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발론의 새로운 로드인가요?”
모바일 RPG 게임 ‘로드 오브 히어로즈(이하 로오히)’의 유저들은 ‘아발론’이라는 국가의 왕이 되어 불합리한 세계를 혁신(革新)하는 과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신분 차별이 만연한 계급제 국가 ‘플로렌스’, 힘을 숭상하는 용병 국가 ‘다케온’ 등과 충돌하며 세(勢)를 키워나가는 것이죠.
‘로오히’는 여타 ‘정복형’ 게임과 달리 선정성과 폭력성을 최소화해 모든 연령대가 이용할 수 있습니다. 탄탄한 스토리와 재미 덕에 2020년 출시 첫해 만에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2등에 해당하는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는 175개국에서 서비스 중이며, 누적 다운로드 수가 800만명이 넘었습니다.
세계 게임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로오히’를 기획한 클로버게임즈의 윤성국(43) 대표는 다름 아닌 고고학 전공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던 그는 하루에 10시간씩 게임을 해, 손이 마비되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겜돌이’였던 셈이죠. ‘사장의맛’은 클로버게임즈의 윤성국 대표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덕업일치’... 겜돌이가 게임 기획자 되다
윤 대표는 학생 때부터 하루에 10시간씩 게임을 하는 마니아였습니다. 게임 관련 전공이 없던 당시, 윤 대표는 평소 관심 있었던 부산대 고고학과에 진학했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학점은 B+만 넘으면 취업에 문제 없다’는 선배들의 말을 믿고, 새벽 4시까지 게임에 몰두하는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 윤 대표는 현재 800만 이상의 유저를 보유한 게임 회사 대표가 됐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덕질’을 일로 삼는, 완전한 ‘덕업일치’를 이룬 것이죠.
– 원래 게임에 관심이 많았나요?
“학생 때 하루에 적게는 8시간, 많게는 12시간씩 했어요. 보다 못한 부모님은 학교 시험에서 몇 점 이상 맞으면 ‘모니터를 바꿔주겠다’, ‘게임 CD를 사주겠다’고 회유했죠. 해야 할 일만 딱 하고, 남은 시간은 거의 게임을 하면서 보냈던 것 같아요. 수험생 때는 공부할 시간이 필요한데, 게임을 줄일 순 없으니까 하루에 3시간씩 잤어요.”
– 주로 어떤 게임을 했어요?
“CD게임, RPG게임, FPS게임... 골고루 했습니다(웃음). 게임마다 플레이 형태, 콘셉트에 따라 매력이 다르잖아요. 게임을 골라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각 게임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 게임을 많이 한다고 부모님이 싫어하진 않으셨나요?
“좋아하진 않으셨죠.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손이 마비된 적도 많았어요. 병원에 갔는데 의사들이 원인을 못 찾아서 ‘무슨 약을 처방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다 게임 때문이었는데...(웃음).”
– 대학에선 게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걸 전공하셨던데.
“지금이야 대학에 게임 관련 학과와 게임 전문 고교도 생겼지만, 제가 대학을 갈 때만 해도 선택지에 없었어요. 그래서 평소 관심이 있던 고고학을 선택했죠. 고고학이 게임과 전혀 관련 없지는 않아요. 고고학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게임은 흔적을 만들어 유저들이 그걸 밟아 나가게 하는 거예요. 의외로 비슷한 면이 많답니다.”
– 대학 때도 게임을 많이 했나요?
“성인이 되고 자유가 생기니까 더 많이 했죠. 수업 끝나고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PC방을 가거나 혼자 집에서 게임을 했어요. PC방이 좋아서 6개월 간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 졸업 후 진로는 뭘로 시작하셨나요?
“물론 게임이었죠. 넥슨에서 ‘마비노기’의 게임 기획자로 일했어요. 전공을 살려서 박물관 학예사가 될까도 고민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살면서 게임만큼 열정을 가져본 건 없더라고요. 그 이후로 네이버에서 게임 서비스 기획 팀장으로 일했어요. 게임 이용자를 분석하고, 매출 창출을 고민을 하는 등 게임 운영 및 기획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맡았죠.”
– 직장 생활은 만족스러웠나요?
“완전한 ‘덕업일치’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먹고 사는 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인 거 같아요. 물론 게임을 즐겨 하는 것과 기획하는 일은 엄연히 달라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 게임을 하면서도 ‘이 게임은 왜 인기가 많을까’, ‘다른 게 뭘까’와 같은 질문을 던졌어요. 그 과정이 게임 기획을 위한 기초 공부가 됐던 것 같습니다.”
◇게임은 ‘환상을 파는 것’... 열린 사고가 핵심
윤 대표는 자신이 만든 게임은 “현실 속 일상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게임의 대표적인 인기 요소로 일컬어지는 자극적인 플레이 방식, 선정적인 캐릭터 등을 과감하게 뺐습니다. 윤 대표는 본인에게 그랬듯 누군가에게 게임은 책, 유튜브, TV 등 다른 매체보다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클로버게임즈는 게임 안에 재미만큼이나 배려, 존중 등 다양한 가치를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 클로버게임즈를 창업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직장 생활을 하다가 마음 맞는 사람들과 ‘더핑크퐁컴퍼니’라는 회사를 만들었어요. ‘아기 상어’라는 노래로 히트를 쳤죠. 더핑크퐁컴퍼니는 영화, 애니메이션, 음원, 게임 등 각종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유통, 서비스하는 회사예요. 결국 제가 좋아하는 건 게임이잖아요. 제 생각하는 이상적인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었어요.”
