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쟁취하는 것, 인류의 오랜 열망이었습니다. 갈수록 소비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육식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동시에 커집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18%가 가축에서 나옵니다. 환경을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콩고기, 충식(蟲食) 등의 대체육 시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 입맛을 충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HN노바텍의 김양희 대표는 가축이 아닌 해조류에서 ‘고기 맛’을 찾아 ‘풍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장의 맛’이 김 대표를 만나 ‘고기맛 가루’의 비결을 물어봤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강동구 서울먹거리창업센터의 공용 주방에 맛있는 냄새가 퍼집니다. HN노바텍의 김양희(53) 대표가 치킨 너겟을 굽고 있습니다. 생선 연육에 ‘고기 맛’ 첨가제를 넣어 반죽해 만든 제품입니다. 직접 먹어봤습니다. 노릇노릇한 튀김 옷 속 닭고기의 담백함, 부드러운 식감은 ‘진짜 닭고기 너겟’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관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게맛살, 두부 등을 만드는 식품 회사에 약 15년간 다녔던 김 대표는 창업을 결심하고 ‘대체육’ 관련 시장에 뛰어듭니다. 화학 공학 전문가 4명과 함께 4년 연구 끝에 미역,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의 아미노산 복합체(ACOM-S)에서 ‘고기 맛’을 찾아냅니다.

◇미역과 다시마에서 ‘고기 맛’을 찾다

-HN노바텍은 직접 대체육을 만들지는 않지만, ‘대체육’의 일부분인 첨가제를 만듭니다.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뭔가요?

“식품 회사에서 제품 기획, 개발 관련된 일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다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식재료를 만들고 있다는 뉴스를 봤어요. 대체육은 환경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고기로 인한 콜레스테롤 섭취를 줄일 수 있어 건강에도 좋다는 내용이었어요. ‘이거다’ 싶었죠.”

-우연히 본 뉴스가 전환점이 됐네요.

“그런 셈입니다.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식재료는 앞으로 상용화될 거고, 그 추세는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선진국들은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데, 우리도 해야 되지 않을까? 어차피 누군가 할 거라면, 내가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고기를 대신하는 고기(대체육)는 아직 만들지 못했네요.

“이제 ‘고기 맛을 내는 첨가제’를 개발한 단계입니다. 여기까지도 만 4년이 걸렸어요. 2015년에 연구를 시작해서 2019년에 성공했으니까요. 현재는 대체육을 만드는 회사에 납품하고 있지만, 앞으로 진짜 고기 같은 대체육을 직접 만들 계획입니다.”

-첨가제, 고기 맛 가루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쓰는 것인지.

“첨가제는 가루 형태로, 생선 연육이나 밀단백 등에 섞어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는 데 사용됩니다. 현재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 네가지 맛을 출시했어요.”

서울 먹거리창업센터에서 만난 HN노바텍 김양희(53) 대표. HN노바텍은 해조류에서 추출한 아미노산 복합체로 '고기맛' 첨가제를 만들었다. 현재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4가지 맛이 있다./남강호 기자

-‘고기 맛’이 뭔지요. 어떻게 결정되는 건가요.

“‘고기 맛’보다는 소고기 맛, 돼지고기 맛 등 종류별로 부르는 게 정확합니다. 고기의 맛은 아미노산 복합체에 따라 결정돼요. 아미노산 복합체는 철분과 아미노산이 결합한 분자인데, 아미노산의 종류와 비율에 따라 고기 맛이 달라집니다. 조합에 따라 소고기 맛이 나고, 닭고기 맛도 나는 거죠.”

- 고기가 아닌 곳에서 고기 맛을 찾는다? 좀 쉽게 설명해 주신다면.

“그동안 대체육의 맛 연구는 주로 콩을 대상으로 했어요. 콩의 뿌리에서 아미노산 복합체를 추출해 고기 맛을 내는 것이었죠. 그러나 콩은 아미노산 복합체가 2~5종밖에 없어서 한계가 있습니다. 대안을 찾다가 미역과 다시마 등 해조류에 아미노산 복합체가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미역엔 18종, 다시마엔 22종이나 됩니다. 종류가 많으니까 다양한 조합을 통해 더 정교하게 고기 맛을 낼 수 있는 거죠.”

