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우리나라의 모든 이슈를 집어 삼키는 블랙홀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토지와 아파트, 주택, 상가, 오피스텔 등은 돈을 벌려는 작당모의가 난무하는 ‘복마전(伏魔殿)’이 됐다.
지난달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을 출간한 마강래(50)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해결책으로 ‘수도권(首都圈)’이라는 공간에 주목한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수도권 일극화(一極化)를 내버려 둔다면, 주택 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서울 집값 상승세를 잡을 수 없다. 서울의 대항마(對抗馬)를 만들어 수도권으로 몰리는 부동산 수요를 줄여야 한다.”
전통적인 부동산 정책인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 외에 ‘수요 분산’이라는 제3의 카드를 제시한 것이다.
영국 런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지역개발학회 부회장,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이사를 지낸 마 교수는 <지방도시 살생부>(2017)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2018)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2020) 같은 강렬한 제목의 책들을 잇따라 냈다. 이달 9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나 2시간여 인터뷰했다.
◇文 정부 출범 후 ‘복마전’된 한국 부동산
- 최근 4년간 26차례 정책에도 수도권 집값이 계속 오르는 근본적인 이유는 뭔가?
“유동성(돈의 흐름)이 워낙 풍부하고 정부의 오락가락 부동산 대책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서울 주택을 사려는 대기 수요가 매우 많아서다. 서울, 특히 강남 주택을 사려고 전 국민이 줄서있다. 강남 3구에서 매입한 아파트의 외지인 비율은 2015년 18.2%에서 지난해 25.6%로 높아졌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서울은 세계 10대 슈퍼스타 도시 중 하나다. 대도시가 사람과 기업, 돈을 빨아들이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다. 일자리와 혁신 인재가 넘치고 모든 생활편의 기능이 뛰어나 미래 가치까지 높은 서울과 수도권에 더 많은 부동산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 규제 완화와 공급 확대로는 서울과 수도권 집값을 잡을 수 없나?
“강남 재건축을 풀고 50층짜리 고층 아파트 재건축을 허용하는 순간, 집값 상승 기대감이 커진다. 수도권에 일자리와 인재가 몰리는 상황에서 주택은 더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잠시 쉬었다가 집값은 또 오른다. 공급 확대는 정말 순진한 발상이다.”
마 교수는 “정부가 최근 내놓은 대규모 공급 대책은 지방 인구의 수도권으로 유출만 가속화한다. 이러면 지방 소멸이 빨라지고 수도권은 더 과밀화된다”고 경고했다.
◇“3기 신도시 후에도 서울 집값 또 오를 것”
-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계속 더 오른다는 말인가?
“그렇다. 규제와 공급 증가 후에는 집값이 일시적으로 주춤하지만 수도권 쏠림세가 계속된다면 다시 오른다. 1990년대 초부터 30년 동안 1기와 2기, 3기 신도시를 서울 주변에 지어 공급을 늘렸지만 집값은 잠시 안정후 다시 오르는 계단식 뛰기 패턴을 보여왔다. 3기 신도시 공급에 따른 일시적 안정이 끝나면 다시 4기, 5기, 6기 신도시를 짓는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다.”
-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화, 과밀화는 어느 정도인가?
“총국토면적의 12% 남짓한 수도권에 거주하는 인구가 지난해 단군 이래 최초로 총인구의 50%를 넘었다. 수도권의 상당부분은 임야와 산지여서 가용(可用) 택지(宅地)가 적다. 수도권의 인구 밀도(密度)는 세계 최고로 추정된다.”
◇“수도권 과밀집중은 저출산 등으로 亡國 초래”
- 수도권에 사람과 기업이 몰리는 게 반드시 나쁜가?
“수도권의 과밀화와 이에 따른 집값 급등은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 기피를 낳는 주범이다. 이는 구조적 저출산 심화로 이어진다. 신생아가 없는 수도권, 청장년이 사라진 지방, 역사와 문화를 지닌 지방의 소멸은 비극적인 국가 멸망이다. 정부는 ‘지방 살리기에’ 도시재생 뉴딜 등 50조원을 투입하는데 이는 4대강사업 총사업비 22조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 수도권 부동산 수요를 줄일 방법이 있나?
“먼저 ‘베이비부머’들을 지방으로 보내는 방법이 있다. 1차(1955~63년)와 2차 베이비부머(1968~74년)는 약 1700만명으로 총인구의 3분의 1이다. 지방 출신으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 440만명 가운데 10%만 귀향해도 40만명이 넘는다.”
