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늦게 인하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370원대를 웃돌며 1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분쟁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으로 확산하는 등 중동발 지정학적 위험도 커지고 있어 환율이 곧 1400원대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12일 종가 기준 1375.4원이다. 이는 2022년 11월 10일(1377.5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주 대비 상승폭(22.6원)도 지난 1월 19일(25.5원) 이후 가장 컸다.
이처럼 환율이 가파르게 오른 것은 미국의 고금리가 유지되면서 달러 강세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실제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이달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담화에서 “금리 조정이 급하지 않다”며 “금리를 너무 일찍 인하하는 것은 실질적인 위험”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발표된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전년 동월 대비 3.5%로 시장 예상치(3.4%)를 웃돌았다. 미국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더디게 둔화하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가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고,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장 금리로 미국 기준 금리를 추정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따르면, 오는 6월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확률은 20% 밑으로 떨어졌다.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도 달러 가치를 오르게 하는 요인이다. 달러는 미국 국채나 금처럼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분쟁이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 간 분쟁으로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등하고 있지만 정부가 개입 의지를 시사하지 않은 점도 추가 환율 상승의 요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 환율은 단순히 원화만 절하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 달러 강세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또 “(환율이) 과도한 변동성을 보이면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일단)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중동발 전쟁확산 우려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심리, 정부 개입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시장에서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상단을 1400원대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