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 4번 출구 쪽 대로변과 이면도로를 따라 조성된 강남구 논현·학동 일대 ‘타일거리’. 고급 타일 업체와 세라믹·조명 등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가게와 쇼룸이 몰려 있다.
타일거리 이면도로를 10분 정도 걷다보니 창문을 유독 크게 낸 지상 4층짜리 빌딩이 나왔다. 천연 고농축 세제와 섬유유연제로 최근 젊은층에 인기 있는 한 프리미엄 홈케어 브랜드의 사옥이다. 이 건물은 통창 수준으로 시원하게 뚫린 창문을 통해 각 층에 입점한 매장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주변 건물은 대부분 벽돌이나 돌로만 마감했는데, 이 빌딩은 벽돌과 금속재 두 가지를 섞어 외관을 장식한 것도 눈에 띈다.
원래 이 건물은 1995년 준공한 지하1층, 지상 3층 규모 낡은 벽돌 다가구주택이었다. 건축주가 지난해 8월부터 4층으로 증축 리모델링을 시작해 올 1월 완공했다. 증축을 통해 원래보다 연면적이 126평에서 18평쯤 더 늘었다. 완공 두 달도 안됐지만 벌써 모든 층이 꽉 찼다. ▲지하 1층~지상 1층 타일업체 ▲지상 2~3층 프리미엄 홈케어 브랜드 ▲4층 IT전문 스타트업이 각각 입점했다. 건축비 5억5000만원이 들었지만 한 달 임대료만 2000만원쯤 된다.
이 건물 설계를 맡은 김종석 땅집고 리모델링건축지원센터장(에이티쿠움파트너스 대표)은 “다가구주택을 상가로 바꾸는 프로젝트인만큼 기존 건물 장점을 살리면서 상업용 건물의 매력을 극대화해 주변과 차별화하는 리모델링 설계를 고안해냈다”며 “건물이 디자인적으로 돋보여서 공사 중에도 꾸준히 임차 문의가 들어왔다”고 했다.
◇누수 막기 위한 ‘20㎝의 마법’…징크로 모던한 느낌 살려
기존 다가구주택은 준공 26년차였다. 통상 수십년된 건물은 비교적 구조가 약한 연와조(벽돌)가 대부분이어서 증축 리모델링할 경우 하중을 못 견뎌 별도 구조 보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건물은 운 좋게 철근콘크리트로 지어 튼튼했다. 이 때문에 구조 보강을 거의 하지 않아 건축비를 크게 절약했다.
또 기존 주택이 건폐율(법정 60%)은 꽉 채웠던 반면 용적률(최고 200%)에는 여유가 있었다. 따라서 기존 건물에 한 개층을 더 올리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가능했다. 리모델링 후 용적률은 종전 168%에서 199.84%가 됐다. 증축한 4층 외관 마감재는 철제인 함석 패널을 사용했다. 붉은 벽돌 기존 건물에 모던한 느낌을 주기 위한 포인트 자재였다. 김 대표는 “함석는 내구성과 방수 성능이 좋으면서 경쾌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낸다”며 “현재 건물에 입점한 업체들이 추구하는 브랜드 이미지도 고려해서 정한 것”이라고 했다.
이 건물을 찬찬히 보면 증축한 4층이 20㎝ 정도 도로 쪽으로 툭 튀어나왔다. 기존 건물과 증축한 부위가 맞닿은 곳에 자칫 누수가 생길 것을 감안한 설계였다. 증축 부위가 일종의 처마 노릇을 해 빗물로부터 기존 건물을 보호한다.
◇창문 키우고 노출 계단 만들어…건물 자체가 쇼룸
주거용으로 쓰던 빌라를 상가로 바꾸는 만큼 고객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설계도 필요했다. 먼저 창문을 키웠다. 김 대표는 건물 4개면에 있던 창문의 크기를 모두 2배 정도 키우기로 했다. 층마다 창문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커졌다. 통창 못지 않은 크기가 됐다. 확 커진 창문을 통해 거리에서도 매장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어, 마치 건물 자체가 하나의 쇼룸 같다.
노출 계단도 만들었다. 기존 빌라는 출입구에서 각 층으로 갈 수 있는 계단실이 외부와 차단돼 있었는데, 이를 모두 철거한 것이다. 건물과 외부 공간이 연결된 것 같은 효과를 내면서, 건물 채광과 통풍 효과도 높인다. 노출 계단 바로 옆에 세워둔 얇은 콘크리트 가벽도 포인트다. 이 벽에 층마다 입점 업체 정보를 적어둘 수 있어 세입자에게 도움이 된다.
김 대표는 “큰 창문과 노출 계단 설계로 ‘열린 건물’을 지어 보행자가 건물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을 줄였다”며 “2층 이상 매장도 1층 못지 않은 모객 효과를 내 상가 가치가 확 오르고 임대 수익도 덩달아 늘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