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금융가를 중심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소리 소문 없이 화제를 모은 책이 ‘부동산을 공부할 결심’이다. ‘마침내 찾아온 붕괴의 시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작년 11월초에 나온 이 책은 배문성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크레딧애널리스트(채권 분석 연구원)가 저자이다. 부동산과 관련된 책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이 책이 특히 전문가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금리 급등이 초래한 전세가와 집값 폭락 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이 금리 상승이 부동산 가격과 별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했다. 과거에 금리인상기에도 집값이 계속 올랐던 경험을 근거로 한 것이다.
배 애널리스트는 금리가 부동산 가격의 절대 변수가 된 이유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또 전세시장을 채권적 시각에서 분석했는데, 금리인상이 촉발시킨 전세가격 하락과 집값 급락을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너희가 피(P)맛을 알아’, ‘금리가 낮을수록 작은 변화에도 시장이 민감한 이유’, ‘마침내 종교적 신념의 붕괴’, ‘내릴수록 집 사고 싶은 금리의 마력’, ‘영구채라 여겼던 전세보증금의 반격’ 등 목차만 봐도 흥미를 유발한다.
배문성 애널리스트는 신용평가사에서 건설업 애널리스트로서 부동산 하락 사이클을 연구했고, 국책은행에서 국내외 여러 업종의 심사평가 및 여신업무를 수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부동산을 공부할 결심’이란 책을 통해 역전세란에 의한 집값 하락을 전망했다.
“원고의 상당 부분이 예전에 개인 SNS에 올렸던 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책은 전세는 채권이라는 논리에서 출발했다. 채권 분석을 하다보니 2022년 금리가 예상보다 크게 올라갈 것으로 전망됐다. 2021년 팬데믹 저금리와 반포주공아파트 재건축으로 발생한 강남권 대규모 이주 수요로 인한 충격 탓에 치솟은 전세가 계약 만기가 도래하는 2년 뒤인 2023년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치솟는 금리와 강남 개포의 대규모 입주물량으로 2023년 전세가격이 급락할 것으로 봤다.
전세가격이 급락하면 집주인 입장에서는 목돈을 갚아야 하는 셈이다.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지 못한 분들은 결국 집을 팔아야 한다. 전세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 집값도 끌어내릴 수 있다고 봤다. 집값을 분석할 때 주택공급의 관점을 지나치게 강조한 전문가와 책들이 많다. 물론 공급도 중요하지만 금리가 크게 변화는 시기에는 금리가 공급요인을 압도한다는 관점이다. 공급도 서울 전체 입주 물량보다는 상급지 입주물량이 더 중요한 변수라고 봤다.”
-향후 집값은?
“2018년 금리가 오르고 9500세대의 송파 헬리오시티가 입주하면서 서울 집값이 약세를 보였다. 당시에는 금리가 다시 내리면서 급반등했다. 짧은 침체기를 거쳐 조기에 반등했는데, 금리 인하 덕분이었다. 이번 침체기가 얼마나 지속될 지는 금리가 중요한 변수이다. 고금리가 오래 지속되면 그만큼 반등의 시기도 늦어질 것이다. "
-어느 정도 금리가 내려야 반등할까?
“금리 인하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본다. 우선,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굉장히 빠르게 잘 잡혀서 금리가 내려가는 경우이다. 이럴 경우, 반등의 시기도 앞당겨질 수 있다. 두 번째는 과거 리만쇼크처럼 금융 위기가 도래, 금융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내리는 경우이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금리인하는 부동산 반등의 신호탄이 되기는 힘들다. 우선 혼란을 소화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 경기침체 장기화의 시그널이 될 수 있다. "
-금리와 공급, 주택가격에 어느 쪽 더 결정적인가?