◇“베이비부머 40만명 귀향하면 집값 안정돼”
-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지방으로 가는 베이비부머들에게 명확한 경제적 이득을 안겨줘야 한다. 지방의 ‘인구감소지역’으로 이주할 경우 실(實)거주 않더라도 주택연금 자격 요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가구 주택 소유자가 주택을 자녀에게 증여하고 지방으로 이주할 때 증여세 완화도 좋은 방법이다. 단 50만명 이하 지방 중소도시에 3년 이상 거주하는 식의 조건이 필요하다.”
마 교수는 “수도권의 베이비부머들이 지방으로 이주하면 수도권 임대차 시장에 최소 10만~20만호가 새로 나와 전월세 가격과 매매가격이 내려간다”며 “주택 수요의 공간적 분산은 단기간에 집값을 안정화시키는 강력한 대안”이라고 했다.
- 수도권 독주(獨走)에 맞서는 ‘지방의 대항마’ 육성도 주장했는데.
“과거 국가산업단지 유치로 지방 도시의 부흥을 꾀하던 시대는 지났다. 전통 제조업의 쇠퇴로 직격탄을 맞은 창원, 울산 등이 증거이다. ‘대항마’ 육성은 서울 강남이나 판교처럼 고급 인재와 혁신성장기업들을 빨아들이는 매력적인 융복합 공간을 지방 광역권에 만들자는 얘기이다.”
- 기업의 지방행은 말은 쉬워도 실행은 매우 힘들다. 어떤 해법이 있을까?
“지금보다 법인세 혜택을 5배 정도 늘려도 기업은 지방에 오지 않는다. 기업들에게 파격적 권한과 자율을 줘야만 한다. 목좋고 유망한 곳에 소규모 혁신 타운을 지자체와 기업이 공동개발하거나 기업에 개발권을 줘 마음껏 이용토록 해야 한다. 그래서 기업들이 아파트를 지어 직원들에게 특별공급하고, 수익도 내고, 소규모 대학 또는 학과를 세워 인재 교육과 채용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문화시설과 여가 공간 확보는 필수적이다.”
◇“기업·혁신 인재 몰리는 싱가포르 ‘원 노스’가 모델”
- 외국에서 이렇게 성공한 사례가 있나?
“싱가포르 도심 지하철역에 붙어있는 IT비즈니스지구(地區) ‘원 노스(One North)’가 대표적이다. ‘원 노스’는 일자리와 기업, 주거, 문화, 여가 등 8가지 기능을 한 곳에 융복합시켜놓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조성돼 현지 스타트업과 오라클, 캐논, 후지쓰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입주해 있고 청년들도 넘쳐난다.”
- 우리나라에서 싱가포르 ‘원 노스’ 같은 시도가 어디서 가능할까?
“비수도권 가운데 향후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부산 북항(北港)’ 일대이다. KTX 부산역과 인접한 역세권이다. 이 일대를 기업과 부산시가 공동 설계하고 공동운영해 ‘원 노스’ 같은 융복합 공간을 지어 혁신 인재와 기업들을 모으는 것이다. 우리나라 굴지의 IT기업들과 외국 기업들과 협의해 추진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비수도권 통틀어 ‘부산 북항’ 가장 유망해”
- 제2, 제3의 강남을 수도권에 만들면 어떤가?
“그렇게 되면 수도권 집중과 집값 상승이 더 악화된다. 그렇다고 전국에 재원을 골고루 나누는 균형발전도 대안은 아니다. 유일한 해법은 수도권에 필적하는 광역권에 강남 같은 강력한 광역 거점을 만드는 것이다. 인구 787만여명의 ‘부산·울산·경남’을 시작으로 전국에 3~4개 거점을 만들면 집값 안정과 균형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 부동산, 국토계획과 관련해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출마 후보들에게 조언한다면?
“서울의 출산율은 0.64로 세계 최저(最低) 가운데 최저이다. 수도권 집중은 저출산, 집값 폭등을 낳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이 상태라면 수도권은 더 융성하고 비수도권은 더 쇠퇴해 부산·대구·광주·울산·대전·세종 같은 광역대도시의 인구 붕괴가 조만간 본격 시작될 것이다. 임기중 수도권 일극화 해소를 위해 강력한 의지로 ‘파격적인 특단의 정책’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