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지의 한 중견 언론인과 지역 고령화와 인구 유출 등 무거운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할 때였다. 그는 “부산에 젊은 사람들이 다닐 기업이 없다”며 “전기요금이라도 차등화해야 한다”고 했다.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전기요금과 일자리는 어떻게 연결되기에 이런 말이 나왔을까.
최근 전기요금을 지역마다 다르게 내자는, 차등화 적용을 향한 시동이 걸렸다. 먼저 국회 차원의 논의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안(분산에너지법)’이 지난 3월 23일 국회 상임위에서 의결됐다. 중앙집중식인 국가 전력시스템을 분산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게 이 법안의 핵심이다.
현재 전력요금은 지역별로 균등하다. 동일한 요금으로 산정해 청구서를 받는다. 하지만 이게 불합리하다며 다르게 내자는 의견은 10여년 전부터, 특히 원자력발전소 소재지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수도권 소비자를 위해 비수도권 발전소 지역의 주민들이 송전시설 건설과 생산 비용까지 부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수도권 부족한 전력, 지방이 채우는 구조
전력 수급 불균형의 현황을 수치로 확인해 보자. 박수영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이 생산한 전력은 4337GWh(기가와트시)로 4만6579GWh를 생산한 부산의 10분의1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대로 서울이 소비한 전력은 4만8789GWh. 생산량보다 10배 이상 많은 전기를 썼다. 반대로 부산은 2만1494GWh를 썼다. 지역 발전량의 절반도 다 못 썼다. 부산이 전기를 많이 생산한 이유는 원전이 있어서다.
발전량이 많은 곳 중에는 화력발전소들이 자리 잡은 충남도 있다. 충남의 생산량은 10만7821GWh이지만 절반 정도인 5만260GWh만 지역 내에서 소비됐다. 경기도는 8만5781GWh로 생산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소비량은 그 이상인 14만531GWh다. 서울과 경기도의 전력 구멍을 메워주는 건 지방이다. 한국에서 전력 자급률이 200%를 넘는 곳은 부산·충남·인천·경북인데 이곳에서는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가동한다.
전기료 차등의 논리는 이런 현실에 바탕을 둔 채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한다. 하나는 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의 고통과 불이익에 대한 보상의 관점이다. 지방은 저렴하게, 수도권은 좀 더 비싸게 전기를 써야 한다는 근거로 내세운다.
지역에 대규모 발전소들이 있다는 건 환경오염이나 재산 손실 등의 비용을 주민들에게 감내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자력 발전소 예정 구역으로 지정되는 것만으로 지역민들의 재산권 행사는 어려워진다. 건물을 짓거나 확장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원법에 따라서 혜택을 제공하고 한수원 차원에서도 여러 혜택을 드리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원전을 끼고 있다면 ‘사용후 핵연료’라는 오염물질, 그리고 안전에 대한 불안까지 덤으로 받게 된다.
또 다른 관점은 시장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멀리 보낼수록 더 비싸야 한다는 얘기다. 지방에 위치한 발전소의 전기는 송전망을 이용해 수도권으로 간다. 당연히 멀수록 송전 비용이 더 든다. 지난해 10월 한국전력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정승일 한전 사장은 “전력의 공급과 수요가 너무 불균형이어서 생산과 운송을 위한 설비가 과다하게 지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남아서, 다른 쪽은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이 상황의 모든 원인은 전력을 생산하는 곳과 사용하는 곳이 멀리 떨어져서다. 하지만 송전 인프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물 취급을 받는다. 동해안에 위치한 화력발전소들은 발전용량에 미치지 못하는 가동률을 보이고 있는데 송전선이 깔리지 못해서다. 동에서 서로 연결돼야 할 송전선이 삼척·정선·횡성·홍천 등에서 지역 주민의 반발로 제대로 설치되지 못했다. 삼척시 관계자는 “동해안이 미세먼지 해방구로 인정받았는데 발전소 때문에 관광객 대상 장사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많다. 여기서 발전하는 전기도 80%는 수도권으로 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전기요금 차등제 앞에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단일대오를 취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같은 편을 먹었다. 과거 기장군·경주시·영광군·울진군 등 기초자치단체장이 중심이 돼 차등제를 주장했다면 지금은 영호남 8개 시·도 자치단체장으로 구성된 ‘영호남 시도지사 협력회의’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기업 유치 노리는 전기요금 차등제 효과
이들은 전기요금 차등제를 지방공동화의 대안으로도 생각한다. 전력수요가 많은 기업들이 저렴한 전기요금의 편익을 누리기 위해 이전할 수도 있고 지역 내 일자리도, 경제효과도 유발할 수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데이터센터 유치에 다른 지자체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력요금이 저렴하다면 수도권에 편중돼 있는 데이터센터를 부산으로 유치하는 데 상대적으로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전기요금 차등화는 넘어야 할 장벽들도 존재한다. 정부의 반응은 신중론에 가깝다. 국회 산자위 관계자는 “요즘 산자부 앞에 놓인 난제가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기를 대야 하는 거다. 송·변전설비 보강 등 전력망 수요에 대비해야 하는데 한전 적자도 심하고 주민 수용도 어려워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수도권에 자리한 대표적인 전력소비 산업이다.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는 삼성전자의 용인 반도체산단과 평택캠퍼스, SK하이닉스 용인캠퍼스가 2025년께 완공되면 58.6TWh(테라와트시)의 전력이 소비될 것으로 예측했다. 2021년 서울시 전력 소비량(47.3TWh)보다 많은 전기가 새롭게 공급돼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수도권의 반발은 가장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인구 절반에 대한 요금 인상으로 비칠 수 있다. 반발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전기요금 차등제는 설득 논리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문제일 수도 있다.
부산연구원의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 방안’ 연구 용역의 설문조사는 수도권과 지방, 양쪽의 인식 차이를 보여준다. 수도권 600명과 원전 지역 600명을 상대로 전력 자급률에 따라 요금 차등제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의견을 물어본 결과 원전 지역 주민은 41.83%가 찬성, 37.83%가 반대했다. 반면 수도권 주민은 21.34%가 찬성했고 55.34%가 반대했다.
질문을 바꿔서 ‘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환경 오염 및 위험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발전소 인근 지역은 전기요금을 낮춰줘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진행된 요금 차등제에 관한 설문에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원전 지역 주민은 65.66%, 수도권 주민은 55.5%가 찬성했다.
“전력요금 차등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접근은 발전소 지역 또는 전력공급시설 인근에 발생하는 위험의 보상으로서 차등요금제를 적용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다. 발전소 지역은 누구나 회피하고 싶어 한다. 이들 지역에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전기요금을 차등하는 것이 차등요금제에 대한 수용성을 보다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에 자문으로 참가한 원두환 부산대 교수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