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부터 미국을 방문해 7월 7일 귀국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해외 출장 목적에 대해 다양한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 장관의 미국 방문 목적이 2019년 1조6000억원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켜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로 불리는 라임자산운용(라임)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장관은 취임식 당일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됐던 서울 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다시 출범시켰다. 한국 ‘여의도 저승사자’가 남부지검이라면, 미국 뉴욕 ‘월가 저승사자’는 뉴욕남부연방검찰이다. 한 장관은 지난 7월 5일(현지시간) 이곳을 방문해 국제적인 부정부패에 대한 공조수사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장관의 뉴욕 방문이 라임 사건 해결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데는 이미 미국 수사당국이 돈의 흐름을 비롯한 라임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라임 돈의 상당 부분이 미국 사모펀드로 흘러 들어갔는데, 미국 측은 관련 수사를 이미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조선은 오랜 기간 해외 자산 도피 사건을 다뤄온 메리 리 미국 변호사와 이대순 변호사의 협조를 얻어 라임 사건 관련 한·미 수사당국의 자료를 입수해 소문만 무성했던 라임의 해외 돈 빼돌리기 의혹을 추적해봤다.
우선 2019년 라임 사태가 터진 것은 미국 사모펀드 IIG(International Investment Group LLC)에 투자한 2400억원이 공중에 날아간 것이 결정타였다. 2019년 11월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는 증권사기 혐의로 IIG 등록을 취소하고 펀드 자산을 동결했다.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기 전 라임의 수탁고는 총 4조5000억원대였다. 라임은 해외투자용 펀드 2개와 국내투자용 펀드 2개에 투자금을 비슷하게 나눠 투자해왔는데, 이 중 해외 무역금융 채권에 투자한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는 펀드 자산 약 6000억원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2400억원을 IIG에 투자했다.
그런데 라임이 IIG가 무역펀드라며 2400억원을 투자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평가가 많다. 무역펀드란 해외 무역 거래에서 발생하는 선결제, 운임, 원자재 구매 비용 등의 단기자금을 빌려주고 이자 수입을 올리는 펀드다. 이대순 변호사는 “무역펀드라고 하는데 쉽게 설명해 고금리 사채놀이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무역펀드가 되려면 은행이 지급을 약속한 신용장(L/C) 등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줘야 하는데, 회수가 전혀 안 된 것을 보니 금융회사 어디도 원금 보장을 하지 않았다”며 “정상적으로 리스크 평가를 하면 돈을 보낼 수 없는 펀드였다”고 했다.
IIG는 원래 남미 커피농장, 수산물 등에 투자를 해왔는데 이것 역시 이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리 리 미국 변호사는 “해외 농산물에 투자를 한다면 실제 농사를 짓는지 현지에 가봐야 알 수가 있는 것”이라며 “농사를 짓지 않고도 얼마든지 돈을 빼돌릴 수 있어 해외 펀드의 사기 수법에 많이 이용된다”고 했다. 이렇듯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투자였으나, 결국 라임 돈 2400억원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2019년 11월 미국 SEC가 사기혐의로 IIG를 기소한 내용을 보면 충격적이다. 이미 2007년부터 IIG는 깡통이었으며 돌려막기를 통해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임이 거의 마지막 투자자로 2400억원(2억달러)를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재판 결과 IIG 경영진은 구속되고 남은 돈 중 3523만달러는 미국 정부가 추징금으로, 2400만달러는 경영진과 직원들 변호사 비용으로 처리하라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에서도 피해자에게 돌아갈 돈은 없었다. 이에 대해 이대순 변호사는 “한국·미국의 사기범들은 마지막 순간에 돈을 해외로 빼돌리고, 몇 년의 감옥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SEC의 IIG 기소장을 보면 2017년 돌려막기(폰지사기)로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던 IIG에 ‘단비’가 내린다. 갑자기 펀드에 7000만달러가 들어온 것이다. 7000만달러를 입금시킨 인물은 ‘투자자-1(Investor-1)’. 이 인물은 2017년 1억3000만달러를 추가로 집어넣는다. 총 2억달러를 IIG에 입금시킨 것으로, 라임이 IIG에 집어넣은 돈의 액수와 입금 시점이 일치한다. 결국 미국 측 기소장에 등장하는 ‘투자자-1’이 라임일 가능성이 크다.
