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립 삼성아트 어린이집 어린이들이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문정 래미안 아파트 경로당을 찾아 합동 세배를 마친 뒤 어르신에게 세뱃돈을 받고 있다. /뉴스1

“조카 세뱃돈으로 호기롭게 5만원권을 쥐여주고는 뒤돌아 후회로 몸부림친 수많은 이들이, 3만원권 발행을 열렬히 환영하지 않을지.”

3만원권을 발행하자는 가수 이적의 제안이 이번 설 연휴 기간에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결의안을 발의하겠다”며 화답했죠. 한국은행은 “당장은 3만원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으나 여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3만원권 발행은 성사될까요? 일단 필요성은 있어 보입니다. 미국은 10·20·50달러 지폐를 쓰고, 유로화도 10·20·50유로로 나뉩니다. 한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유럽식으로 ‘1-2-5′ 체제를 따르지 않고 1만원권에서 바로 5만원권으로 넘어가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일본도 예전에 발행한 2000엔 지폐를 여전히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폐 권종을 새로 발행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3만원권을 발행하려면 먼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과 기획재정부 승인을 거쳐야 합니다. 5만원권의 경우 2006년 12월 ‘고액권 화폐 발행을 위한 촉구 결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고 2년 6개월이 지난 2009년 6월이 되어서야 쓸 수 있게 됐죠.

전국에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3만원권을 인식할 수 있도록 교체해야 하는 기술적 문제도 있습니다. 과거 5000원권과 1만원권 디자인을 바꿨을 때 ATM 교체 비용으로만 약 8000억원이 들었습니다. 지폐 ‘얼굴’을 어떤 인물로 할지 사회적 합의도 필요합니다. 또 신용카드와 간편결제 사용이 급증하고 현금은 잘 쓰지 않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면서 비용을 들여 새 지폐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이 모든 복잡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3만원권 발행이 주목받는 것은 현금으로 주고받는 세뱃돈이나 부조 문화와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2009년 5만원권이 발행된 건 1만원권이 나오고 36년이 지나서였습니다. 5만원권이 나온 지 14년이 되는 2023년에 3만원권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국민 편의와 사회적 비용 사이에서 정교한 저울질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