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10월 주간조선과 인터뷰했던 30대 중반의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한국 주식시장의 왜곡된 구조가 개선된다면 코스피는 4000이 아닌 6000도 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주주가 가지고 있는 1주와 개인투자자가 가지고 있는 1주의 가치는 같지 않다”며 자본시장에 도전장을 냈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은 바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정확했으나 수십 년간 고착화되어 있던 한국의 자본시장, 좁게는 주식시장을 바꾸겠다는 말이 솔직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닐까 싶었다.
그가 자신의 말을 입증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대표는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가 대주주인 이수만 회장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에 매해 수백억원의 돈을 지불하는 것을 문제삼으며 본격적으로 언론에 이름을 알렸다. 과도한 돈을 이수만 회장 개인회사에 지급함으로써 회사의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주장이었다. 그가 2021년 인터뷰에서 주장했던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였다.
양측은 결국 지분대결까지 갔고 이 대표 측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 대표의 문제 제기에 개인 주주들은 물론이고, 노르웨이 국부펀드 등이 동의하며 이룬 결과였다.
이 대표가 지적한 문제가 해결되자 주가가 솟구쳤다. 코스닥이 23% 추락하던 지난해, SM 주가는 22%가 올랐다. 난공불락처럼 여겨진 대주주를 향한 개미들의 반란은 성공했고, 이는 지난해 주식시장 최대의 사건으로 꼽혔다. 결국 이 대표는 한국거래소가 선정하는 ‘2022년 자본시장 올해의 인물’ 후보 10인에 꼽히기도 했다.
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출신인 이 대표는 2021년 얼라인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저평가된 상장사에 투자한 뒤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등 주주행동을 통해 가치를 높이는 행동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의 운용자산(AUM)은 현재 2700억원 규모다.
해외 기관투자가 등으로부터 50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펀드 설립 1년 만에 자본시장 MZ세대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이 대표는 최근 7대 시중은행을 향해 배당을 늘리라는 공개서한을 보내며 또다시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9일 이 대표를 만나 시중은행에 배당 증액을 요구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물어봤다.
- 펀드 설립하고 1년도 안 되어서 이수만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화제를 모았다. "내가 가진 SM 지분이 1%밖에 안 되는데 경영권을 가질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기존 최대주주에게 뭔가를 요구해서 그대로 관철된 첫 케이스라는 데 의의가 있다."
- 왜 SM이었나. "사실 간단하다. 이게 누구하고 싸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싼 기업, 즉 가치 대비 저평가된 곳에 투자를 해서 가치를 올리는 게 우리 전략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투자한 곳이 5~6개밖에 안 된다. 그중에 첫 번째로 투자한 게 SM이었다. 그런데 SM의 문제는 우리가 처음 찾아낸 게 아니라 여의도에 이미 널리 알려졌던 사안이었다. KB자산운용에서 2019년에 먼저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KB의 이런 지적이 시장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SM 측이 '너희가 업(業)을 몰라서 그래. 우리 원래부터 이렇게 했고 앞으로 이렇게 할 거야' 하면서 안 받아줬다. 그래서 주가가 폭락했다."
- SM이 저평가된 원인은 무엇이었나. "기존에 배운 대로 이 회사 주가를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봤다. 기본적으로는 산업도 되게 좋고 M&A 가치도 있고 카카오나 CJ 같은 곳이 인수하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이 회사가 하이브나 JYP에 비해 엄청 저평가되어 있었다. 매출은 JYP보다 3배인데, 시가총액은 JYP가 더 컸다. 영업이익도 JYP가 더 많았다. 결국 이게 거버넌스(지배구조) 이슈였다. 이 회장의 지분은 18%밖에 안 된다. 2000년에 코스닥에 상장했는데 SM이 그 이후 '소녀시대'나 '동방신기'가 성공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한 번도 배당을 안 했다. 대주주의 지분이 18% 밖에 안 되니까 아무래도 배당하기가 아까웠을수도 있다. 오히려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와 계약을 맺어 본인이 회사하고 매출의 6%, 영업이익의 30~40%를 가져갔다. 심지어 회사가 적자일 때도 돈을 받아갔다. JYP 박진영 대표나 하이브 방시혁 대표는 회사에 등기 임원으로 취임을 해서 월급을 받는다. 연봉이 10억원도 안 된다. 반면 이수만 회장은 계약을 맺어 매해 수백억원씩, 20년 동안 1600억원을 받아왔다. 배당은 안 하고."
결국 얼라인파트너스는 SM과 지분 대결에서 33%를 받았고, SM은 자기 지분 19%를 포함해 22.8%를 받았다. 얼라인파트너스의 완승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대표가 이 정도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전자서명을 통해 의결권을 위임받을 수 있도록 한 모바일 플랫폼 ‘비사이드’의 역할이 컸다. 그동안 개인주주들의 의결권은 전화나 직접 방문을 통해 받던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비사이드는 전자서명을 통해 본인확인을 완료하고 신분증 사본을 업로드하면 오프라인 위임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는 전자서명법 개정안에 착안해 만든 플랫폼이다.