SEC가 주목한 것은 IIG가 한국에서 돈을 끌어오기 바로 전에 돈을 빼돌릴 방법까지 만들어 놨다는 점이다. 라임이 돈을 집어넣기 바로 직전에 IIG는 ‘파나마론(Panama Loans)’이라는 상품을 만든다. 파나마론의 수익성을 좋게 만들기 위해 유령회사들(shell companies·사기를 위해 서류상으로 만들어 놓은 회사)을 차려놓고 이들에게 고수익으로 돈을 빌려줬다는 것을 증명하는 약속어음 등의 서류도 만들어 놓는다. 돈이 들어오면 곧바로 이런 유령회사들에 흘러가는 구조였다. 미국 SEC는 파나마론의 회사들이 처음부터 유령회사로 가치가 없었으나(worthless), 그럼에도 IIG는 장부에 허위 자산으로 수천만 달러 가치가 있는 것처럼 적어 놓았다고 기소장에 적시했다. 메리 리 미국 변호사는 “기소장의 구조로 볼 때, 라임이 2400억원을 IIG에 투자하기 직전부터 돈을 빼돌리기 위한 치밀한 준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2400억원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의심이 들기 충분하다”고 했다.
기소장에 등장한 ‘직원-1’을 주목하라
돈을 빼돌릴 방법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향후 한국에서 2400억원(2억달러)이 확실히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돈을 한국에서 가져오고 그 돈을 빼돌릴 계획에 참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은 기소장에 비실명으로 등장하는 ‘직원-1(Employee-1)’이다. 기소장을 보면 돈을 빼돌리기 위한 유령회사를 만드는 데도 ‘직원-1’이 큰 도움을 줬다.
‘직원-1’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직원의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한 요청서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내용을 보면 ‘직원-1’은 ‘이미 수사에 협조했으니 신변 보호를 위해 비공개 재판과 자료 등에서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부분은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한다. 메리 리 변호사는 “신원을 보호해 달라는 ‘직원-1’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아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형을 감경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직원-1’이 사기 펀드의 구조와 들어온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증언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사법 당국은 ‘직원-1’ 등의 도움으로 사건의 실체를 모두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라 미국 수사당국의 기록이 한국 측에 넘어오면 2400억원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라임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아낸 ‘직원-1’이 한국계 외국인을 뜻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일 가능성도 있다. 통상 미국은 해외에서 투자를 받을 경우 그 나라 언어와 문화에 능통한 금융전문가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나라에 적합한 투자 상품을 만들고, 현지 인맥을 이용해 자금을 끌어오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라임 사건을 다루는 한국 수사당국이 미국 측에 요청해야 할 자료에 대해 메리 리 변호사는 “IIG의 한국과의 관계(connection), 자금 흐름, IIG의 한국 투자에 관여한 인물 정보, 그들의 현재 위치와 받은 보수 등을 요청해서 받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미국으로 빼돌린 돈을 미국 법에 근거해 다시 찾아오는 것은 어려울 전망이다. 메리 리 변호사는 “한국 피해자들은 라임펀드 상품에 투자했고, 라임은 그 일부를 IIG의 상품에 투자했다”며 “IIG가 거짓으로 투자를 유치했다면, 라임이 IIG를 고소해야지 개개의 투자자들은 IIG를 고소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더욱이 라임 경영진은 2019년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 자신들이 투자한 IIG의 부실펀드를 싱가포르 소재 금융사에 넘기고 다른 펀드로 바꿔치기 했는데 그 역시 깡통이어서 결국 2400억원은 공중으로 사라졌다. 싱가포르는 해외 자산 도피처로 유명한 곳이다. 라임 경영진은 펀드 돌려막기로 증거를 없애면서 막판에 고객 돈을 지키기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는 근거를 남겨 형량을 줄이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