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꽈배기집 ‘꽈페’. 이 가게 주인 이준호(41)씨는 세계 3대 요리 학교 중 하나인 르꼬르동 블루의 호주 캠퍼스 출신이다. 그는 길거리 간식 꽈배기에 마스카포네 크림치즈, 고메 버터 등 고급 재료를 올리고, 무지색을 입혀 K-디저트로 재탄생시켰다. 2020년 10월 오픈 이후, 압구정·광교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고, 2년만에 지점 15곳을 운영 중이다.

이씨는 K-디저트의 선두 주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요식업에 진심이지만 그는 원래 뮤직 비디오 감독, 방송 촬영 감독이 되고 싶어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이씨는 “창작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며 “재미를 찾다 보니,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꽈페' 본점 1층 앞에서 이준호 사장이 두 손을 모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운호 기자

◇이준호 사장의 인생 타임 테이블

1.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진학

2. 휴학 및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2년)

3. 한양대 졸업 후 호주 르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 공부(2년)

4. 캐나다의 서양식 레스토랑 셰프로 근무(1년)

5. 제주도에서 수제버거집 운영(2년)

6. 홍대 인근에서 솜사탕 노점 운영(2달)

7. 대천 해수욕장에서 칵테일 노점 운영(2달)

8. 홍대 인근에서 스테이크집, 다국적 가정식집, 퓨전 한식집 운영(3년)

9. 기존 가게들 정리 후 꽈배기집 ‘꽈페’ 운영 중

'꽈페'의 대표 메뉴들. 왼쪽부터 할로윈 '미라', '프랑켄슈타인', 솔티드 카라멜, 유니콘, 티라미수./고운호 기자

◇한국, 호주, 캐나다...동섬서홀(東閃西忽) 자유로운 영혼의 끝없는 도전

이씨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자잘한 포물선들이 많다. 그는 미대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 때는 2년간 흑인 음악 동아리에서 DJ로 활동하며, 때때로 홍대의 작은 공연장을 빌려 공연도 했다. 당시 그는 뮤직 비디오 감독이 꿈이었다. 그러다 휴학을 하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2년을 보냈고, 귀국해 졸업장을 받자마자 다시 호주로 향했다. 요리에 꽂혀 르꼬르동 블루 호주 캠퍼스에서 프랑스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다. 그리곤 전공을 살려 캐나다에 있는 서양식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했고, 한국에 와서는 햄버거, 솜사탕, 칵테일, 세계 퓨전 요리 등 각종 먹거리를 팔았다.

–유학, 창업 비용을 집에서 지원해줬나요?

“입학금과 학비는 집에서 해줬지만 유학 기간 동안 생활비는 제가 식당에서 일하면서 마련했어요. 졸업 이후에는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았어요. 가게를 운영해 모은 돈으로 창업을 하는 식의 반복이었죠. 물론 중간중간 은행의 도움도 받았습니다.(웃음)”

–영상 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요리를 하게 됐나요?

“저는 창작자가 되고 싶었는데,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식당에서 일하면서 요리도 일종의 창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가장 쉽고 접근성 좋은 창작 행위인 거죠. 또, 세계 일주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요리만 할 줄 알면 내가 어느 나라에 있든 먹고 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요리는 적성에 잘 맞던 가요?

“솔직히 잘 맞진 않았어요. 요리는 한 자리에서 반복된 일을 하는 뚝심이 필요한데,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 호주, 캐나다의 식당에서 셰프로 일하고, 제주도에서 2년간 햄버거집을 운영했을 때 하루 종일 주방을 지켰어요. 한 자리에서 10시간씩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 주방이 쇠창살 없는 감옥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후 가게를 낼 때는 주방을 다른 셰프에게 맡기고, 저는 제품 기획이나 마케팅에 집중했죠.”

–해외 생활, 르꼬르동 블루 유학이 창업에 도움이 됐나요?

“호주, 캐나다는 세계화가 잘 된 나라들이에요. 그만큼 여러 나라의 음식이 있고, 음식이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변신을 거듭했죠. 다른 나라의 음식과 그 문화를 경험하면서 식견(識見)이 넓어졌어요. 겉핥기식 맛보기가 아니라 프랑스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던 거 같아요. 제 가게에 르꼬르동 블루 졸업장을 걸어 놓을 수도 있고요.(웃음)”

서울 연남동 꽈페 본점 2층. 이준호 사장이 꽈페의 캐릭터 포스터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고운호 기자

◇솜사탕, 칵테일, 스테이크, 퓨전 요리...되는대로 다 했다

2015년,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홍대 인근의 한 주차장에서 노점을 차려 솜사탕을 팔았다. 주말에는 하루에 1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두 달만에 2000만원을 벌었다. 한철 장사의 맛을 알게 된 그는, 여름을 맞아 대천 해수욕장 인근에 노점을 차려 칵테일 바를 운영했다. 똑같이 두 달 동안 장사를 했는데, 이번엔 남는 게 없었다.

