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14일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닉6’의 모습. 전기차의 인기를 보여주듯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다. photo 뉴시스

파주에 있는 한 아파트. 새해 들어 입주민 커뮤니티에서 “전기차 지하주차를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전기차를 운행하는 소수의 입주민들 입장에서는 목덜미가 서늘한 이야기였다. 테슬라 모델3를 몰고 있는 해당 아파트 주민은 “화재가 나면 주변 차들까지 다 전소되고 끄지도 못하니까 위험하다는 얘기였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괜히 울컥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전기차 화재 소식이 언론을 탔다. 내연기관차도 불은 난다. 다만 공포감의 정도가 다르다. 전기차 화재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강렬하다. 뉴스에 등장한 전기차의 불길은 금방 잡히지 않는다. 전기차 배터리는 셀(cell)들의 집합체다. 한 셀에서 열폭주가 시작해 불이 붙으면 다른 셀로 옮겨 붙고 그래서 더 강력한 열폭주를 일으킨다. 전기차 화재를 진화하는 데 수시간씩 걸리는 것도 이런 폭발적 반응 때문이다. ‘수조’라고 불리는 이동식 침수조로 차를 물에 담그는 방법 등 특유의 방법들이 동반돼야 한다.

‘미움받는 전기차’라는 말도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애초 전기차주들은 기계식 주차(타워주차)를 잘 하지 않는다. 배터리 탓에 차량 무게가 2t 내외인 지라 구형 기계식 주차장의 한계 중량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나마 2.2t 정도까지 가능한 신형 타워는 가능하다지만 진입하면서 이게 구형인지 신형인지 따지기 쉽지 않고 전기차는 무조건 안 된다는 관리인의 손사래도 부담스럽다. 그런데 이제는 화재 때문에 지하주차장까지 거부당하는 곳이 나오고 있다. 성남이나 남양주 일부 상가 건물에서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진입을 금지한다는 이야기가 커뮤니티에서는 퍼졌다.

경제성이라는 ‘편익’, 화재라는 ‘위험’

화재 리스크가 커지자 지난 1월 12일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는 기자들을 모아서 아이오닉5 충돌 안전평가 현장을 공개했다. 이날 기자들의 질문 키워드는 대부분 ‘화재’였다. 현대차 측에 따르면 “2022년 소방청 발표 기준으로 국내 내연기관차의 화재는 4356건, 전기차는 37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등록된 차량의 비율로 따지면 내연기관차 중 0.018%, 전기차는 0.010%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받은 인상과 달리 통계는 전기차의 화재 빈도가 의외로 적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안전 이슈는 전기차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구조를 적용하고 있지만 어떤 메이커도 일정 수준 이상의 속도에서는 한계가 있다. 현존 기술로는 높은 속도에서 탑승자나 배터리를 완벽하게 보호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구매 희망자 중에서도 화재 소식을 찝찝해 한다. 벤츠를 판매하는 한 딜러는 “우리 전기차는 화재가 난 적 없지만 대기 중인 고객이 정말 괜찮은지 묻는 경우가 늘었다. 다만 그것 때문에 계약을 취소하는지는 알 수 없다. 취소는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추구하는 기술의 편익에는 위험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전기차주가 느끼는 최대의 편익은 경제성이다. 뭔가 불완전해 보이고 아직 못 미더워도 전기차가 주는 운용의 저렴함은 피부에 확 와 닿는다. 서울 송파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신대진(43)씨의 차계부를 보자. 그는 BMW에서 2022년 출시한 i4 eDrive40 모델을 지난해 8월 구매했다.

지난해 12월 신씨는 이 전기차로 총 112회 주행을 했고 기록한 주행거리는 3480㎞였다. 신씨의 12월 충전 금액은 10만7499원이었다. 그의 이전 차량은 2000cc 가솔린 세단이었다. “매달 이 정도 거리를 뛰는데 휘발윳값은 40만~50만원 정도 들었다. 반면 전기차는 연료비가 4분의1 수준인데 겨울에 충전을 더 자주하니까 많이 든 편이다. 날이 따뜻해지면 더 적게 든다.”

이런 비용적 장점은 전기차를 대세로 만들어 줄 거라고 믿는 근거가 됐다. 게다가 친환경이다. 친환경은 전략적으로 이 산업을 소비자에게 밀어주는 동력이다. 기후변화 방지 노력에서 도태되지 않겠다는 의지는 각국의 정책에서 드러난다. 우리 정부는 2021년 2월 ‘제4차 친환경자동차 기본계획(2021~2025년)’을 발표했는데, 법에 따라 5년 단위 계획을 세워 공개하고 있다. 이 계획에서는 환경적·산업적 고려를 정책적으로 구체화한다. 전기차 수요를 어떻게 창출할 건지, 공급은 어떻게 확대할 건지를 제시하는데 여기서 그 당위성으로 첫손에 내세우는 건 환경적 목표다. 제4차 계획에서는 ‘2030년까지 자동차 온실가스 24% 감축’을 첫 목표로 내세웠다.

사라지는 ‘보조금’, 줄어드는 경쟁력

‘환경을 위해 전기차를 사달라’는 건 보조금을 적용하기 위한 대의명분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비싸다. 배터리 가격 때문이다. 그런데 비싸도 친환경을 위해 사달라고 해야 한다. 수출만이 살 길인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국제 시장의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 요구로 전기차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산업의 논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전기차의 확충은 필요하다.