이 대표가 투자해 개발이 시작됐고, 지금은 벤처캐피털의 투자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사이드가 ‘계란’을 모은 역할을 한 셈이다. 오래전부터 소액주주 운동을 펼쳐온 참여연대 출신의 채이배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는 기자에게 “이 플랫폼이 자본시장 건전화에 있어서 획기적 발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이 플랫폼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액주주들의 지분가치를 높이는 일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이 대표는 최근 시중 7대 은행에 배당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주주환원 정책을 요구하는 공개서신을 발송하고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 왜 이번에는 시중 7대 은행을 목표로 했나. "SM하고 같은 거다. 우리나라 은행은 너무 저평가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규모인 싱가포르나 대만의 은행하고 비교해서도 훨씬 밸류에이션이 낮다. 밸류에이션이 낮으면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주식 발행을 못 한다. 그렇게 되면 은행이 어려울 때 자본을 조달해야 하는데자금 조달을 못 하니까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다음에 국부가 엄청 손상된다. 그리고 시중은행 최대주주인 국민연금도 손해를 본다."
이 대표에 따르면 국내 은행주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2022년 12월 29일 종가 기준)은 0.31배로, 해외 주요 은행 평균(1.28배)에 크게 못 미친다. 평균 주가수익비율(PER)도 3.05배로 해외 은행 평균 9.50배와 비교해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 그러면 은행주가 저평가된 이유는 뭔가. "은행이 돈을 매년 몇조원씩 버는데 그 돈을 가지고 크게 3가지를 할 수 있다. 일단 자본 비율을 높이는 데 쓸 수 있다. 자본 비율을 안 높이더라도 대출을 할 때 어느 정도는 자기 자본금으로 쌓아놔야 한다. 아니면 주주에게 환원을 할 수도 있는데,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모든 은행이) 배당을 못 하니까 단기 순익의 25%만 배당을 했다. 그런데 해외는 64%가 평균이다. 배당도 못 하게 하면 결국 자기자본을 계속 쌓게 되고 그러면 자본 이익률이 떨어진다. 자본 비율을 더 높일 수 없고 배당도 못 하는 상황에서는 뭘 하는 줄 아나. 남은 돈으로 경쟁적으로 대출 경쟁을 하는 거다.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가 최근 5년 동안 1년에 3%씩 성장했는데 대출은 8.6%씩 성장했다.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가계부채 기업부채 합쳐서 170%나 됐다. 이게 220%까지 올라갔고, 그 사이 우리나라 모든 자산 가격들이 다 급등했다."
- 주주들 배당을 늘리면 결국 주주들 배만 불리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다. 배당을 안 하면 자본비율은 더 안 쌓아도 되니까 계속 대출만 한다. 그럼 앞으로 계속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나라 경제가 너무 과도한 레버리지에 부채가 심각해지고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다가 은행 주가는 싸니까 위기가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위기가 왔을 때 자본 조달도 안 된다. 이게 국가적인 문제와도 연결돼 있고 주가도 높이는 것이니까 '윈윈'이다. 경제나 국가 모두에 좋고 주주들한테도 좋다. 투자자인 우리가 이걸 안 할 이유가 없다. 이게 우리나라 경제 전체적인 문제다."
- 배당을 늘리면 은행 주가가 올라가나. "은행 주가는 배당 수익률로 많이 결정된다. 은행주는 기본적으로 배당주다. 근데 지금도 배당 수익률이 한 6~8% 정도 된다. 지금 주가 기준으로는 이익의 25%만 배당하지만, 예를 들어 이것을 50%로 올린다면 배당 수익률은 8%에서 16%가 된다. 주가가 동일하다 가정하면 배당 수익률을 원래 있던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서 주가가 올라간다. 지금 주가만 보면 사람들은 6~8% 정도 배당에 만족하는데, 배당을 늘리면 주가가 두 배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들의 대출 성장률은 줄어들고, 국가의 레버리지 증가율도 줄어든다. 그러면 GDP 대비 대출 비율이 더 높아지지 않게 된다."
- 지금 경제상황에서 대출규제를 하면 역풍이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어차피 정부에서도 디레버리징하려고 한다. 나는 (배당을 늘리라는 요구가) 정부 정책 방향과 동일하다고 본다. 올해는 원래 가만히 놔뒀어도 대출은 조금밖에 성장 못 했을 것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올해는 어차피 대출이 줄어들텐데 우리는 장기적으로 본다. 그래서 당장에 어떻게 하라는 게 아니다. 올해 배당에 대해서도 우리가 별 말을 안 했다.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앞으로의 장기적인 배당 및 주주 정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면 미래를 미리 반영해서 주가는 오를 것이고, 대신 올해 당장 나갈 돈은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현재 얼라인파트너스가 가지고 있는 금융주는 우리금융 지분 1%와 JB금융 지분 14% 등이다. KB금융 10만주, 신한지주와 하나금융지주 각 5만주 등 나머지 은행들도 지분 0.5%에는 못 미치지만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GB금융은 주주들로부터 지분 1%의 의결권을 위임받았다. 상법상 자본금 1000억원 이상 상장사의 주주는 지분 0.5%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하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7대 상장 은행지주사는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 대표는 한두 은행이 아닌 모든 은행 지주사를 대상으로 주주행동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국내 은행들의 비효율적인 자본 배치는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 차원에서 지속되어 온 문제여서 은행권 전반에서 일제히 논의가 이뤄져야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