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사육 두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소고기 도매 값이 하락 중이다. 역대급 하락세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소비자가 사는 ‘소고기 값’은 큰 차이가 없다. 마트에서 대폭 할인한다고 해도 국거리나 장조림용 사태, 우둔 같은 비인기 부위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한우 사육 마릿수는 352만8000마리로, 전년 동기 대비 11만3000 마리(3.3%) 증가했다. 공급이 늘었는데 소비는 줄어 도매가는 20% 넘게 떨어졌다. 그러나 산지가와 도매가가 ‘뚝’ 떨어져도, 소매가는 ‘찔끔’ 내린 척할 뿐이다.

지난해 4분기(9~12월) 한우 등심(1등급)의 도매가가 약 20% 떨어질 때, 소비자가는 5% 하락에 그쳤다. 도매가가 떨어진 만큼 소비자가를 내리지 않은 것이다.

2021년 한우(1등급 거세)의 소매 업종별 가격 조사./자료=축산물품질평가원,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축산 농가, 도매상, 중개인 모두 ‘죽겠다’고 하는데

1개월 키우는 닭, 6개월 키우는 돼지보다 한우는 사육 기간이 30개월로 길다. 고환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사료 값 상승으로 비용은 하루하루 불어난다. 경기 광주시의 축산농 임종선(60)씨는 “마리당 사료 값만 1년 새 100만원씩 올랐고, 전기료, 톱밥 값 등 안 오른 게 없다”고 했다.

생산비는 늘었지만 소 ‘출하’ 가격은 떨어졌다. 전국한우협회에 따르면, 최근 2~3등급 한우는 마리당 400만~500만원, 1등급 한우는 700만원 선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한우 비육우 한 마리의 사육비(송아지 값 포함)는 약 875만원이다. 임종선씨도 “6개월 된 송아지를 400만원에 사 와 사료 값 등 키우는 비용이 550만원 들어갔다”고 했다. 임씨 소가 1등급을 받아도 100만원 이상 손해를 보는 구조다.

소를 잡는 도축비는 20만원 내외 그대로다. 도축한 고기를 소매업자용으로 포장해서 파는 도매업자(식육 포장 처리업체)의 마진도 일정하다. 경기 이천시의 업체 관계자는 “매일 한우 40~50마리를 작업하는데, 마리당 순이익은 2~3%로 고정”이라며 “업계 사람들이 시세를 뻔히 아는데 도매가를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실제로 산지 가격이 떨어지면, 도매가까지는 연동되어 하락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기준, 한우 한 마리의 생산가(1017만원)는 전년 동기 대비 5.4%, 도매가(1267만원)는 1.1% 떨어졌다. 하지만 소비자가(2054만원)는 반대로 2.8% 올랐다.

◇소고기는 원래 비싸다? 농림부 “소매점 가격 공개 검토 중”

소비자가가 내려가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소매상들은 “한우는 비싸다는 인식이 생겼으니 굳이 가격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일종의 ‘사치재’ 가격 원리다.

서울 동작구의 정육점 직원이 말했다. “한우는 가격을 내린다고 안 사던 손님이 갑자기 사는 게 아니에요. 안 사는 사람은 안 사요.” 서울 강남구의 한우 전문점 사장은 “다들 비싸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100그램당 몇 천 원 내리는 건 의미가 없다”고 했다.

대형 마트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마트는 유통량이 많아 시세를 반영하는데 ‘시차’가 생긴다고 말한다. ‘매주 월요일 30% 할인’식의 주기적인 행사도 가격을 내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평소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다 ‘이벤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최근 인건비, 운송비 등 전반적인 물가까지 올라 한우는 사실상 마진이 없는 상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우 축산농, 식육 포장 처리업체 등은 “소매업자 마진이 30~40%로 과도해 소비가 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생산가 1025만원, 도매가 1262만원짜리 한우(1+등급 거세) 한 마리가 백화점에서 팔리는 가격은 3319만원, 대형 마트에선 2383만원, 정육점에선 1781만원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소비자가도 지난 1년간 12% 하락했지만 가격 연동이 느린 건 사실”이라며 “효과적인 시세 반영을 위해 민간단체와 협력해 마트 등 소매업체의 가격을 주기적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