-치킨 너겟은 진짜와 큰 차이가 없는데, 소고기 패티나 양꼬치는 실제 고기보다 쫄깃함이 덜하네요. 향과 맛은 비교적 잘 구현한 것 같은데, 식감이 문제가 되겠네요.

“지금 대체육은 생선 연육과 밀단백이 주재료라 식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실제로 치킨 너겟은 ‘당장 팔아도 되겠다’는 반응이 많다면, 다른 제품은 진짜 고기보다는 완자나 어묵 같은 식감이 난다는 평도 있습니다. 고기와 비슷한 질감은 대체육 시장의 큰 숙제입니다.”

◇“대체육이 뭐야”... 부모도 반대한 40대 딸의 도전

김 대표는 운 좋게 뜻이 맞는 동료들을 만나 사업 구상에 나섰지만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투자 받을 곳은 없었고, 그녀 수중에는 평생 모아둔 1억원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그는 가까운 친척과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최대 투자자는 가장 반대가 심했던 부모님이었습니다. 설득하는 데만 3개월이 넘게 걸렸지만요.

아미노산 복합체(ACOM-S)로 대체육 첨가제를 만드는 HN노바텍 김양희 대표. /남강호 기자

- 시작할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식품 업계에 있는 지인들은 반응이 괜찮았어요. 함께 하자는 사람이 4명이나 나타났으니까요. 뜻이 맞는 사람들이 의기투합을 하니까 용기가 생겼습니다.”

- 투자자가 나타난 것인가요?

“함께 개발해보자는 연구자들이었어요. 화학 공학 분야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들이었죠.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분도, 현직 관련 업체 임원도 있었죠. 경영학과를 졸업해 제품 기획 관련 업무만 해본 저로서는 제 아이디어를 실현해줄 전문가들이 나타난 것이었죠. 돈을 투자하겠다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힘이 됐어요.”

- 초기 투자금은 얼마나 들었고, 어떻게 마련했는지.

“수중에 있던 1억원에 가족, 지인들에게 빌린 돈을 보태 시작했어요. 총 10억원 정도 들었죠. 대체육을 하겠다고 하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선뜻 지원해준 분도 있었지만, 이해를 잘 못하는 분들도 많았죠. 특히 부모님 반대가 가장 심했습니다. 대체육 자체가 생소하니까. 열심히 설명해도 ‘너 왜 그러냐’ ‘그게 무슨 사업이냐’며 오히려 핀잔을 들었죠.”

- 부모님은 어떻게 설득하셨나요?

“유산을 미리 준다고 생각하고 도와달라고 떼를 썼죠. 설득에 한 석달이 넘게 걸렸어요. 결국 3억원을 지원해주셔서 HN노바텍 최대 투자자가 됐습니다.”

◇커지는 대체육 시장, 목표는 해외 진출

전 세계 대체육 시장 규모는 2015년 4조2400억원에서 지난해 6조1900억원으로 6년만에 45% 이상 성장했습니다. 생선 연육 등에 맛 첨가제를 넣는 방법을 넘어 최근엔 가축 세포를 증식해 인공 고기를 만드는 배양육(培養肉)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얼마나 진짜 고기와 비슷한 맛, 흡사한 질감을 구현하는가가 과제입니다. 김 대표는 ‘해조류 첨가제’가 대체육 시장에서 ‘맛의 한계’를 극복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창업 후 매출이나 투자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매출은 2020년 4억3000만원, 2021년 4억5000만원 정도입니다. 아직은 얼마 안되죠. 그러나 2020~2021년 프리 시리즈 A로 IBK기업은행, 이지홀딩스 등에서 45억원 투자를 받았어요. 올해는 시리즈 A로 자산운용사인 아이디어브릿지로부터 별도로 30억원을 더 투자 받았습니다. 성장 가능성을 봐 준 것이라고 봐야겠죠. (웃음)”

- 매출에 비해 많은 투자를 받으셨네요.

“실제 매출보다 필요성과 시장 전망을 보고 투자를 해주신 거죠. 저희는 기본적으로 B2B 중심 사업이에요. 최근 경기도 안산에 하루 1톤의 첨가제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완공했어요.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 있는 대체육 기업들과 함께 사업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매출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겠죠.”

HN노바텍의 대체육용 첨가제. /남강호기자

-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

“대체육 시장은 계속 커질 거예요. 고기 소비는 늘어나는데, 생산하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진짜 고기보다 비싸지만 시장이 커져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 많은 사람들이 대체육으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