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줄서기, 라인업'이 3개월 만인 지난 3월 29일 새벽 샤넬 오픈런 현장을 다시 찾았다. 현장은 여전히 붐볐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지난 3월 29일 오전 6시 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샤넬 오픈런 현장. 개장 시간(오전 10시30분)에 맞춰 가장 빨리 샤넬 매장에 도달할 수 있는 백화점 ‘개구멍’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전날 밤 11시쯤 도착했다는 1번 대기 손님은 “이미 구입한 물건을 단순 교환하려고 해도 오픈런을 해야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는 이곳을 지난해 12월 23일 이미 한 차례 찾았었다. 라인업 시리즈 1편이었던 ‘천만원 들고 백화점 개구멍 찾는 샤넬 노숙자들’ 기사 취재를 위해서였다. 당시 ‘샤넬 노숙자’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건 아니었다. 대기줄 근처에선 ‘진짜 노숙인’이 자고 있었다.

3개월 만에 다시 현장을 찾은 날에도 여전히 ‘그 노숙인’은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어쩔 도리가 없어 길에서 자는 노숙인, 천만원 쓰려고 불편을 자처하는 ‘샤넬 노숙인’이 한 공간을 공유하는 기이한 현장. 이 기묘한 공간 점유는 당장이라도 ‘파국적 상황’으로 치닫을 분위기였다.

만일 이곳이 사건 현장 포토라인이었다면 기자도 만사 제쳐놓고 달렸겠지만, 정작 샤넬 오픈런 현장에서는 만감이 교차해 전력 질주를 하지 못했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대기 손님끼리 시비…경찰 출동!

“여보세요. 경찰이죠? 신고 좀 하려고 하는데요.”

대기 손님 간에 시비가 붙었다. 지구대 경찰이 출동했다. 신고자는 “줄서기 대기 텐트 안에 있던 남자가 나에게 욕설을 지껄였다”며 “비싼 명품 사러 와서 왜 모르는 사람에게 험한 소리를 들어야하는지 속상하다”고 호소했다. 경찰은 10여분 간 두 사람을 중재한 뒤 터벅 터벅 돌아갔다.

줄서기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김태균씨는 “지난해 압구정 백화점 롤렉스 대기줄에선 밤새도록 손님 간 시비는 물론 고기 불판이 등장하고, 술판까지 벌어졌다”며 “이에 오픈런을 금지하고, 예약제로 돌리는 백화점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삼성동 백화점에선 최근 롤렉스 대기 예약 방식을 무작위 추첨제로 바꿨다가 홍역을 치렀다. 당첨 번호가 수십만원에 거래되는가 하면, 고성과 욕설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백화점은 결국 전화 예약제를 도입했다. 그러자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불통’이라는 민원이 쏟아졌다.

◇줄 서는 사람 많은데도, 되파는 가격 떨어졌다?

오픈런 광풍은 브랜드 이미지를 추락시키기도 한다. 득템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느긋하게 대접받는 명품 쇼핑’의 즐거움을 빼앗기 때문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샤넬 대기줄 인파 사이에는 날카로움이 팽배했다. 전문 리셀러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판에서 일반 소비자들이 쇼핑의 설렘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근 오픈런으로 물건을 구입한 사람 중 되파는 사람이 폭증하자, 리셀 가격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세한 데이터는 아래 팩트시트)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그럼에도 2차 방문 당일 백화점 개구멍 앞에는 수십명의 일반 소비자, 줄서기 알바생, 리셀업체 구매대행인이 온통 뒤섞여 철제 셔터가 올라가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탄식이 들려왔다. 국내 대표 명품카페 회원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라인업 취재팀에 다가와 “지금(3월 29일)은 월말이라 사람이 적은 편”이라며 “물량이 풀리는 매월 초순이면 오픈런 열기가 여전히 뜨겁다. 앞으로 클래식 백 가격은 2000만원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판매가는 계속해서 오를 테니 “일단 사두면 장기적으론 손해가 없다”는 취지였다.

서울의 한 백화점 앞에 걸려 있는 샤넬 로고. /연합뉴스

라인업 유튜브에서는 △샤넬 오픈런 현장에서 만난 진짜 노숙인과 경찰 △상품권 업자가 ‘홍 반장’처럼 매장 주변에 대기 중인 사연 △품귀였던 ‘샤넬 클래식 플랩백’이 매장에 풀린 모습까지!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 바로가기 [EP.3 샤넬 오픈런 ★대환장파티★ 고기 불판, 말싸움, 욕설에 경찰출동까지] https://youtu.be/HBV_u35o8O0

한 눈에 살펴보는, 샤넬 오픈런 팩트시트(Fact Sheet)

○샤넬의 대표 모델,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 가격은 2021년 12월 1124만원에서 2022년 3월 1180만원으로 또 다시 5% 가량 인상됐다.

○샤넬이 밝힌 가격 인상 사유는 △제작비 △원재료가 변화 △환율 변동 및 △국가별 가격 차이 조정이다.

○동아일보가 한국경제연구원과 지난 2월 전세계 25개 샤넬 매장에서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 판매가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사실상 호주에 이어 2위(환율 요동친 터키, 브라질 제외)였고, 아시아권에서는 제일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잇따른 가격 인상 정책으로 샤넬은 코로나 쇼크에서 벗어났다. 패션 전문 매거진 WWD에 따르면, 샤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021년 상반기 매출이 (코로나 팬데믹 전인) 2019년 상반기 대비 두 자릿수 이상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굳게 닫힌 철제 셔터 사이로 보이는 샤넬 매장. /한경진 기자

○명품 전문 애널리스트인 글로벌 투자기업 번스타인의 루카 솔카 연구원은 “명품 브랜드들이 이렇게 계속해서 가격을 빠르게 올린다면 ‘고통스러운 조정(painful correction)’을 해야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숙런’ ‘되팔렘’ 광풍으로 샤넬은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으며, 이는 리셀 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네이버 리셀 플랫폼 크림 기준,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 사이즈(은장) 리셀가는 2021년 12월 평균 1225만원→2022년 1월 1269만원→2022년 2월 1160만원→2022년 3월 1170만원→2022년 4월 현재 1150만원대로 하락했다.

○오픈런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자, 샤넬코리아는 “지난해 7월부터 (방문객의) 부티크 경험을 보호하기 위해 과도하게 매장을 방문해 다량으로 상품을 구입하는 방문객의 출입을 제한했으며, 이후 방문객이 30% 가량 감소했다”고 밝혔다. 샤넬은 한국 시장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인기 제품을 1년에 1인당 1점으로 구매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샤넬 노숙런’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3월 말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샤넬 오픈런 대기 현장에서 시비가 붙어 경찰이 출동한 모습이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STORY 조선일보 한경진 기자

#VIDEO 스튜디오광화문 이예은 PD

#유튜브 바로가기 [EP.3 샤넬 오픈런 ★대환장파티★ 고기 불판, 말싸움, 욕설에 경찰출동까지] https://youtu.be/HBV_u35o8O0

조선일보 ‘세상의 모든 줄서기, 라인업’입니다. 텍스트 기사로 전했던 ‘라인업’ 코너가 유튜브로도 진출했습니다.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각자 다른 콘텐츠를 만들던 기자와 피디가 좌충우돌 현장을 누비며 사람들이 줄 서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경제·사회 인사이트는 기사로 담아가시고, 핫한 현장 분위기는 유튜브 영상으로 느껴보세요.

[세상의 모든 줄서기, 라인업!]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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