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56일째.
문스와치 출시(3월 26일)로부터 5월 20일 현재

서울 명동 한복판에 있는 스위스 저가 시계 브랜드 ‘스와치’ 매장 앞에선 요즘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희소성 있는 상품을 선점해, 리셀(re-sell·재판매) 플랫폼에서 수익을 올리는 전문 되팔이꾼 20여명이 진을 치며 화제의 시계 ‘문스와치’를 싹쓸이하는 중이다.

문스와치는 최근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상품. 지난 3월 26일 스와치가 그룹 계열사이자 명품 시계 브랜드인 ‘오메가’와 협업해 출시했다. 한정판은 아니지만 시장에 극소량만 풀리면서 희소성을 띄게 됐다. 시계를 판매하는 서울 중구 스와치 명동점에선 출시 이틀 전부터 ‘오픈런’(open run·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쇼핑을 위해 뛴다는 뜻의 신조어) 캠핑족이 등장했고, 발매 당일에는 대기 손님 간에 큰 다툼이 벌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스와치가 오메가와 함께 손잡고 만든 33만1000원짜리 시계 ‘문스와치’. 맨 왼쪽부터 토성, 태양, 천왕성, 금성, 해왕성 제품이다. /오메가 제공

문스와치는 실제 달 착륙 임무에 사용됐던 오메가의 대표 시계 ‘스피드 마스터’(900만원대)에서 영감을 받았다. 태양계 중심 가장 큰 별부터 가장자리 왜소 행성까지 모두 11개 버전으로 출시돼 인간의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 소비자 가격은 33만1000원이지만, 현재 리셀 플랫폼에서 디자인에 따라 50만원~150만원대에 재판매되고 있다.

◇당신이 ‘문스와치’를 정가(定價)에 살 수 없는 이유

‘세상의 모든 줄서기, 라인업!’팀은 지난 5월 10일 서울 스와치 명동점 앞에서 9시간 밀착 취재를 통해 문스와치 리셀 조직의 불법·탈법적 시장 교란 의혹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 리셀러는 ‘취재기록 삭제’를 주장하며 기자를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일부 리셀러들은 기자를 에워싸고 위력(威力)으로 정당한 취재 업무를 방해했고, 카메라를 쥔 기자의 손을 밀치기도 했다. 그 사이 출동한 경찰관들은 신고인에게 “사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지하고 현장을 떠났다.

'문스와치' 줄서기는 라인업팀이 그동안 찾았던 현장 중에서 가장 거칠었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이번 주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에서는 취재진이 그간 찾았던 ‘오픈런 현장’ 중에서 가장 험악하고 사나웠던 명동 스와치 매장 앞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줄 서는 목적이 ‘돈벌이’냐, ‘취미 활동’이냐에 따라 라인업이 찾는 현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문스와치의 경우, 철저히 전자(前者)에 해당했다.

[ ☞현장영상 바로가기 https://youtu.be/qWV4vQRJsqM ]

라인업팀이 찾는 줄서기 현장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라인업 '다크 버전' 로고

①하루 10개

“종 잡을 수 없는 불특정한 시간에 하루 5~10점 정도 풀려요. 오후 2~3시에 나오면 다행이고, 요즘은 오후 7시30분 영업 끝나기 직전에 풀릴 때가 많아요.” 한 리셀러가 기자에게 설명한 내용이다.

이날 스와치 매장에는 ‘문스와치는 한정판이 아닙니다’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지만, 사실상 한정판이나 다름 없어 보였다. 지극히 적은 물량이 기습적으로 풀리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0일 서울 스와치 명동점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리셀러와 줄서기 알바생들. 한 리셀러는 "득템한 물건을 빠르게 실어나르고, 매장을 돌아다니려면 오토바이와 스쿠터는 필수"라고 했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스와치 코리아는 “전 세계적인 수요로 인해 현재 문스와치에 쓰이는 소재(바이오세라믹) 재고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문스와치는 현재로선 온라인 판매 계획이 없으며, 국내 공식 판매처는 스와치 명동점이 유일하다”고 밝혔다.

