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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컬리(법인명 컬리)는 흥미로운 기업이다. 직접 검수한 신선한 식품을 새벽에 배송한다는 생소한 시장을 개척했고 번듯한 산업으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새벽배송은 신선식품에서 압도적 차별성을 갖는다. 아침에 대신 장을 봐주는 것과 다름없는 이 매력은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졌고 물류산업의 주요 카테고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컬리가 ‘샛별배송’을 등장시켰을 때만 해도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100억원 정도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2조5000억원 규모가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 컬리가 일등공신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쓱(SSG)닷컴, 오아시스마켓과 더불어 컬리는 ‘새벽배송 3대장’으로 불린다. 시장이 커지면서 컬리도 함께 급성장했다. 설립 첫해 29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조5614억원을 기록했다. 정소연 교보증권 연구원은 “새벽배송 시장은 2023년까지 11조9000억원 규모로 성장하면서 온라인 식품 시장의 성장을 주도할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이제 주식시장에서도 컬리는 화두가 됐다. 컬리는 지난 3월, 한국거래소 유가상장시장에 상장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컬리의 IPO(기업공개)가 관심을 끄는 건 그 결과에 따라 하반기 투자시장의 가늠자가 될 수 있어서다. 만약 컬리의 상장 성적표가 부진하다면 컬리뿐만 아니라 비슷한 형태로 외부 투자를 받았던 스타트업 태생의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생활 속에서 사용해 온 서비스들 중 일부는 컬리의 뒤를 이어 IPO를 준비해 왔다. 컬리는 그 가늠자 역할을 하게 됐다.

작년에는 환영, 올해는 현미경 심사

컬리는 ‘K유니콘 특례 상장’ 제도를 통해 IPO를 시도한다. 지난해 거래소는 시가총액 1조원 이상 기업이 2년 연속 20% 이상 매출이 증가한다면 적자 기업이라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쿠팡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뒤 생긴 변화다. 적자 유니콘 기업이 해외 거래소로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내린 조치다. 컬리의 연평균 성장률은 173.5%로 이 조건에 부합한다.

쿠팡이 나스닥에 진출했을 때, 컬리의 나스닥행 이야기도 나왔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김슬아 컬리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국내 상장을 적극 권유했다는 설이 언론을 통해 소개됐고 컬리 역시 미국 대신 국내 IPO로 방향을 돌렸다. 이때만 해도 컬리의 IPO 성공 신화를 의심하는 시선은 드물었다. 장외거래소에서 컬리의 주식은 2021년 한 해 동안 두 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비대면 특수도 성장에 한몫했다.

상황이 급변한 건 올해 들어서다. 일단 거래소의 고민이 깊어졌다. 지난해 유동성 축제 속에 고(高)밸류에이션 기업이 속속 등장했다. 크래프톤,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등 IT 기반 기업들은 성장성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크래프톤은 공모가(49만8000원) 기준 절반 정도 하락했고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는 신(新)저가를 기록하며 공모가에 근접했다. 성장주 가치 논란에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 기조를 강화했고, 앞으로 등장할 고밸류에이션 기업은 ‘현미경 심사’를 받아야 한다.

김슬아 컬리 대표(왼쪽)가 서울 강남구 한국타이어빌딩 마켓컬리에서 열린 상품위원회에서 직원들과 함께 시식을 하고 있다.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올해 상장 철회기업 이미 6곳

컬리가 기록한 지난해 매출 1조5614억원은 2020년보다 64%나 증가한 숫자다. 성장 속도만큼은 또 한 번 입증했다. 문제는 영업손실이다. 2177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 1163억원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매출의 성장 속도보다 영업손실의 증가 속도가 더 가파르다.

컬리가 IPO 절차에 진입하자 거래소 내 분위기도 이전과 달라졌다. 완화된 규정을 통해 입성해달라고 할 때보다 엄격하고 깐깐한 기준이 컬리를 기다렸다. 한 벤처캐피털 업체 임원은 “거래소는 심판이나 다름없는데 채점 기준이 작년과 달라졌다. 컬리의 적자 구조나 김슬아 대표의 지분 문제는 모두가 알고 있던 문제지만 작년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고 올해는 이 지점을 문제 삼는다. 받아들이는 태도가 너무 다르다”고 말한다.

컬리의 IPO에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상장 성사 여부다. 상장 그 자체가 고민이 될 정도로 시장 상황이 나쁘다. 앞선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상장을 추진하던 SK그룹의 계열사들은 최근 잇따라 IPO를 포기했다. 기업가치 3조원급의 대어(大魚)로 평가받던 SK쉴더스는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 실패해 상장을 철회했다. 토종 앱 마켓인 ‘원스토어’는 SK쉴더스의 철회에도 불구하고 “강행한다”고 강조했지만 지난 5월 11일 돌연 상장 절차를 철회한다고 결정했다. 미국의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등으로 주식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평가받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걸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 5월 9~10일 있었던 원스토어 기관투자자 공모에서 공모 희망가 밴드(3만4300~4만1700원)에 밑도는 금액이 적지 않게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올해 상장을 철회한 기업은 이미 6곳이다. 컬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상장 절차를 밟고 있다. 컬리처럼 예심을 청구할 거라고 예상됐던 쓱닷컴의 경우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분위기다. 이런 대기업 계열사와 달리 컬리는 스타트업에서 성장한 유니콘이라 관망의 여유를 품기 어렵다. 회사는 경쟁을 하기 위해 외부자금 수혈이 필요하고 FI(재무적 투자자)는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모두 상장이 필요하다.

