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금리가 큰 폭으로 뛰고 주가가 하락하면서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빌린 돈(인수금융)으로 상장사를 사들였던 사모집합투자기구(PEF·사모펀드)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PEF는 기업을 인수할 때 자금이 모자랄 경우 해당 기업의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아 충당한다. 이 때문에 인수한 기업의 주가가 올라야 대출금 이자를 갚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최근 주가가 인수 가격 밑으로 떨어진 기업이 속출하며 손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일부 기업은 주가가 크게 떨어져 돈을 빌릴 때 조건으로 걸었던 주식 담보인정비율(LTV)을 맞추기 어렵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돈줄을 쥔 기관 투자자들은 이런 위험 때문에 최근 “상장사에 투자하지 말라”는 말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 폭락 미샤, 인수금융 압박에 매각
시장 하락세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기업은 1세대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로 유명한 ‘미샤’의 운영사 에이블씨엔씨다. 2017년 에이블씨엔씨를 인수한 IMM프라이빗에퀴티(PE)는 약 4000억원을 투자해 주당 4만3636원에 에이블씨엔씨 지분 59%를 확보했다. 이 중 약 1200억원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했다. 재무 약정 내용에는 영업이익 200억원 이상 유지, 주식 LTV 50%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사태로 화장품 수요가 급감하면서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2020년부터 영업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올 들어 주가가 급락해 인수가의 10분의 1 수준이 됐다. IMM PE는 이달 중순 돌아오는 인수금융 만기를 앞두고 대주단과 만기 연장 협상에 나섰지만 신협중앙회가 동의하지 않으면서 빚을 갚기 위해 에이블씨엔씨 매각에 나섰다.
IMM PE가 인수한 기업 중 한샘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IMM PE는 올 초 한샘 인수를 위해 약 8000억원의 인수금융을 조달하면서 LTV 75%를 넘지 않는 조건으로 재무 약정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IMM PE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합쳐 주당 22만1000원에 한샘을 인수했는데 주가가 3만900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인수금융이 담보 지분 가치의 350%를 초과하는 상태가 됐다. 에이블씨엔씨 만기 연장에 동의하지 않았던 신협이 한샘 대주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장 일각에서는 대주단이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기한이익상실(Events of default·EOD)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다만 한샘의 경우 대출 만기가 5년이나 남아있어 에이블씨엔씨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락앤락의 ‘배당 폭탄’도 인수금융 때문?
홍콩계 PEF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니티)가 2017년 인수한 락앤락이 최근 ‘배당금 폭탄’을 터뜨린 것도 에이블씨엔씨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락앤락은 지난 11일 829억원 규모의 분기 배당을 공시했다. 20일 기준 3100억원인 락앤락 시가총액의 26.7%에 달한다. 어피니티가 락앤락을 인수한 2017년과 2018년 배당액이 총 110억여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기록적인 규모다.
락앤락 측은 “성과를 투자자들과 나누기 위해서 배당을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업계 반응은 다르다. 어피니티가 락앤락을 인수하면서 조달한 32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이 올 연말 만기인데 이자 비용 충당을 위해 대규모 배당을 했다는 것이다. 어피니티는 락앤락을 주당 1만8000원에 인수했는데 현재가는 6000원대로 3분의 1에 불과하다.
올해 PI첨단소재를 인수한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PEA)도 고민이 깊다. 당시 PI첨단소재의 주가는 5만500원이었으나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주당 8만300원에 지분 54.07%를 사들였는데, 현재 3만4000원대로 30% 이상 하락했다.
◇인수금융 금리 10%까지 오를 가능성
한국은행이 지난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을 밟으면서 인수금융 시장은 더욱 얼어붙을 전망이다. 지난해 연 3~4%대였던 인수금융 금리는 올해 들어 연 5~6%까지 올랐다. IB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9% 이자를 부르는 곳도 있다”며 “인수금융 금리가 10%까지도 갈 수 있을 전망이어서 PEF 입장에서는 그 이상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투자할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