–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게임’은 뭐죠?
“게임은 필수재(必須財)가 아니에요. 안 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거든요. 그래서 재미가 있어야 해요. 대부분 게임은 폭력성, 선정성 등을 내세워서 즐거움을 줄려고 하죠. 저는 누구나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추구합니다.”
– ‘로오히’는 좋은 게임인가요?
“로오히는 각지의 영웅을 모아 세계를 혁명하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무력으로 정복하는 게 아니라 때론 대화를 하고, 동맹을 맺는 등 화합과 존중을 기본으로 하죠. 충돌이 있을 때도 상대 캐릭터가 죽거나 국가가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게임 내 캐릭터도 80종이나 되는데, 다양한 연령, 인종,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제 기준에서는 좋은 게임이죠.”
–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했을 거 같네요.
“그렇죠. 게임 캐릭터 하나를 만드는데도 스토리 라인이 필요해요. 로오히에서 가장 인기 많은 남자 캐릭터는 고아원에서 자라, 주인공이 거둬주면서 기사로 거듭나는 ‘요한’이에요. 무한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죠. 여성 캐릭터인 ‘로잔나’는 ‘사르디나’라는 국가의 지도자인데, 나이를 먹지 않고, 꼰대 같은 말투를 쓰지만 주변 사람을 잘 챙겨요. ‘사르디나’는 해상 무역 국가라서 호탕한 성격의 캐릭터가 많죠.”
– 만만치 않네요. 게임 기획자에게 중요한 역량은 무엇인가요?
“유연한 사고와 창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잖아요. 그런데 단순하게 ‘사람들은 싸우는 걸 좋아해’라는 식의 고정관념을 갖고 있으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해요. 특히 젊은 세대는 가치관과 지향이 다양해요. 그만큼 즐거움을 느끼는 포인트도 다른 거죠. 열린 사고로 접근해야 해요.”
– 게임 기획자들은 주로 어떤 전공 출신이 많나요?
“법학, 경영학, 심리학 등 전공은 다양한데, 주로 인문 계열이에요. 인문학 자체가 인간에 대한 연구잖아요. 게임은 결국 ‘환상을 파는 것’입니다. 인문 계열은 인간을 이해하는 사고의 폭이 상대적으로 유연해서 기획 업무에 적합하죠. 클로버게임즈의 전체 직원 120명 중 20명이 기획자입니다.”
– 일은 주로 팀 단위로 하시나요?
“그렇죠.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 각 업무 담당자가 수시로 소통하면서 일을 해야 해요. 게임은 정해진 답이 없어요. 끊임없이 스토리를 보완하고, 이용자 피드백을 반영하는 등 업데이트 작업이 필요하죠. 이를 위해선 개개인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하지만 조직의 수평적인 문화가 선행돼야 해요.”
– 클로버게임즈는 수평적인 문화를 위한 제도가 있나요?
“호칭부터 바꿨습니다. 저는 외부적으로 대표이지만 사내에서는 ‘총사(총사령관)님’이라고 불려요. 호칭은 사회 통념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원하는 걸로 정할 수 있어요. 직원들은 어릴 적 별명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을 호칭으로 많이 쓰더라고요. 반대로, ‘형’ ‘언니’와 같은 사적인 호칭은 금지입니다. 업무는 철저하게 공적인 영역에서 하되 서로를 수평적인 위치에서 존중하도록 한 것이죠.”
◇목표는 세계... K-게임의 선두 주자가 되겠다
로오히는 현재 세계 175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다운로드 수는 800만회를 넘었죠. 차기작인 ‘잇츠미(#ME)’는 올해 7월 135개국에 출시해 벌써 다운로드 수 70만회를 넘었습니다. 윤 대표는 K-게임의 선두 주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 ‘로오히’의 다운로드 수와 매출은 어떻게 되나요?
“올해 6월까지 798만회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 3월 처음 출시를 해서 그 해에 313만회, 2021년에는 661만회를 달성했죠. 매출은 2020년 212억 원, 2021년 277억 원입니다.”
– 이용자들의 연령대는 어떻게 되나요?
“18~24세가 60% 이상입니다. 흔히 말하는 Z세대입니다.”
– 차기작인 ‘잇츠미’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잇츠미’는 메타버스 게임입니다. 유저들은 가상현실 속의 또 다른 ‘나’를 꾸미고, 다른 유저들과 소통할 수 있어요. 현재는 해외 서비스만 합니다. 로오히와 마찬가지로 18~24세 이용자가 가장 많아요.”
– 메타버스는 범죄에 악용되는 등 사회적 논란도 많던데.
“맞아요. 그래서 ‘잇츠미’는 이용 가능 연령을 만 12세 이상으로 설정했어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권장한 적정 연령보다 높게 했어요. 회사가 욕설을 관리하고, 처벌을 강화해도 완벽한 차단은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우리가 만든 서비스가 아이들이 유해한 콘텐츠에 노출되는 수단이 되는 건 막고 싶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최근에 출시한 ‘잇츠미’의 유저 피드백을 반영해 업데이트 작업을 계속 해야죠. 현재 3번째 작품으로 새로운 RPG 게임을 구상 중이에요. 앞으로 더 많은 유저의 마음을 사로잡을 ‘대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