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리인상과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자금시장이 경색된 가운데 정부가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공공기관에 회사채 발행 자제를 요청했다. 신용도가 높은 공공기관 채권에 자금이 몰려 다른 회사채 발행이 안되는 ‘돈맥경화’ 현상을 풀기 위해서다.

3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공공기관에 회사채 발행을 최대한 자제하고 자금 조달이 필요한 경우 은행 대출을 받도록 요청했다. 회사채를 꼭 발행해야 한다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발행하는 방안도 권고했다.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한전채 등 공사채는 최상위 신용등급(AAA)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중 자금을 빨아들인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한전은 올해 들어서만 23조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해 지난해 발행액(10조 3200억원)의 2배를 넘겼다.

앞서 정부는 공공기관을 포함한 기업들이 채권 발행이 아닌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은행의 예대율(예금액 대비 대출액 비율) 규제도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은행과 저축은행 모두 100%였던 것을 은행 105%, 저축은행 110%로 풀어줬다. 이 방안을 통해 은행이 기업에 최대 60조원을 추가로 대출해 줄 여력이 생길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또다른 채권시장의 자금 ‘블랙홀’로 꼽히는 산업금융채(산금채)와 은행채 발행 축소도 유도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최대 20조원 규모로 투입되는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가 적재적소로 흐르도록 하기 위함도 있다. 이번주 채안펀드의 1차 추가 캐피털 콜(자금 납입 요청)이 시작되는 가운데 채안펀드 출자 기관인 산업은행이나 시중 은행이 자금 조달을 위해 채권을 발행할 경우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의 해외채권 발행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30일 “최근 당국과 금융사들이 모여 자금 시장 안정을 논하는 자리에서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채권 발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점이 클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당국은 그간 환위험에 노출될 가능성 때문에 금융사의 해외채권 발행을 자제시켜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원화 가치가 떨어진 때에는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한 후 환헤지를 하면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셈이어서 환율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등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