나 “중국의 압박 때문에 우리의 가치관을 팔지 않겠다”며 스파이 활동 혐의를 받는 중국인 학자들의 비자를 취소했다. 중국 기업의 호주 회사 인수 계획은 무산시켰다.
10개월간 냉정한 인내로 버티던 호주는 올 3월부터는 ‘반격 카드’를 내놓고 있다. 중국 축산 농가의 필수품인 호주산 건초 수출 금지, 남부 빅토리아주가 맺은 중국과의 ‘일대일로 협약’ 취소, 미국과 연합 군사 훈련 강화, 대만과의 통상장관 회담 개최로 중국의 급소를 쳤다. 이런 정책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민의(民意)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었다. 실제로 중국에 대한 호주 국민의 부정(否定)적 인식은 2017년 32%에서 지난해 81%로 치솟았다.
◇‘필살기’와 수출국 다변화로 맞불
철광석은 호주의 대중 수출액에서 60%가 넘는 최대 단일 품목이다. 호주 경제의 생명선인 이 철광석에 대해 중국은 지금까지 어떠한 규제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전체 철광석 수입량의 60%에 이르는 호주 철광석은 고(高)순도인데다, 대체재가 없어 수입을 줄일수록 중국 경제가 더 휘청거리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로 타격을 입고 있다. 수입 석탄의 절반을 차지해온 호주산 공급이 작년 말부터 끊어지자, 올해 초 t당 695위안이던 중국내 발전용 석탄 가격은 지난주 1086위안으로 50% 넘게 뛰었다. 관영매체들은 이달 현재 중국 31개 성·시(省市) 가운데 최소 20곳에서 전력 제한 공급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정전과 단전 사태가 전국에서 빈발해 공장 가동 중단이 잇따르고 있다. ‘호주 때리기’가 거꾸로 부메랑이 돼 ‘중국의 발등’을 찍고 있는 것이다.
면화, 보리, 쇠고기, 와인 등은 수출 대체국가 확보로 수입 금지 충격을 상쇄했다. 호주 시드니기술대학의 ‘호주·중국 관계연구소(ACRI)’는 이달 9일 “중국의 보복 조치로 인한 호주의 손실은 총수출의 10% 미만에 그쳤고, 일부 수출업자들에게는 거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왕윤종 동덕여대 교수는 “중국에 맞선 호주의 필살기(必殺技)가 철광석이라면 한국에는 반도체가 있다”며 “중국은 자국 경제에 치명적인 품목은 수입 규제를 못한다. 으름장을 앞세운 중국의 보복 공세에 우리가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美와 동맹 강화로 中에 ‘승부수’
중국의 전방위 공세와 겁박을 잠재우는 최종 병기로 호주는 미국을 선택했다.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63년 만에 핵잠수함 기술을 전수받아 최신 핵추진 잠수함 8척을 짓기로 한 ‘오커스(AUKUS)’ 동맹이 결정판이다. 이달 15일 출범한 이 동맹은 1951년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가 체결한 앤저스(ANZUS) 안전보장조약 이후 70년 만에 가장 의미있는 안보전략 전환으로 꼽힌다.
오커스 3개국은 사이버·인공지능(AI)·양자 컴퓨팅·수중 시스템 같은 핵심 기술 협력 강화와 안보·정보 및 기술 공유에도 합의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는 “중국 스스로가 강압적 행동으로 ‘오커스 동맹’ 결성을 촉발했다”며 “호주의 참여는 전 세계에 지정학적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주는 이달 24일 미국과 일본, 인도 등 쿼드(Quad) 4개국 정상회의 참가로 ‘친미·반중’ 노선을 확실히 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는 중국의 야욕과 무례에 정면대응하며 쐐기를 박은 호주의 결정적 승부수”라며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취해온 프랑스가 미국의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中의 보복과 위협 두려워 말아야...리더들의 결연한 의지 가장 중요”
클라이브 해밀턴 호주 찰스스터트대 교수 인터뷰
“호주 정부는 중국의 위협이 일시적이지 않고 앞으로 계속될 것임을 깨닫고 단호하게 대응했다. 그 연장선에서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의 동맹 업그레이드까지 했다.”
중국의 호주 사회 침투 실태를 분석한 ‘중국의 조용한 침공’과 ‘보이지 않는 붉은 손’ 등의 저자인 클라이브 해밀턴(Hamilton) 호주 찰스스터트대학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2년간 중국의 협박 공격에 직면한 호주 정부는 단단하고, 굽히지 않는(a firm, unbending) 자세로 일관했다”며 “이것은 나름 매우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호주의 주권과 민주적 권리가 중국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에서 호주 정부는 중국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레드 라인(red line)을 정했다. 그리고 어떤 경제적 댓가도 치를 수 있다는 각오로 이를 지켜오고 있다. 호주 국민들도 이런 전략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그는 “호주 정부가 중국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호주 언론과 정보기관의 역할이 컸다”며 “언론사들이 중국의 호주내 개입과 침투, 영향력 행사 실태를 활발하게 추적 보도했고, 정보기관들도 경고성 분석 보고서들을 내 호주를 속국(屬國)으로 만들려는 중국의 야망을 폭로했다”고 밝혔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대한 조언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국공산당은 상대방 국가의 정계와 재계, 학계, 언론계, 문화계 엘리트들을 표적으로 정해놓고 구스르고(groom), 포섭하고(co-opt), 압박하는(coerce) 전술을 구사해 친중(親中) 인사로 만든다. 그런 다음 이들을 모욕할 수단을 확보해 꼼짝 못하게 한다. 한국 국민이 주권 국가로서 독립과 민주적 권리를 지키고자 한다면, 중국이 부과할 경제적 보복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어느 정도 경제적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이겨내겠다는 결연한 의지(意志)가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