“수도권의 경우,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아파트 기준 연간 10만~14만 호 정도가 입주했다. 그런데 2017년에 18만호, 2018년에 23만호까지 입주물량이 늘어났다. 광교 동탄 김포 등 2기 신도시 위주로 입주 물량이 확 늘어났다. 입주물량 통계로만 보면 집값이 폭락해야 했지만, 입주 이후 가격은 분양가 대비 상당히 올랐다. 바로 금리 탓이다. 금리가 계속해서 낮아지면서 유동성 장세가 부동산시장에서도 펼쳐진 것이다. 집값은 공급과 금리를 같이 봐야 한다. 인천과 대구의 경우, 공급폭탄으로 집값이 급락하고 있다. 금리상승기에 공급까지 늘어나 이중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만일 지금이 금리 하락기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금리 하락기에는 공급이 늘어나도 어느 정도 시장이 소화를 해낼 수 있다”
-주택공급 전체 물량보다 인기지역의 공급량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작년에 공사나 은행같은 우량기업들이 채권을 대량 발행하면서 자금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은 아예 수요 자체가 없어 시장붕괴가 우려될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부동산도 채권처럼 상당히 서열화 되어 있다. 서울의 경우, 강남권에 공급이 많아지면 강남보다 입지가 떨어지는 지역의 수요까지 흡수한다. 서울 주택공급 절대량보다는 강남권에 얼마나 공급되느냐가 시장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주택공급을 이야기 할 때 Q(Quantity,수량)와 함께 P(Price,가격)를 같이 봐야 한다. 주택 입주물량중 P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인기지역의 고가 아파트 입주량, 즉 강남권 입주량이 전체 서울시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
◇강남 4구 올해 입주 물량 작년의 3배
-일부 전문가들은 서울아파트 입주물량이 2020년 5만호에서 올해 2만3000호, 내년 1만 4000가구로 줄어들어 집값이 반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2020년의 경우,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5만 호가 훌쩍 넘었다. 서울의 장기 평균 아파트 입주 물량이 대략 3만8000호인데 비해 입주물량이 많았지만, 전세가격과 집값이 모두 올랐다.
2021년에도 입주물량이 4.7만호로 꽤 많았으나 당시 반포 주공 재건축을 위한 이주수요가 전세가격을 밀어 올렸다. 당시 전체 입주물량보다는 강남권의 입주물량이 적어 서울 전체 집값과 전세가격을 밀어 올렸다. 민간 정보 업체에서 올해, 내년 입주물량을 지나치게 과소 추정했다. 재건축 재개발 조합이 분양가 상한제 등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하는 물량이 포함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올해는 서울 입주물량 자체는 줄어들지만 강남권 입주물량은 크게 늘어난다. 서초구·강남구·송파구·강동구 등 강남 4구의 올해 입주 예정 물량(1만2402가구)은 작년(3592가구)보다 3배 이상이다. 2023~2026년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3구의 입주물량이 5만1236가구, 강동까지 포함한 강남 4구는 6만3000가구나 돼 강남권에서 역전세란과 집값 하락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금리, 집값과 관계 없다는 폭등론자의 착각
- 일부 전문가들이 금리상승이 집값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다.
“경제학 교과서에 금리는 성장과 인플레이션에 따라 정해진다고 나와 있다. 높은 성장률 덕분에 금리가 올라갈 때는 집값에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덜 받는다. 한국의 경우, 2004~2008년 기준 금리를 3%에서 5.25%까지 올렸는데, 이때 집값은 오히려 올랐다.
천천히 금리가 오른데다 당시는 성장률도 5%대로 지금보다는 훨씬 높았다. 이번에 금리인상은 0.5%에서 시작, 3.5%까지 단기간에 급격하게 올리다 보니까 금리 충격이 훨씬 크다. 똑같은 1% 포인트 금리인상이라고 해도 5%에서 6%로 올리는 것과 1%에서 2%로 올리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전자는 금융비융이 20% 증가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100% 폭증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저금리에 익숙해졌다. 인플레이션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다. 2000년대의 금리인상은 고성장의 반영이었지만, 지금의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 탓이다.”
-금리인상이 없었다면?
“만약 기준금리가 0.5% 수준에서 유지가 됐고 공급에 변화가 없었다면 집값의 변동은 소득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저금리라고 해도 소득대비 집값이 너무 높으면 지속불가능하다. 아무리 저금리라도 소득으로는 지속 불가능한 집값이라면 자연스럽게 조정을 받았을 것이다. 점진적으로 횡보하면서 떨어지는 정도였을 것이다. 금리가 치솟으면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급매물이 나오면서 집값이 급락으로 이어졌다.”
-중장기적인 금리전망은?
“금리를 중장기적으로 전망하는데 두 가지 변수가 있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와 중국의 고령화이다. 탄소배출량 감축과 같은 ESG는 이제 권고사항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는 입법 사항으로 바뀌었다. 우리 기업도 ESG 규제를 지키지 않으면 수출에 제한을 받는다. ESG 는 추가적인 비용증가를 의미한다. 글로벌 저물가와 저금리는 중국의 노동력이 만들어낸 산물인 측면이 있다. 중국의 노동력이 고령화되고 있어 중국발 저물가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과거의 저금리가 오히려 특수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의 정도의 높은 금리가 유지되지는 않겠지만, 극단적인 저금리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
※이 인터뷰는 배문성 애널리스트의 개인 의견이며 회사(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