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스피 지수가 외국인과 기관 매수세에 힘입어 2300선을 회복한 가운데, 한국 증시가 중국을 빠져나온 ‘차이나런(China Run·중국과 뱅크런의 합성어)’ 자금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과 미·중 간 긴장관계 유지 등의 여파로 글로벌 자금의 탈(脫)중국 현상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미국 대형 연기금, 중국 투자 줄이는 추세
2일 유안타증권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 교직원 퇴직연금은 지난 10월부터 신흥국에 투자하는 자금 중 중국 비중을 기존 35.4%에서 17.7%로 절반가량 줄였다. 반면 한국의 비중은 11.2%에서 14.3%로 3.1%포인트 늘렸다. 인도(12.7%→16.2%), 브라질(4.9%→6.2%), 사우디아라비아 (4.3%→5.4%) 등 다른 신흥국 투자 비율도 높였다. 텍사스 교직원 퇴직연금이 전체 운용 기금 중 주식에 투자하는 기금은 지난 6월 기준 987억 달러(약 139조9800억원)이고 이 중 신흥국 운용 기금은 14억8000만 달러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비율 조정은 지난 10월 시작돼 내년 3월까지 6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라며 최근 국내 증시의 외국인 순매수와 유관성이 다소 높아 보인다”고 했다.
중국에서 돈을 빼는 미국 연기금은 텍사스 교직원 퇴직연금이 처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플로리다 공공근로자 펀드는 올해 중국 시장에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노스캐롤라이나퇴직연금이 들고 있던 중국 주식은 지난 9월말 15억1000만달러에서 10월말 12억7000만달러로 줄어들었다.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과 캘리포니아 교직원 퇴직연금은 알리바바, JD닷컴, 핀둬둬 등 중국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올해 수십억 달러를 손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연기금은 전체 규모가 각각 4300억 달러, 2900억 달러로 미국 연기금 규모 1, 2위를 차지한다. WSJ는 “5조 달러 규모의 연기금을 운용하는 미국 주정부는 지난 20년간 중국에 투자를 늘려왔으나 이제는 다른 시선으로 중국 투자를 바라보고 있다”며 “다른 신흥국에 투자하거나, 아예 신흥국 투자를 접는 등 고민이 깊어졌다”고 했다.
◇10월 코스피는 +3.8%, 항셍지수는 -13%
올 초부터 시작된 글로벌 자금의 탈중국 현상은 지난달 23일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이후 더욱 거세졌다. 홍콩 항셍지수는 지난 10월 한 달간 13% 급락했고, 중국 본토 상하이지수(-4.14%)와 대만 자취엔지수(-4.07%)도 하락했다. 올 초부터 이어지던 미·중 관계 악화와 중국의 반시장적 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시진핑 3기’ 출범으로 더욱 강해진 것이다. 3기 지도부는 모두 시 주석의 측근 그룹으로 이루어져있다. 시 주석이 내세우는 ‘공동부유(共同富裕·모두가 잘사는 사회)’ 추구 등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경제 정책들이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국내 증시는 이 기간 상승세를 보였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10월 4일 2209.38에서 31일 2293.61로 3.8% 상승했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특히 외국인이 10월 한 달간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470억원어치를 순매수해 상승 기류를 이끌었다. 외국인은 올해 상반기 국내 주식을 16조2000억원어치 순매도했으나 7월 이후에는 넉 달간 7조원가량을 순매수했다.
시장에서는 중국 증시가 하락세인데 국내 증시가 상승세를 보이는 현상이 이례적이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는 통상 중국 위험이 확산될 때 중국 경제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나라 주식도 외국인들의 매도세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차이나런’을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며 “미국 주도하에 글로벌 경제와 산업이 다시 재편되고 신공급망 구축이 추진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국내 산업에 미칠 수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 신용경색 위험이 가시화하면 국내 신용경색 우려 증폭과 원화 가치 약세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