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남편과 맞벌이인 고모(32)씨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가계부를 쓰고 있지만, 가계부에 적힌 숫자를 보면 우울해진다. 지난달의 경우 대출 이자(61만원)와 관리비(18만3000원), 통신비(12만3000원), 수도요금(1만2500원), 보험료(36만원) 등으로 약 129만원이 나갔다. 지난달 총지출(420만원)에서 이런 고정지출이 30%를 넘었다. 고씨는 “작년부터 대출 이자 부담이 늘면서 고정지출이 커졌다”며 “이러니 외식비 등에 쓸 수 있는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 지출의 27%가 세금이나 이자를 내는 데 쓰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가계지출 359만1000원에서 비소비지출(95만1000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6.5%로 전년(26.1%)보다 높아졌다. 1인 가구 포함 조사가 시작된 2006년 이래 연간 기준으로는 가장 높은 수치다.

◇이자, 세금 내고 나면 쓸 돈 없다

지난해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비소비지출은 95만1000원으로 1년 전보다 8% 증가했다. 비소비지출은 이자비용을 비롯해 소득세·재산세·자동차세 등 각종 세금, 건강보험료·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 등을 다 포함한다. 한마디로 만져보지도 못한 월급인 셈이다. 비소비지출이 커질수록 가계가 소비나 저축에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은 그만큼 줄어든다.

비소비지출 비중은 5년 전인 2017년까지만 해도 22.9%였다. 2018년 23.7%, 2019년 26.2%, 2020년 25.9%, 2021년 26.1% 등으로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그만큼 소비에 쓸 여력은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부 항목별로는 이자비용(9만9000원)이 1년 전보다 15.3% 급증해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작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등의 이자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소득세와 재산세, 자동차세 등 정기적으로 부과되는 경상조세(21만2000원)가 10.6% 증가했다. 사회보험료(16만8000원)는 8% 증가했다.

특히 도시에 살고 가구주가 근로자인 도시 근로자 가구의 경우 가계지출 대비 비소비지출 비중이 29.1%로 전체 가구 평균을 웃돌았다. 소득의 3분의 1 가까이를 세금과 이자를 내는 데 쓰는 셈이다.

◇청년 가구주 상황 더 나빠져

이날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부채는 19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말 가구당 부채는 8652만원으로 2021년 말(8755만원)보다 1.17% 감소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금리가 오르면서 부채가 크게 늘지 않았고, 1인 가구 급증으로 가구 수가 늘면서 가구당 빚이 줄었다. 하지만, 청년 가구의 부채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다.

이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미래의 삶을 위한 자산 실태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내몰린 청년(19~39세) 가구주 4∼5명 중 1명은 연소득의 3배 이상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8000만 원이 넘는 부채가 있는 것으로 조사돼 평균 부채금액이 10년 새 2.5배로 늘어났다. 부채가 소득의 3배가 넘는 경우가 21.75%나 됐다. 2012년에는 8.37%에 그쳤다.

통계청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청년이 가구주인 가구의 평균 부채는 2021년 8455만원으로 조사됐다. 2012년(3405만원)의 2.48배로 늘어났다. 부채는 임대보증금을 제외한 금융부채로, 평균값은 부채가 없는 청년을 포함해 계산됐다. 부채가 있는 청년 가구만을 대상으로 하면 평균 부채액은 1억1511만원으로 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