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 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천경호 대표 /아베크

창업은 아이템 선택이 관건이다. 애착을 갖고 집중할 수 있으면서, 사업성도 있어야 한다. 이런 아이템을 찾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 가까이에서 해답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베크 천경호(49) 대표는 반려견을 끔찍이 아끼는 두 딸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천 대표를 만나 반려동물 가전 스타트업 창업기를 들었다.

◇반려동물 미세먼지와 각종 균 제거, 건조

아베크 케어룸 /아베크

케어룸은 반려동물 털에 붙어 있는 미세먼지와 각종 균을 없애주는 기기다. 외관은 반려동물 집 같다. 기기에 동물이 들어가면 바람과 LED 광으로 20분가량 살균을 해준다. 목욕 후 털의 남아 있는 물기를 말리는 데도 좋다. 바람의 세기와 온도, 디자인 등은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범위로 설계됐다.

브랜드케이(우수·혁신 중소기업 제품 인증 브랜드) 상품에 선정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온라인몰(https://bit.ly/32YRZWM)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렌털도 한다.

◇기업 임원부터 창업까지, 끝없는 도전

회의하는 아베크 직원들. 맨 오른쪽이 천 대표. /본인 제공

천경호 대표는 가전제품과 연이 깊다. 1997년 대우캐리어 연구원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36살에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에어컨 분야에서 오래 일했어요. 2006년 사업 부서를 총괄하는 임원이 됐죠. 당시 고가의 에어컨을 판매하기 위해 떠올린 방법이 렌털이에요. ‘에어컨을 싸게 이용하는 방법’으로 렌털 마케팅을 제시했는데 반응이 좋았죠.”

계속된 승진을 마다하고 더 큰 목표를 세웠다. 2012년 2월 에어컨 총괄 부문 본부장 자리를 내려놓고 렌털 사업 전문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생활 중 쌓은 인맥인 KT금호렌터카 담당자와 손잡고 장기렌터카 시장을 공략했다. “렌터카는 가전보다 접근이 더 어려웠어요. ‘렌터카는 여행 갈 때나 이용하는 것’이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했죠. TV 홈쇼핑으로 비싼 차를 싸게 탈 수 있다는 걸 강조했더니, 첫 방송에서 주문이 5000건 들어왔어요. 첫 창업에서 성공을 거두니 자신감이 붙더군요.”

아베크 직원들 /아베크

탄탄대로를 달렸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4년이 지난 2016년 말, 대표 자리를 넘기고 회사를 떠났다. “어쨌거나 렌털 사업은 다른 회사의 성장을 돕는 일이잖아요.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에어컨 회사에서 익힌 가전제품에 대한 이해력과 사업가로서의 추진력을 결합하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죠.”

6개월 동안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창업 아이템만 고민했다. 그러다 눈에 띈 게 10년 넘게 키우던 반려견 ‘송이’다. “강아지가 원인 모를 피부염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어요. 반려동물은 지면과 가까이 생활하니 바닥에 쌓인 먼지를 접촉할 일이 많잖아요. 산책하러 다녀온 후에도 온갖 세균과 미세먼지가 털에 붙어있을 텐데 발만 닦아 주고요. 맨날 강아지와 뒹굴며 노는 딸들의 건강에도 안 좋을 것 같았죠. 이를 해결할 가전제품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피부병 앓던 강아지 보며 개발한 가전제품

천 대표가 기르는 강아지 '송이'. 오른쪽은 송이가 케어룸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 /본인 제공

반려동물은 너무 자주 씻으면 피부가 약해진다. 털을 말릴 때 드라이기의 소음이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씻기지 않아도 몸에 붙은 먼지와 균을 없앨 방법을 찾기로 했다. “당시 반려동물 건조기가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동물이 기기 안으로 들어가면 건조되는 방식이죠. 건조를 넘어 살균 기능까지 탑재한 제품을 구상했습니다.”

에어컨을 만들 때 개발했던 건조 기술이 머리를 스쳤다. 2015년 본인이 개발해서 직접 특허까지 냈던 기술이다. “바람의 위치가 핵심입니다. 바람이 기기 아랫부분에서 나와, 역회오리를 일으켜요. 위에서 아래로 부는 바람보다 반려동물의 털 안쪽을 공략하기 적합하죠. 이 기술이 여기에 쓰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의외였습니다.”

