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신용산역과 삼각지역 사이에는 ‘용리단길’이라는 골목이 있습니다. 2019년부터 새로운 콘셉트의 식당과 카페가 몰리면서 ‘핫플’이 됐죠. 용리단길 하면 떠오르는 맛집이 있습니다. 베트남 식당 ‘효뜨’, ‘남박’. 중식당 ‘꺼거’와 이자카야 ‘키보’도 그 중 하나입니다. 놀랍게도 이 식당들의 사장은 한사람입니다. 이번 ‘사장의 맛’ 주인공은 용리단길에서 식당 브랜드 6개를 오픈한 남준영(35) 대표입니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에 있는 베트남 식당 '남박' 앞에 남준영 대표가 서있다. 남박은 남 대표의 두번째 브랜드로, 대표 메뉴는 한우 쌀국수다. /김지호 기자

◇”여행 온 느낌”이라는 손님들...현지의 멋과 맛은 현지에 있다

남 대표는 2019년 6월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에 첫 가게 ‘효뜨’를 열었습니다. 베트남 식당 효뜨는 현지의 맛과 멋을 ‘그대로 살렸다’는 평을 받습니다. 인기에 힘 입어 현대백화점 압구정·여의도점에 가게를 내기도 했죠. 이어 2020년 베트남 식당 ‘남박’, 2021년 중식당 ‘꺼거’와 이자카야 ‘키보’, 올해 베트남 식당 ‘굿손’과 한식당 ‘사랑이 뭐길래’를 열었습니다. 올해 8월 기준으로 브랜드 6개, 직영 매장 11곳을 운영하고 있죠.

– 6개 브랜드의 1호점이 다 용리단길에 있네요.

“첫 가게를 용리단길에서 열었는데 잘 됐어요. 직장과 주거 지역이 섞여 있어 장사하기 좋은 동네입니다.”

–2019년에도 용리단길에 사람이 많았나요?

“아니요. 이름이 알려지기 전이었어요. 주중에는 직장인들 덕분에 그나마 장사가 되는데, 주말은 손님이 없어서 문 닫는 날도 많았죠.”

– 언제부터 장사가 잘 된 거예요?

“오픈한 지 반 년 만에 코로나가 터져서 큰일 났다 싶었는데, SNS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손님이 많아졌어요. 베트남 현지 식당을 콘셉트로 잡았는데, 손님들이 ‘여행 온 것 같다’며 좋아하더라고요.

남박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얼큰 한우 쌀국수'. 베트남 남부식 쌀국수로, 한우 사골과 양지를 12시간 이상 끓여 만들었다./남박

– 현지 분위기를 낸 비법은 뭔가요?

“가게 콘셉트를 정하고, 곧장 베트남으로 떠났어요. 그 나라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현지 물건만한 게 없어요. 가구, 식기 등 약 180kg의 물건을 한국으로 실어왔죠. 베트남 현지 식당들을 돌아다니면서 메뉴와 인테리어에 대한 영감도 얻었고요.”

–음식도 현지식인가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분짜, 짜조와 같은 요리는 현지 재료와 양념으로 이국적 맛을 최대한 살리고, 이국적인 향이 강한 요리는 재료나 양념을 조금 바꿔요. 동남아 음식은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서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어요. 생소한 타이 바질 대신 익숙한 방아잎을 넣고 요리를 하는 식이죠.”

– 효뜨 이후 연 ‘남박’과 ‘굿손’도 베트남 식당이네요. 이유가 있나요?

“베트남 요리에서 가능성을 봤어요. 1세대 베트남 식당인 ‘포메인’ ‘포호아’는 쌀국수, 2세대인 ‘에머이’가 분짜·반미와 같은 새로운 메뉴를 유행시켰죠. 하지만 국내 베트남 식당은 ‘밥집’ 이미지가 강하죠. 술까지 곁들이는 ‘비스트로’ 형태의 베트남 식당도 충분히 경쟁력 있을 것 같았어요.”

◇23살,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 떠나 요리 배우다

남 대표는 2019년 첫 가게를 열었지만 요리 경력은 12년이 넘습니다. 2010년, 23살이었던 그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 시드니로 떠났습니다. 요리사가 되고 싶어서였답니다.

– 창업 전에 요식업 경험은 있었나요?

