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최대 자치구인 송파구와 문화재청 간에 일촉즉발의 긴장이 감돌고 있다. 문화재청이 송파구 관내 아파트 재건축 현장과 공공청사 신축현장에서 고대 집터와 도자기 파편 등 소위 ‘문화재’가 출토됐다는 이유로 공사를 중단시키자 송파구가 주민재산권 보호 등을 명분으로 법적 대응을 불사하면서다. 집터는 절터, 성터, 궁터, 옛 무덤 등 주요 유적과 달리 문화재보호법상 보호대상이 아닌데, 문화재청이 과도하게 주민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 송파구 측 주장이다.
이를 주도하는 사람은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현역 구청장을 5만2000여표 차로 제치고 당선된 서강석 서울 송파구청장. 서울시 주택기획과장, 재무국장 등을 거치며 도시행정에 잔뼈가 굵은 서강석 구청장은 취임 첫날인 지난 7월 1일에도 송파구 풍납동 주민대표 10여명을 구청장실로 초청해 관련 사안을 청취했다.
풍납동에 있는 풍납토성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5년 한강 물길을 뒤바꾼 을축년 대홍수로 유물이 대거 출토되며 초기 백제 왕성인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추정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천호대교 쪽 북성벽이 복원됐고, 1989년 개통한 올림픽대교 남단 진입로의 선형이 휘어진 것도 풍납토성을 피해서다.1997년부터는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면서 토성 내에서 일체의 개발행위가 중단된 상태다. 2015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어젯밤 백제왕이 꿈에 나타났다”며 풍납토성 복원 및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공언한 직후부터는 토지굴착이나 형질변경 등을 수반하는 재건축·재개발은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 지금도 풍납토성 내 옛 삼표레미콘 공장부지에서는 문화재 발굴 및 토성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풍납토성 인근 풍납2동 복합주민센터 신축현장 역시 공사과정에서 도자기 파편 등이 출토되면서 문화재청의 명령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이에 송파구 측은 지난 6월 말 문화재청의 공사중지 명령에 불복하는 무효소송을 낸 상태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지난 10월 11일 서울 송파구청에서 만난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한강변 일대는 땅만 파면 집터가 나오는 곳”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잠실 주공5단지를 비롯해 향후 송파구 재건축 현장은 모조리 중단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취임 첫 행보로 풍납토성을 찾는 등 주민재산권 보호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선거 때 풍납동 일대를 방문하고 '이건 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지역주민들의 삶을 옥죈다면 그게 문화재냐 애물단지지. 취임 직후 풍납동 주민들을 구청장실로 모셔서 얘기를 들었다. 문화재청을 상대로 싸우는 참 피눈물나는 얘기였다."
- 풍납토성은 발굴 및 복원이 상당 부분 진척됐다. "풍납토성 복원한다고 수백억씩 돈을 들여 주민들을 내보냈다. 토성 흔적이 있다며 문화재보존구역, 매장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아무것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흙을 가져와 쌓아놓고 그 위에 잔디를 심은 뒤 토성이라고 하고 있다. 풍납동 안에 '백제문화공원'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 살던 사람들을 국비 700억원을 들여 이주시키고 만든 곳이다. 군데군데 타일을 깔아서 문화재가 있던 장소라고 페인트로 표시하고, 고증도 불명확한 허접한 초가집을 만들어 놓고 백제시대 사람들이 살던 집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만들면서 공원조성비와 별도로 나랏돈을 700억원이나 썼다."
실제로 지난 10월 11일 찾아간 풍납토성 일대는 땅값이 천정부지로 비싼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낙후했다. 일체의 개발행위가 제한된 터라 성곽 안쪽은 시골 읍내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길이 좁은 데다 엉켜 있었다. 이로 인한 주차난 역시 심각했다. 풍납토성 한가운데 재건축을 중단시키고 조성했다는 백제문화공원 곳곳에는 백제 때 집터로 추정되는 곳 위에 타일을 바른 뒤 유적 위치를 표시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졸속으로 조성한 탓인지 군데군데 타일이 뜯겨져 있었다. 복원이라기보다는 유적 원형만 훼손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도 했다.
- 송파구 관내 다른 지역도 이 같은 문제가 있나. "잠실은 재건축·재개발을 해야 하는데 진주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부뚜막이 나왔다. 문화재청은 어려운 말로 '유구(遺構)'라고 하더라. 2600여 가구 아파트 짓는다고 주민들은 전부 허름한 집에 이사가서 몇 년씩 고생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한데 아파트 부지 한가운데서 백제시대 부뚜막이 나왔다고 문화재청이 공사를 중단시키고 못하게 했다."
- 재건축 현장에서 문화재가 나오면 어떤 영향이 있나. "문화재청은 이전보존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초 어린이공원으로 계획한 곳을 역사문화공원으로 바꿔서 부뚜막을 이전하고 공사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문화재청이 이전하겠다고 하니 기다리는 중인데, 앞으로도 얼마나 기다리게 될지 모른다."