아베크 케어룸의 초창기 시제품들 /아베크

2017년 8월, 아베크 법인을 설립하고 개발에 착수했다. “건조 기능만 있는 제품들과 차별점을 두는 데 주력했어요. 바람으로 먼지를 날려주고 LED 광으로 살균까지 하는 구조를 기획했죠. 살균 효과가 있는 LED와 공기청정기용 필터를 넣었어요. 몇 개월간 여러 업체를 둘러보며 엄선한 부품들이죠. 시제품을 만든 후 단국대학교 미생물학과에서 성능 실험을 진행했어요. 20분간 작동하니 식중독균, 대장균 등 각종 균이 99% 없어지더군요.”

아베크 케어룸 제조 과정. 공기청정기용 필터가 들어간다. /본인 제공

세부 기능과 디자인을 반려동물의 눈높이에 맞췄다. 외관은 집처럼 느낄 수 있도록 친근하게 꾸몄다. “서울시수의사협회 문을 두드려 수의사 10명을 자문으로 모셨어요. 이분들의 조언을 수렴해 간접 바람 방식을 택했습니다. 제품의 바닥면을 한 번 친 후 올라오는 바람이라 부드러운 편이죠. 덕분에 동물은 스트레스 없이 바람을 맞을 수 있습니다.”

아베크 케어룸 /아베크

수많은 시제품 제작 끝에 케어룸을 완성했다. 높이와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60cm 정도로, 10kg 이하 중형견까지 이용할 수 있는 크기다. “전선에 연결할 코드가 가까운 곳에 배치하면 됩니다. 탑재된 케어 모드는 자연 바람을 구현하는 자연풍 코스, 목욕 후 사용하는 쾌속 살균 등 총 다섯 가지예요. 케어 기능을 이용하지 않을 땐 집처럼 사용할 수 있죠.”

2018년 10월 온라인 몰과 홈쇼핑에 제품을 선보였다. 한때 전문 분야였던 렌털도 유통 창구로 활용했다. “가격대가 낮지 않으면 구매가 망설여지잖아요. 그래서 렌털 서비스를 진행했는데 성행하더군요. 이용자의 80%가 렌털 소비자일 정도죠. 현재 온라인몰(https://bit.ly/32YRZWM)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고요. 렌털은 가전제품 렌털 전문 플랫폼인 얼리와 협업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 모두를 위한 서비스 꿈꿔

아베크 이지안 이사(왼쪽)와 천경호 대표. /더비비드

제품 출시 후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회사 내부 다지기에 들어갔다. “네트워크를 활용해 대우 출신 기술자와 애견 전문가 등을 영입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반려동물에 진심인 사람이 필요해 방송인 이지안 씨에게도 입사 제안을 했어요. 배우 이병헌 씨의 동생으로 알려진 이 씨는 반려동물 열두마리와 함께 애견펜션을 운영하던 열성 반려인이죠. 2021년 8월 이사로 합류했습니다.”

3년간 1만명 넘는 반려인이 케어룸을 이용했다. 각종 기업과 개인으로부터 유치한 투자금이 50억원을 넘는다. 반려동물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는 게 목표다. “반려가족을 위한 플랫폼 사업도 펼칠 예정이에요. 앱을 통해 반려동물 관련 콘텐츠와 전문가 연결 서비스를 제공하려 합니다. 작년에 개발자를 충원해 개발을 마친 상태예요. 이 이사가 노력을 쏟고 있는 유기동물 관련 플랫폼도 준비 중이죠.”

회의 중인 아베크 이지안 이사와 천경호 대표. /더비비드

정신 없이 바쁘지만 가족 관계는 더 돈독해졌다. 가족의 고충을 어루만진 아이템을 만든 덕이다. “저희 강아지가 첫 소비자인데, 피부병이 갈수록 좋아지더군요. 제품을 가동하지 않을 때도 들어가서 낮잠을 자곤 해요. 무엇보다 딸들이 너무 좋아해요. 아빠는 그저 집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뭘 하는지 정확히 알겠다면서요.”

예비 창업가에게 ‘불편을 즐기라’고 조언했다. 대표의 노력과 회사의 성장 가능성이 비례한다는 것이다. “반려동물 시장이 결코 만만치 않았어요. 유아용품처럼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동물과 사람 모두 고려해야 하니 이것저것 챙길 게 많죠. 쉬운 길을 택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걸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