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신차를 할부로 사기로 미리 계약한 직장인 김모(34)씨는 이번 달 중 차가 출고될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고 차 값을 마련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계약 당시만 해도 일부 카드사에서 12개월 무이자 할부가 가능했는데 이제는 카드사 오토 금융 최저 금리가 연 4~5%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렇게 빨리 금리가 오를 줄 몰랐다”며 “주변에서는 계약을 취소하고 금리 내릴 때 사는 게 낫다고들 해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레고랜드와 한전채, 글로벌 금리 인상 등으로 촉발된 자금 시장의 ‘돈맥 경화’ 현상이 자동차 할부 구매까지 덮쳤다. 최근 2년간 캐피털사가 장악한 자동차 할부 시장의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저금리 상품을 내놨던 카드사들뿐 아니라 시장의 터줏대감인 캐피털사들까지 대출 규모를 줄이고 있다. 고금리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카드·캐피털사들은 대출 금리를 높이거나 연말까지 신규 대출을 중단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석달 전 2%대였던 오토 할부, 10% 육박
6일 여신금융업계에 따르면 11월 기준 국내 주요 카드·캐피털사들의 자동차 할부 대출 금리는 연 6~7%대로 집계됐다. 현대자동차 그랜저를 현금 구매 비율 10%, 대출 기간 36개월로 계열사인 현대캐피털에서 할부 구매할 경우 최저 4%에서 최고 9%의 금리를 내게 된다.
다른 주요 카드사의 차량 할부 금리도 평균 6%대로 높다. 같은 조건으로 차를 구매할 경우 삼성카드가 6.6% 금리를 적용하고 국민카드는 6.3~6.4%, 하나카드는 5.3~6.5% 금리를 적용한다. 롯데카드의 경우 8.7%다. 업계에서는 이 속도로 가면 연말 할부 금리가 10%대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올해 여름까지만 해도 최저금리 2%대 자동차 할부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며 “올해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와중에도 고객 유치를 위해 출혈 경쟁을 계속해왔지만 더 이상은 한계”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주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신용등급 1등급이어도 자동차 할부가 안 된다”는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캐피털사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1등급인데 할부를 못 받는다는 것은 아마도 다른 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일부 캐피털사에서 올해 연말까지 신규 대출 취급을 중단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와 관련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채 금리 올 들어 2배 이상 뛰어
카드사와 캐피털사들이 대출을 줄이는 것은 급리 급등과 자금 시장 경색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카드사나 캐피털사는 은행과 달리 수신기능이 없어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그런데 올해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 금리가 가파른 속도로 치솟으면서 여전채 금리가 큰 폭으로 올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등급 AA+인 여전채 3년물 금리는 지난 4일 6%를 기록했다. 지난 1월 3일에는 같은 조건의 여전채 금리가 2.42%였는데 10개월만에 금리가 2.5배가 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대출이 많은 일부 캐피털사들이 자금난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캐피탈 등 AA급 캐피털사의 경우 오토 금융의 비중이 높은데, 이는 담보력이 인정돼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며 “부동산 금융 많은 A급 캐피털사들이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할부 없이 차 어떻게 사나요” 소비 심리 감소
할부 구매가 어려워지면서 자동차 소비 심리는 점점 얼어붙고 있다. 지난해 신차 평균 판매 가격이 4420만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4000만원을 돌파하는 등 차 값이 오른 데다 할부 중단까지 악재로 작용한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 2달간 주가가 18%가량 빠졌다. 내년 자동차 업계 전망에 대해 김귀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자동차는 소비재 중 단일 품목 기준 가격이 가장 비싸기 때문에 경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확대로 신차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