“호주 시드니의 한 일식당 요리 보조가 시작이었어요. 23살, 군대를 전역하고 새로운 경험을 찾아 호주로 떠났어요. 일거리를 구하다 주방에서 일하게 됐고, 그 뒤로 쭉 요리를 하고 있죠.”

– 우연치 않게 요리를 시작한 거네요.

“네. 고등학교 때까지 태권도 선수를 했어요. 대학을 앞두고, 월급 또박또박 받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강릉에 있는 관동대 행정학과에 진학했죠. 그런데 적성에 영 안 맞더라고요. 새로운 길을 찾아 호주로 떠난 거죠.”

–호주 생활은 어땠어요?

“호주 도착했을 때 전재산이 500달러였어요. 4인 1실의 셰어하우스가 일주일에 150달러더라고요. 마트에서 1달러짜리 식빵으로 끼니 때우고, 무작정 번화가에 있는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일자리를 구했어요.”

– 일자리는 잘 구해졌나요?

“취직은 어렵지 않았어요. 식기 세척, 재료 손질 등 잡일을 하다, 실력을 인정 받고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호주에 있는 2년 동안 중국인이 하는 일식당, 중식당 등에서 여러 아시안 요리를 익힌 게 지금의 밑천이 됐어요. 정식으로 코스를 밟은 건 아니죠.”

– 한국 와서도 요리를 했나요?

“네. 한남동에 있는 베트남 식당, 태국 식당에 셰프로 있었어요.”

– 요리가 적성에 맞았나 보네요.

“음식도 하나의 소통 수단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매력에 빠지게 돼요. 일은 고됐어요. 주말 없이, 아침 10시 출근, 밤 10시 퇴근이 일상이었으니까요. 이왕 힘들 거, 내가 꾸민 공간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음식을 만들고 싶었어요.”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의 베트남 식당 '남박'에 남 대표가 앉아 있다. 남박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만 운영한다./김지호 기자

◇독특한 콘셉트는 ‘없는 것 찾기’에서 시작된다

남 대표의 식당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맛 때문만이 아닙니다. 현지 분위기를 살린 디자인과 독특한 콘셉트가 한 몫 했죠.

– 온라인 후기에 식당 인테리어를 칭찬하는 글이 많던데.

“음식 맛 만큼 식당의 콘셉트와 분위기에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영감을 얻고, 책·유튜브·블로그 등 다양한 경로로 자료 조사를 해요. 저는 이미 뜬 맛집들을 따라하기 보다 ‘아직 없는 게 뭘까’를 고민하는 편이에요.”

– ‘없는 것’들의 예를 들어주세요.

“4번째 브랜드인 이자카야 ‘키보’가 대표적입니다. 키보는 의자 없이 서서 먹는 술집이에요. 일본 후쿠오카 지방에는 퇴근길 잠깐 들러 저렴한 안주와 술 한 잔 하는 선술집들이 많아요. 회식 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콘셉트죠. 6번째 브랜드인 ‘사랑이 뭐길래’는 와인바에요. 와인을 스테이크 같은 양식이 아닌, 성게알 국수, 오돌뼈 볶음 등 한식과 즐길 수 있는 게 다른 점이죠. 배경 음악도 80, 90년대 나온 사랑 노래를 틀어서 한국적인 정서를 살렸죠.”

–한 브랜드를 키우는 대신, 다른 브랜드를 6개나 낸 이유는 뭔가요?

“식당의 목적이 ‘소통’이기 때문이에요. 단일 브랜드는 운영, 수익 관리 등 여러모로 편하지만 1호점과 2호점을 다녀온 고객의 감상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효뜨’ ‘남박’ ‘굿손’은 모두 같은 베트남 식당이지만 메뉴와 분위기가 제각각이에요. 고객이 받는 느낌도 다를 수 밖에 없죠. 쉽고, 편하고, 돈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고객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었어요.”

– 새로운 시도는 실패 부담이 크지 않나요?

“애초에 거창한 성공을 바라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없는 콘셉트를 선보이는 게 목표였죠. 음식이 하나의 문화라면, 식당은 문화가 시작되는 공간이에요. 제 방식대로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재미가 있답니다.”

– 현재 매출은 어느 정도예요?

“브랜드마다 다르지만 월 평균 매출은 매장에 따라 약 5000만원에서 1억8000만원 정도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에요. 요즘엔 어떻게 하면 제 식당들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음식을 넘어서 공간 기획 등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다른 문화 사업에 도전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