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 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창업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결정이다. 특히 그 직장이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라면. 그 어려운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려한 컨설팅 회사와 대기업 경력을 뒤로 한 청년들이 뭉친 스타트업 ‘김캐디’의 이요한 대표를 만났다.
◇골프 중독자 애태우던 예약시스템
‘김캐디’는 스크린골프 예약 불편을 없애기 위해 등장했다. 전국의 스크린골프시설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가격을 비교해 예약까지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웹 또는 앱에서 클릭 몇 번으로 이용할 수 있다.
김캐디는 출시 2년 만에 다운로드 수 누적 18만 건, 예약 누적 건수 20만 건을 돌파했다. 등록된 골프 연습장은 전국 약 6000개에 달한다. ‘스크린 골프 예약은 김캐디가 있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게 이요한 대표의 자랑이다.
이 대표는 2013년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부즈앤컴퍼니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기업 경영 컨설팅 경력을 쌓았다. 이어 회계·재무·자문 회사인 KPMG 전략 컨설팅 본부에 4년 간 몸담았다. 의뢰받은 기업의 사업 전략을 세우고, 보고서 작성하는 일을 했다. 2~3개월 주기로 출근하는 고객 기업이 바뀌었다.
직장 생활의 낙은 스크린 골프였다. 점심 먹는 시간을 줄여가며 다닐 정도로 단단히 중독됐다. 그런데 아쉬웠다. 황금 같은 점심시간 1분 1초가 아쉬운 마당에 주변 스크린 골프장에 전화를 돌리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잦았다.
“골프가 점점 대중화되고 있었고, 스크린 골프장도 많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약 시스템은 제자리더군요.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업 전략을 종이에만 담아두기보다 직접 실현시키기로 했습니다.”
2018년 8월 과감하게 사표를 썼다. 퇴직금 5000만 원에 창업 대출 2000만 원을 더해 앱 개발에 쏟아부었다. 스크린 골프장에 직접 가 보지 않아도 가격과 시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첨엔 예약 플랫폼에 입점하도록 매장 사장들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매장 사장님들은 새로운 플랫폼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화 예약은 고객뿐만 아니라 사장님에게도 불편한 시스템인데, 역설적으로 그 불편함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죠. ‘이 업계는 원래 단골 장사야’란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이 대표는 완고한 사장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한 매장에 많게는 8번까지 방문했다. 앱을 통해 새로운 고객이 생길 수 있고 무료 홍보도 된다고 설득했다. 각 매장 가격 정보를 확인하고 시설의 사진을 찍어 기록했다. 발로 뛰어 얻은 약 350개 매장의 가격 정보와 내부 사진 데이터를 종합해2019년 2월 ‘김캐디’를 시장에 내놓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김’에 골퍼의 단짝친구 ‘캐디’를 붙여 ‘김캐디’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용자가 말하는 대로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총 다섯 명의 공동창업자가 힘을 합쳤다. 이 대표와 부즈앤컴퍼니 인턴 생활을 함께한 나종석 이사는 현대자동차에서 쌓은 빅데이터 경력을 살렸다. 나 이사와 현대자동차 같은 팀 동료였던 개발자 최재림 이사도 합류했다. 뒤이어 앱 개발자 오정규 이사, 디자이너 서영웅 이사까지 모여 ‘김캐디 어벤져스’가 완성됐다.
“대기업 연봉이 어찌 아쉽지 않을까요. 하지만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연봉 숫자를 올리는 것보다 내가 꿈꾸던 일을 주도적으로 실행해나가는 것에 더 만족해요.”
‘김캐디’를 출시한 2019년, 3개월 동안 스크린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장님 솔루션’ 서비스 개발을 위해서였다. “방 5개 규모의 작은 매장이었습니다. 저 혼자서 손님 응대하고 전화로 예약받고 청소도 했어요. ‘김캐디’로 이용자의 편의성은 높아졌는데 사장님들은 여전히 공책에 수기로 예약 내용을 기록하시더라고요.”
이런 고생 끝에 탄생한 게 지금의 김캐디 앱이다. 김캐디 앱을 켜면 내가 있는 곳을 기준으로 지도가 펼쳐진다. 스크린골프장의 위치와 가격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다면 예약과 결제까지 터치 몇 번이면 된다. 고객 의견을 적극 반영해 서비스를 개선했다. “지도 위에 가격이 보이도록 한 것, 간편 예약 기능을 추가하도록 한 것 모두 이용자가 남겨준 댓글과 채팅 상담에서 가져온 아이디어예요.”
◇8번 거절했던 매장이 먼저 찾아와
2021년 5월 예약 건수는 전년 동월 대비 350% 이상 늘었다. 매장 리뷰는 3만 9000건을 넘었고, 거래 누적액은 14억 원에 달한다.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지 1년 반 만에 얻은 성과다. 출시 초기 8번이나 방문해도 거절했던 사장님에게서 먼저 매장 등록 요청이 왔을 때, 김캐디의 인기를 실감했다.
“고객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점이 가장 주효했습니다. 사실상 김캐디는 ‘댓글’이 키웠다고 봐야죠. 시장의 흐름을 잘 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골퍼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전화보다 앱으로 예약하는 습관이 형성되는 시점에 ‘김캐디’가 등장한 겁니다.”
◇골프 예약의 ‘호텔스컴바인’ 목표
한때 이 대표는 ‘앱 개발만 하면 알아서 굴러갈 것’이라고 단단히 착각했다. “완전한 자동화는 없어요. 예약 시간이 잘못 설정되거나 매장이 검색되지 않는 등 오류가 생기면 팀 전체에 비상이 걸리죠.”
교통이나 쇼핑, 금융 등 다른 업종에 비해 스포츠 시장은 IT로의 전환이 더딘 편이다. 정량 평가 대신 정성 평가가 지표로 통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다다익선이 필요하다. 김캐디는 골퍼들이 편리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지금까지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속해서 서비스를 확장할 예정이다.
“골프에 입문하는 ‘골린이’가 ‘골프광’이 되는 과정을 모두 함께하고 싶어요. 골프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골프 레슨’ 관련 항목을 추가하거나, 실내 골프를 통달한 골퍼를 위한 ‘필드 골프장 예약’ 등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골프 시장의 확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해외 진출의 꿈도 밝혔다. “김캐디를 골프계 ‘호텔스컴바인’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골퍼들이 여행을 갈 때 2개 앱은 필수로 설치해야 하는 때가 올 겁니다. 호텔스컴바인 그리고 김캐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