이런 전제는 보조금을 지급해 가격을 낮춰주는 걸로 연결된다. 아직 우리 정부의 2023년 보조금 개편안은 결정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5500만원 미만 전기차는 국고보조금에서 700만원을, 8500만원 미만의 경우 50%인 350만원을 지급받았다. 여기에 지자체 보조금까지 붙으면 최대 1000만원 이상 보조금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지역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 보조금 지급 논리에 갸웃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전기차가 과연 친환경이냐는 물음이 시나브로 제기된다. 전기차는 운행할 때 탄소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부품 제조 과정부터 폐차까지 LCA(Life Cycle Assessment·전주기 평가)를 따졌을 때 배출되는 탄소 총량은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유럽 기관인 그린엔캡(Green NCAP)은 지난해 4월 가솔린·디젤·전기차·하이브리드 등 시판 모델 61종을 3년간 테스트해 얻은 LCA 결과를 공개했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주행에서 소모되는 화석 연료의 연소가 탄소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전기차는 지역별 에너지원에 따라 탄소가스 배출량이 다르게 산출된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를 많이 활용하는 스웨덴에서는 전기 생산에 탄소배출량이 적지만 석탄발전소가 많은 폴란드에서는 같은 전기차라도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데 일부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많은 배출량을 기록했다.

보조금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움직임도 전기차의 경쟁력을 가로막는다. 전기차 보급의 1등 공신은 보조금이다. 다만 이 보조금은 세금이 재원이다. 사실상 대다수를 차지하는 내연기관 차량 소유주의 세금으로 전기차 구매를 돕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해 11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서는 ‘주민발의안 30호’를 두고 주의회에서 찬반 투표가 있었다. 발의안의 내용은 이랬다. 연 소득 20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를 1.75%포인트 인상하자는 거였다. 새로 생기는 35억달러의 세수 중 절반가량은 전기차 보조금으로, 35%는 전기차 충전소를 짓는 데 활용한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부결되고 말았다.

세율이 높은 캘리포니아주에서 또다시 증세가 이뤄지는 걸 문제 삼는 의견이 많았지만 증세에 찬성하는 진보 진영도 분열했다. 환경론자들은 찬성했다. 반면 교원 노조 등은 “왜 그 돈을 애들 교육 등 중요한 데 안 쓰고 전기차 구입에 보태느냐”며 반대했다. 보조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부각시킨 사례였다.

유럽에서는 요즘 보조금을 줄이거나 없애는 쪽으로 간다. 영국은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기로 했고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들은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시장 왜곡을 막기 위해, 이미 보급률이 높아서라는 여러 이유를 들지만 일각에서는 아직 전기차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못한 유럽 자동차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조금을 줘봐야 중국 등 동아시아 기업들이 혜택을 보며 유럽을 먹어삼킨다는 위기감도 일부 발동했다는 분석이다.

에너지 위기로 전기 생산 단가가 급등하자 내연기관차를 타는 게 그리 나쁘지 않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가 장애물이 됐다. 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의회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로 가야 한다는 이 대의(大義)에 반대표를 던진 이들이 45%나 됐다.

30%나 떨어진 2030년 전기차 점유율 전망

지난해 팔린 차 10대 중 1대는 전기차였다. 두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한 건 처음이다. 다만 앞으로의 증가세가 시장의 기대를 채울지는 미지수다. 확산의 큰 장애물은 역시 가격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비싸다. 단 어느 정도까지 비싸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 절반 이상은 내연기관차보다 20% 정도 비싸다면 구매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지금보다 가격이 떨어져야 하고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의 동향이 중요해진다.

지난 10년간 전기차 업계에서 가장 일관된 추세 중 하나는 배터리 가격의 하락이었다. 2010년 1kWh(킬로와트시)당 1000달러를 웃돌던 배터리 가격은 2021년 1kWh당 141달러까지 떨어졌다.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전환에 과감하게 투자를 쏟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2022년 처음으로 배터리 가격이 올랐다. 151달러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약 7% 상승했다. 2023년에도 152달러로 1달러 오르는 걸로 전망된다. 상승한 이유는 수요의 증가 때문이다. 에너지 리서치기관인 블룸버그NEF는 “수요가 늘면서 코발트, 니켈, 리튬 등의 재료비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리튬 가격은 2021년 초보다 약 10배, 니켈은 75% 정도 올랐다.

보조금이 줄어드는 중에 배터리 가격이 오르면 전기차 가격 결정에 문제가 생긴다. 가격을 낮추려면 중국이 강세인 저가형 리튬인산철(LFP)배터리를 장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기 때문에 같은 주행거리를 뽑으려면 더 많은 배터리를 탑재해야 해 차가 무거워진다. 보조금 유지를 정부에 읍소하거나 자동차 관련 세금 등에서 또 다른 혜택을 요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다. 정말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마진을 줄이거나 차값을 인상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낙관적이던 전기자동차에 대한 전망은 어느 정도 수정됐다. 글로벌 회계법인인 KPMG가 지난해 12월에 공개한 ‘글로벌 자동차산업동향 보고서’를 보면 설문에 참여한 글로벌 자동차기업 경영진(915명)은 2030년까지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이 전체 자동차 판매의 약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70%라는 대답에 비하면 크게 감소한 전망치다. 전기차 혁명은 일어나고 있지만, 충분히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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