'문스와치' 출시일인 지난 3월 26일 서울 중구 스와치 명동점 상황. /인스타그램 캡처·뉴스1

②노숙 20명

매장 앞에선 문스와치 리셀러, 줄서기 알바생 등 20여명이 노숙 중이었다. 이틀치 대기 인원이다. 이들은 “하루에 5~10개 정도 풀리니, 하루 10여명씩 모두 ‘이틀치 인원’이 줄을 서는 것”이라며 “스와치 매장 측에서 ‘사흘치 대기자’까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놀라운 건 대기 인원 대부분이 ‘48시간 뻗치기’를 되풀이 하며, ‘로테이션(rotation·교대)’ 구조로 반복적·조직적 영리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선디자인랩=권혜인

이를 테면 월요일에 시계를 구입한 대기자들은 ‘득템’ 직후 다시 뒷줄로 돌아가 수요일자 물량 확보를 위한 노숙 행군에 나선다. 오토바이와 전기 스쿠터로 물건을 ‘어디론가’ 운반하는 이들도 있다. ‘집에는 안 들어 가느냐’는 질문에 한 리셀러는 “요즘은 그냥 스와치 매장 앞에서 계속 살고 있다”고 말했다.

스와치 코리아가 리셀 대기줄을 20명선으로 ‘통제·관리’한다면 사실상 이들의 행위를 ‘공모·방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와치 코리아는 “현재 스와치 매장에서는 대기줄 인원을 제한하고 있지 않으며, 대기줄을 관리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거듭 밝혔다.

네이버 지도 '거리뷰'에 선명하게 찍힌 서울 중구 스와치 명동점 앞의 리셀러들. 이 사진은 지난 4월 촬영됐다. /네이버 지도 캡처

③포르쉐와 억대 연봉

현장에는 가히 ‘리셀의 왕(王)’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있었다. 30대 남성 A씨였다. 그는 “문스와치도 리셀 하고, 한정판 나이키도 뛰고, 샤넬·롤렉스 등 돈 되는건 다 하고 있다”며 “리셀판은 시드(판돈)가 크면 클수록 많이 번다”고 말했다.

기업형 리셀 조직의 사재기·가격 담합 실체를 알려준 A씨와의 인터뷰는 놀라웠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그는 “전략적으로 줄서기 알바를 고용, 매달 1억원 어치 상품을 사들여 리셀로 1000만~1500만원대 수익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A씨는 바지 주머니에서 포르셰 차키도 꺼내 보여줬다. “벤츠, 포르쉐 끈다면 믿으실거에요? 남들이 ‘되팔이’라고 손가락질 할 때, 저는 치열하게 전략을 짜서 돈을 벌고 있어요.”

④시급 1만원

리셀 조직의 가장 말단에는 ‘줄서기 알바생’이 존재한다. 이들의 시급은 1만원 안팎이다. 오픈런 대기줄에서 ‘고기 불판’에 ‘술판’까지 벌어져 밤샘 대기를 금지하고 ‘전화 예약제’로 바꾼 일부 롤렉스 매장의 경우, 또 다른 시장 수요가 생겨났다. 한 줄서기 대행업체는 롤렉스 매장 전화 예약에 성공한 사람에게 20만~24만원을 주고 입장권을 사들이고 있다.

이날 스와치 매장에선 리셀 가격이 낮은 문스와치 지구 버전이 풀렸다. 그러자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운반책은 바쁘게 물건을 어디론가 실어날랐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이날 스와치 매장 앞에선 스마트폰으로 ‘중국어 콘텐츠’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알바생도 많았다. 친구 부탁으로 알바를 나왔다는 김모(19)씨는 “화장품 회사 영업 사원으로 일하다 그만 두고, 3개월 전부터 틈틈이 줄서기 알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캠핑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7만원을 벌었다.

