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단종 16년 만에 재출시된 ‘포켓몬 빵’ 열풍이 오늘(4월 15일)로 51일째를 맞았다. BTS 멤버마저 빵을 구하려고 편의점 8군데를 돌았을만큼, 품귀 현상이 빚어지는 중이다. 빵 생산업체 SPC삼립에 따르면 포켓몬 빵은 재출시 43일만에 1000만개가 팔려나갔다.
열풍의 주요 원인은 빵 안에 들어있는 포켓몬 띠부띠부씰(떼었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 159종. 이 스티커는 우표·운동화·피규어부터 NFT 작품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온갖 ‘창조 경제’를 구현하고 있는, 인간의 ‘수집 본능’을 제대로 자극했다. 159종 스티커를 모두 모아 책자로 만든 ‘완성 도감’은 현재 중고 거래 시장에서 수십만~백만원대에 거래되는 중이다.
이에 ‘세상의 모든 줄서기, 라인업’ 팀도 지난 8일 새벽 서울 노원구의 이마트 트레이더스 월계점 앞을 찾았다. 창고형 할인매장인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는 요즘 주요 점포마다 매일 같이 포켓몬 빵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물건을 사러 달려가는 것)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국내 유통 체인 중에서 물건이 가장 많이 풀린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측은 “이렇게 손님들이 점포 앞에 긴 줄을 선 건 코로나 마스크 품귀 현상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포켓몬 빵은 ㅅr랑♡ⓔI었ㄷr~☆™
그렇다면 포켓몬 빵 대기줄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살벌하고 찝찝했던 샤넬 오픈런 현장( ☞기사 링크 https://url.kr/m61fye )과는 전혀 다른 따스한 분위기였으며, 라인업의 당초 예상을 벗어난 ‘특정 소비자 집단’이 집중적으로 운집해 있었다. 어린이·10대 자녀를 둔 아빠·엄마 부대였다.
이날 점포 앞에 리셀 목적으로 줄을 선 사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현장에선 스티커를 무료 나눔하는 훈훈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1000만원짜리 샤넬백보다 1500원짜리 봉지빵을 구하러 온 사람들에게 너른 여유와 관대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판 돈이 커지고, 이해관계가 첨예해질수록 라인업 팀이 찾는 오픈런 현장은 각박해진다.
인상 깊었던 1번 대기 손님. 무려 14일째 트레이더스 월계점에서 포켓몬 빵 오픈런을 하고 있다는 김모씨는 올해 마흔 다섯살인 긱 워커(gig worker·비정규 프리랜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이날 점포 앞에 오전 3시50분쯤 도착해 대기 1등을 거머쥐었다. 김씨는 가족과 따로 떨어져 혼자 살고 있으며, 허리를 다쳐 고된 노동을 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포켓몬 빵 기사를 보고 당근마켓에서 용돈이라도 벌고 싶어, 뛰어들었어요. 처음 며칠 간은 오토바이를 빌려서 편의점에 빵이 도착하는 밤 10시~11시쯤 강북구 수유동에서부터 성북구 전체를 모두 훑었죠. 그러다 창고형 마트로 오게 됐고요. 이제 리셀은 잘 안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는 커다란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를 담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가 하면, 흐트러진 현장 질서를 정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아가 며칠에 걸쳐 모은 띠부띠부씰 수십장을 근처 학부형 손님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거냐”고 묻자 김씨가 말했다. “집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TV나 보느니, 포켓몬 빵을 득템해서 나누는 게 재밌잖아요.”
이제는 ‘K-부모’ 얘기 차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 조모(45)씨와 유모(49)씨는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새벽 4시부터 돗자리, 패딩 점퍼, 담요까지 준비해 나왔다”며 “남편들은 이해를 못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런 수고와 노력은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고 했다.
대학교 입학사정관으로 일했던 박모(50)씨 부부도 비슷한 얘기를 전했다.
12살 아들에게 주려고 줄을 섰다는 임수미(39)씨는 기사에 “아들아, 작작 좀 하자!”라고 써달라면서도, 한편으론 활짝 웃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 남들과 공평한 출발선 앞에서 정당하게 줄을 서서 작은 봉지빵을 구입하는 부모의 심리란 대체 뭘까. 대단한 걸 해줄 수는 없어도, 동틀 무렵 마트 앞을 찾아가 기다리고 인내하는, 작은 정성을 가진 부모들. 그런 ‘아빠 찬스’와 ‘엄마 찬스’를 써서라도 아이 손에 인기 빵을 쥐어주겠다는 마음…. 등교 시간, 트레이더스 근처 초등·중학교 앞에서 만난 학생 10여명에게 ‘포켓몬 빵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K-10대’들은 시큰둥하게 이런 말을 남기고 총총 떠났다.