- 재산권도 중요하지만, 문화재 보존도 중요한 것 아닌가. "부뚜막이나 집터는 문화재가 아니다.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이 중 기념물은 문화재보호법상 절터, 성터, 궁터, 조개무덤(패총), 기타 이와 유사한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기념물로 되어 있다. 집터는 안 들어간다. 땅을 파기만 하면 옛날 사람들이 살던 집터가 나오는데 그게 무슨 문화재인가. 문화재보호법상 보존할 문화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집터를 '기타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고 지정해 2600여 가구에 어마어마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
- 집터가 나온 해당 현장에 국한된 일 아닌가. "진주아파트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 옆에 미성·크로바, 장미, 잠실주공 5단지도 줄줄이 재건축을 해야 한다. 문제는 잠실 5단지다. 잠실 5단지는 물경 3조원짜리 재건축이다. 아마 잠실 5단지를 헐어내는 순간 문화재청이 개입해서 똑같이 못하게 할 것이다. 100% 집터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집이 있었던 흔적이라 해서 '집터'라고 하는데 사실 '흙덩어리'에 불과하다. 집터에 가봤더니 하수도 토관이 같이 묻혀 있더라. 이미 옛날에 다 나왔다는 것이다. 지표조사 역시 사업시행자 부담이다. 나중에 아파트 값으로 전가되고, 이자부담은 말도 못할 것이다."
- 문화재청 입장은 무엇인가. "문화재청장과 면담 신청을 해놨다. 문화재청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문화재청 입장은 땅속에 수많은 문화재가 있으니 대대손손 건들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화재 독재다. 독재가 다른 것이 아니다. 국가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이 가진 기본적 인권, 재산권 등을 제한하는 일이 독재다. 풍납동은 매장문화재 보존지역으로 되어 있어 집을 헐고 지으려면 지표조사부터 해야 한다. 지표조사는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이다. 이미 많은 주민들이 보상을 받고 나갔다. 그 안에 있는 아파트는 50년이 지나 무너져 내려도 재건축을 못 한다."
- 대안이 있나. "만약 진짜 대단한 문화재가 나왔다면, 진시황 병마용갱처럼 사람들이 들어가서 그 안의 문화재를 보게 해야 한다. 나머지는 금싸라기 땅에 한강변 풍납신도시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풍납동 주민들의 눈물, 누가 닦아줘야 하나'라는 칼럼도 썼다. 주민들은 약하다. 풍납동 주민 이외에 관계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반드시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지 무슨 개발이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수십조원을 들여서 주민들의 생활이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주고 이전시키든지. 지금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끝없는 희생만 요구한다."
- 민선 8기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송파구청 개청 이래 가장 큰 조직개편이 있었다. 행정학자 입장에서 봤을 때 행정조직의 원리원칙에 맞지 않는 조직들이 많이 있었다. 행정조직의 이름은 하는 일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행정수요자들이 저 조직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대신 '전략개발기획단'을 신설했다. 송파대로 명품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송파구 유치 등 공약사업을 담당할 것이다."
- 잠실주공 5단지 등 관내 주요 재건축 추진상황은. "잠실 5단지 정비계획이 확정됐다. 정비계획대로 하기로 주민결의도 됐고, 조합장도 새로 선출했다. 재건축을 늦추는 주요 요인이 조직 분규다. 조합이 있고, 비상대책위가 있어서 맨날 싸웠다. 잠실 5단지는 그럴만한 요인을 구청에서 제거했다. 전에는 간선으로 조합장을 선출했다. 지금은 직선으로 조합원 전체 총의를 물어서 조합장을 선출한다. 3조원이나 되는 사업을 끌고 가려면 리더십이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선거관리도 구청에서 하면서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과거 구청은 이런 일에 개입을 잘 안 했는데 이제는 '가르마'를 타준다. 1980년대 지은 집들은 최신형 집으로 재건축되는 것이 옳다. 새 집은 살기도 편하고 에너지 절약형이다. 옛날 집들이 고층으로 개발되고 녹지공간이 넓어지면 명품도시가 될 것이다."
- 잠실 종합운동장 마이스(MICE) 개발과 관련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따른 재산권 침해도 논란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반대한다. 토지거래허가라는 것은 재산권 행사에 대한 극약처방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려면 현존하는 명백한 투기위험이나 지대한 공익침해가 있어야 한다. 잠실운동장 마이스 개발은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림을 그리는 단계다. 빠르고 쉽게 될 일이 아닌데 긴 기간 동안 주민들이 거래를 못 하게 하면 안 된다. 지금 집값이 떨어지고 있고, 공시지가 밑으로 내려갈 판이다. 사람이 사는 일은 경우의 수가 천차만별이다. 반드시 팔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이사를 가야 하는 사람도 있다."
- 잠실 재건축, 위례신도시로 인한 송파구 분구(分區)론도 나온다. “인구 66만명 송파구는 27개 주민센터가 있다. 대부분 구(區)는 인구 30만명에 15~16개 주민센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분구는 반대다. 서울시에서 마지막으로 분구한 것이 1988년 송파구 등 5개 구청을 분구한 것이다. 분구는 그야말로 공무원 숫자만 천문학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행정이 효율화, 전산화되어 있기 때문에 분구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인구 20만~30만명 되는 구들을 하나로 합쳐서 합구(合區)하는 것이 맞는다. 서울시도 다른 구들을 합쳐서 인구 50만~60만명 정도의 송파구처럼 만드는 것이 옳다. 얼마나 세금낭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