1300여명, 1100여명씩 모여있는 카카오톡의 ‘줄서기 대행’ 정보 오픈 채팅방에서는 밤새 구인·구직이 벌어진다. 지난 16일에는 이런 구직 글도 눈에 띄었다.

◇오후 7시20분, ‘지구’가 풀리자 한숨이 터졌다

이날 문스와치 제품은 영업 종료 10분 전인 오후 7시20분이 돼서야 풀렸다. 문스와치 ‘지구’ 버전 등 10점이었다. 리셀러 10명은 9분 만에 결제를 모두 끝냈다. 오토바이·전기 스쿠터를 탄 ‘운반책’이 물건을 실어날랐다. 한숨을 푹푹 쉬는 리셀러도 눈에 띄었다. “리셀가 낮은 ‘지구(Earth)’가 나와서 기분이 안 좋아요.” 문스와치 지구 버전은 리셀가 50만원 초반대로 11개 컬렉션 중에 값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시계 구입을 마친 리셀러들은 캠핑 의자와 장비를 챙겨 뒷줄로 이동, 또 다시 이틀의 기다림을 시작했다.

기업형 리셀조직의 가장 말단에는 '줄서기 알바생'이 있다. /조선디자인랩=권혜인

온 종일 스와치 매장 앞을 지키고 있던 보안 요원들도 기지개를 켜며 퇴근 준비에 나섰다. 이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문스와치 출시를 계기로 보안 인력이 필요해져 근무를 시작했다”며 “한달 반 넘도록 이 (이상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리셀왕’ A씨는 “문스와치는 우리가 사실상 모든 제품을 사들이기 때문에 재판매 가격도 우리가 조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상품을 독점한 리셀러들이 뜻을 합치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담합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지난 5월 10일 서울 스와치 명동점 앞 상황.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은 "왜 젊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나앉았느냐"며 어리둥절해 했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사재기·가격 담합을 넘어 이들의 영리 활동은 조세범처벌법·전자상거래법 등 법률 위반 소지가 커 보인다. 국세청에 따르면, 되팔이로 반복·계속적 수익을 거두는 기업형 리셀러에게는 부가가치세·종합소득세 신고 의무가 발생한다. 설사 개인적으로 리셀 판매를 하더라도 6개월 간 통신 판매 거래가 20회 이상이고, 판매 규모가 1200만원 이상이라면 통신 판매업자로 신고해야 한다.

국세청은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리셀과 관련해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구체적인 과세 기준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개인 단위의 일회성 중고 거래를 넘어 기업·조직형 리셀업자들이 불법적인 탈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100% 공감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문스와치 리셀 광풍으로 일반 소비자는 상품을 제 값에 구매할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오픈런은 브랜드 이미지에 독(毒)이 될 수도, 약(藥)이 될 수도 있는 새로운 소비 현상이다. 리셀 조직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과정에서, 유통·제조업자(브랜드)가 마케팅 등의 목적으로 리셀러와 공모·협력한 사실이 확인되면 브랜드 또한 불공정 거래 행위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라인업 취재 결과, 2022년 5월 현재 국내에서 일반 소비자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스와치를 제 값(定價)에 구입할 길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명동 길바닥에서 사흘 가량 뻗치면서 대기조가 바뀌는 순간을 포착, 이틀째 대기줄 막차를 타지 않는 이상 말이다. 브랜드가 방관하고, 정부 당국이 눈 감는 사이, 리셀 무법자들은 소비 생태계를 보란 듯이 휘젓고 있었다.

#STORY 조선일보 한경진 기자

#VIDEO 스튜디오광화문 이예은 PD

#유튜브 바로가기 [EP.9 현장 취재! 되팔렘들과의 전쟁 : 리셀러 “가격은 우리가 정해요”] https://youtu.be/qWV4vQRJsqM

라인업 '다크 버전'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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