2016년, 다시 홍대로 돌아와, 여러 실험을 했다. 서울 마포구 동진시장에서 소고기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인 세트 상품을 1만4900원에 팔고, 각국의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퓨전 식당, 훈연(燻煙)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한식당 등 가게를 ‘창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솜사탕을 어떻게 하루에 100만원 씩이나 판 거예요?

“홍대에서 처음으로 ‘레인보우 솜사탕’ 이란 걸 팔았어요. 솜사탕에 무지개색을 입힌 거죠. 화제가 되면서 손님이 몰렸고, 연예인들이 와서 촬영도 많이 했어요. 걸그룹 ‘여자친구’, 오디션 프로그램 ‘식스틴’ 출연진 등이 왔었죠. 당시 연습생이었던 블랙핑크도 왔었어요. 그때만 해도 알려지지 않았는데, 얼굴이 너무 예뻐서 기억에 남아요.(웃음) .”

–대천에 차린 칵테일바 노점도 잘 됐나요?

“손해만 안 본 정도였어요. 대천 해수욕장이 축제 기간에 잘 된다고 하길래 무턱대고 갔는데, 바닷가에 노점만 수십 개씩 있어서 경쟁이 심했어요. 칵테일 위에 솜사탕을 얹고, 물총 안에 데낄라를 넣어서 음료에 꼽아주는 등 재밌게 장사했지만 남는 건 없었어요. 바닷가에서 칵테일을 팔아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채운 데 의의를 뒀죠.”

'꽈페'에서 꽈배기의 꼬인 모양에서 착안해 만든 컵 홀더./ 고운호 기자

–실험적인 걸 많이 했네요.

“제가 창업하는 목적은 돈벌이 만큼 ‘창작’하는 재미에 있어요. 이런 가게가 있으면 좋겠다 싶으면 콘셉트, 메뉴, 인테리어 등을 구상해서 가게를 내는 거죠. 제 손에서 탄생 가게에 온 손님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는 걸 보면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

–지금은 ‘꽈페’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가요?

“네. 이전 가게들은 다 정리했어요. 한 브랜드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게 많더라고요. 꽈페는 꽈배기뿐만 아니라 컵, 가방, 의류도 만들어요. 단순히 카페가 아니라 하나의 가치를 가진 브랜드로 키우고 싶었거든요. 이런 모습을 좋게 봐줘서, 삼성 측 제의로 Z-플립 4와 콜라보도 하고 있어요. F&B(식음료) 브랜드 중에서 도넛집 ‘노티드’와 저희밖에 없답니다.”

–앞으로의 계획?

“한국의 디저트 문화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비 수준과 안목도 높아졌다는 거죠. 저는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K-디저트의 한축을 맡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꽈페의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꽈페 창업자 이준호의 ‘사장의 맛’

✅나는 음식 장사에 맞는 사람일까

“재료 손질, 요리, 상 차림...식당 장사는 좁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일상입니다. 제주도에서 2년간 수제 햄버거집을 운영하던 어느 날, 저는 주방이 쇠창살 없는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 여럿을 두고, 대형 매장을 운영할 여력이 없다면 한 자리에서 10시간씩 일하는 게 내 적성에 맞는지 한번쯤 고민 해보세요.”

✅요식업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당연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요식업에서 요리 실력은 큰 무기입니다. 신메뉴 개발, 사이드 메뉴 구성, 제품 기획 등 다방면에 도움이 되니까요. 요식업은 진입 장벽이 낮은 만큼 경쟁이 치열합니다. 나만의 무기가 필요하죠.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저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호주에 있는 요리 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업계 경험을 쌓거나 요리를 배워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맛은 기본, 비주얼을 살려라

“잘되는 식당은 맛은 기본입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비주얼로 손님을 끌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솜사탕에 무지색을 입히고, 칵테일에 물총으로 데낄라를 넣고, 한식 요리에 뚜껑을 덮어 손님 상에 올라갔을 때 김이 모락모락 나게 했습니다. 꽈배기는 고급 재료로 알록달록하게 꾸며 젊은 손님을 끌어모았죠. 비주얼은 메뉴 고민의 필수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