오전 6시40분을 넘어서자 대기 인파가 순식 간에 150여명으로 늘어났다. 절대 다수를 차지한 3040 아빠·엄마 부대 틈에 대학생·개교기념일을 맞은 고등학생·유튜버가 끼어있었다. 이날 마트에 풀린 묶음 상품은 모두 84개. 이날 오전 6시 35분 이후로 도착한 사람들은 빵을 손에 쥐지 못했다. 눈 앞에서 득템에 실패한 한 29세 남성은 바닥에 주저 앉아 땅을 치며 눈물까지 흘렸다. 벌건 눈으로 “원통하다”고 말하는 그에게 기자는 심심한 위로를 전해야 했다. 세상은 넓고, 소비자는 다양하다.
☞현장영상 [EP.4 ※포켓몬 띠부씰 드림※ 포켓몬빵 200% 득템하는 방법] https://youtu.be/XS-4QVH_aKE
◇포켓몬 신화, 일본의 100년 요괴學
1996년 닌텐도 비디오게임으로 탄생한 포켓몬은 지난해 25주년을 맞이한 ‘장수 캐릭터’다. 그동안 진화를 거듭하며 애니메이션·장난감·학용품·교육·서비스업으로 진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캐릭터가 됐다.
포켓몬의 2021년 총 매출은 1000억달러로 2위 헬로키티(885억달러), 3위 미키마우스와 친구들(829억달러)과도 큰 격차를 보인다. 일본 민담 속 요괴(妖怪)를 어린이용 캐릭터로 발전시킨 포켓몬이 세계 시장을 휩쓰는 현상 이면에는 100년 전부터 이어진 일본의 ‘요괴학(學)’ 지원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데, 요괴학이라니?
일본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요괴학이 학문으로 인정받아 꾸준한 연구가 이뤄졌고, 현재도 세계요괴협회, 와세다대 요괴연구회 등이 활동하고 있다. 포켓몬의 다채로운 캐릭터는 동양고전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한 요물·괴수들과 닮았다. 오랜 전설과 100년 이상 쌓아온 학문적 토대 위에 현대 스토리 산업이 접목된 성과물인 것이다. 일본은 1800년대부터 인문학에 투자해 이른바 ‘오타쿠’형 인재들을 길러냈고, 이들은 자국 문화의 콘텐츠 산업을 풍부하게 만드는 주축이 됐다.
기자의 눈에는 수백종의 포켓몬 캐릭터가 다(多)가치 시대를 반영하는 상징물처럼 보인다. 개성을 뽐내는 포켓몬에 우리가 열광하는 건 ‘나만의 최애(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알다가도 모를, 각양각색의 소비자 취향을 탐구하는 라인업은 이 참에 더 깊은 ‘오타쿠노믹스’(오타쿠 경제학)의 세계로 빠져보기로 했다. 놀라운 현장은 또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STORY 조선일보 한경진 기자
#VIDEO 스튜디오광화문 이예은 PD
#유튜브 바로가기 [EP.4 ※포켓몬 띠부씰 드림※ 포켓몬빵 200% 득템하는 방법] https://youtu.be/XS-4QVH_aKE
#채널 오픈 이벤트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에서 ‘포켓몬 띠부띠부씰’ 댓글 이벤트를 합니다. 채널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하신 후 라인업 4화 [포켓몬 빵 편]을 시청하시고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서 포켓몬 빵 띠부띠부씰을 배송해드립니다 (빵은 유통기한 때문에 스티커만 보내드려요.)
조선일보 ‘세상의 모든 줄서기, 라인업’입니다. 텍스트 기사로 전했던 ‘라인업’ 코너가 유튜브로도 진출했습니다.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각자 다른 콘텐츠를 만들던 기자와 피디가 좌충우돌 현장을 누비며 사람들이 줄 서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경제·사회 인사이트는 기사로 담아가시고, 핫한 현장 분위기는 유튜브 영상으로 느껴보세요.
[세상의 모든 줄서기, 라인업!]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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