마켓컬리는 누차 김슬아 대표의 지분율이 문제로 지적됐다. 컬리는 시리즈F 투자 유치까지 진행하면서 누적 투자 유치금액이 9000억원이 넘는다. 이런 과정에서 김 대표의 지분율이 떨어졌다.

2021년 컬리의 감사 보고서를 보면 김 대표의 회사 지분은 5.75%에 불과하다. 김 대표보다 지분이 많은 FI가 5곳이고 이들의 주식 총합은 50%가 넘는다. 이들 FI가 미국이나 홍콩에 거점을 둔 외국계 펀드라는 것도 거래소의 고민 지점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해외와 달리 우리 경우에 컬리처럼 창업자의 지분율이 낮은 기업이 상장하는 케이스가 드물다”고 말했다.

FI들도 상장을 하려면 일련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 컬리 관계자는 “FI들이 모두 이 지적에 공감하고 있으며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주식 의무 보유는 동의하더라도 그 기간을 두고 설득하는 데 김 대표가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안다. FI들 입장에서도 거래소가 요구하는 2년 이상 의무 보유를 쉽사리 확약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증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탓이다”라고 말했다.

컬리 상장은 다른 유니콘들의 상장의 가늠자가 된다. 당장은 아니지만 패션플랫폼으로 유명한 무신사나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 인테리어 커머스 플랫폼인 오늘의집 등도 상장을 고려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이들 역시 외부 투자로 성장한 스타트업이고 현재 2조~4조원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외부 투자를 받아왔다. 만약 컬리 상장에, 특히 기업가치 산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후발 주자들에 대한 재평가 요구도 거세질 수 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상장에 성공한 컬리 주가의 향방이다.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특례 상장 조치가 개인투자자들의 무덤이 되는 경우를 거래소는 가장 피하고 싶다. 가뜩이나 고밸류에이션 기업가치 선정의 책임론이 증시를 떠돌고 있는 요즘이다. 유동성 호황기 때야 주관사가 몸값을 높게 책정해도, 투자를 한 VC(벤치캐피털)나 기업이 상장 밑작업을 하기 위해 과하게 포장을 해도 시장에서 소화가 가능했지만 지금처럼 시장이 시들해지면 공모가 고평가로 손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아진다. 결국 그들의 곡소리는 거래소로 향한다. 설혹 컬리의 주가가 아래로 흐를 경우 뒤이어 투자를 준비하는 유니콘들을 심사하는 거래소의 기준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쿠팡의 부진이 컬리에 끼치는 영향

쿠팡의 부진도 컬리에는 뼈아프다. 보통 상장 시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는 피어그룹(비교기업)을 선정한다. 컬리 상장 때 피어그룹으로 삼을 만한 쿠팡의 주가는 최근 폭락했다. 지난 5월 9일(미 현지시간) 쿠팡 주가는 전날보다 22.34%나 급락하며 9.35달러로 마감했다. 쿠팡이 상장 이후 10달러 밑으로 떨어진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쿠팡의 공모가는 주당 35달러였다.

5월 10일에는 10.58달러로 상승했는데 이때의 주가를 시가총액으로 환산해보면 쿠팡의 시가총액은 약 23조8000억원이다. 지난해 3월 뉴욕 증시에 데뷔해 시총 100조원을 넘겼을 때와 비교하면 기업가치가 4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런 조정은 한국 증시에 오를 컬리에도 해당할 수 있다.

쿠팡과 컬리는 닮은 부분이 있다. 매출에서는 엄청난 성장 속도를 증명했지만 영업이익에서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는 점이 그렇다. 쿠팡은 상장할 때 공모가 산정에 PSR(주가매출비율)을 적용했다. 통상 상장 예정기업이 PER(주가수익비율)을 활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PSR은 해당기업의 기업가치가 매출의 몇 배인지를 나타낸 지표다. 보통 적자를 기록하는 기술기업이 성장가능성을 바탕으로 공모가를 산정할 때 사용한다.

쿠팡의 상장 첫날 주가의 PSR은 약 3.5배였다. 하지만 지난 5월 10일을 기준으로 삼은 시가총액은 약 23조원으로 2021년 매출액 약 22조원과 거의 대등하다. PSR이 1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다.

문제는 이처럼 바뀐 시장 환경이 컬리에 어떤 변수로 작동할지다. 컬리의 기업가치는 적게는 4조원, 많게는 8조원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다른 컬리 관계자의 얘기다. “4만원과 8만원이면 몰라도 4조원과 8조원은 엄청난 격차인데 이 숫자만으로도 컬리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상반된다는 걸 보여준다. 심지어 4조원도 많다며 더 낮은 가치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외부 시선의 갭이 이처럼 크다는 얘기다. 주관사가 기업가치 하방을 4조원으로 본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렇게 되도록 시장이 도와줄지는 우리도 상장 과정을 끝까지 가봐야 알지 않을까.”

지난해 매출액(1조5614억원)을 기준으로 볼 때 컬리가 기업가치 4조원을 인정받으려면 약 2.5배의 PSR이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최근 쿠팡의 PSR이 1배 정도로 떨어진 상황에서 2.5배의 PSR을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쿠팡은 규모의 경제를 만들었고 적자 폭을 줄인 경험도 있다. 여기에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라는 존재도 있었다. 컬리가 적용할 가능성이 있는 2.5배라는 숫자는 현재 아마존(Amazon)의 PSR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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