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閣)’의 외부 모습. photo 네이버

‘칩’만 있으면 인공지능(AI)의 새 시대가 활짝 열릴 줄 알았다. 그래서 빅테크들도, AI 사회에 대처하려는 정부들도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 중이다. 그런데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2025년이 되면 인공지능(AI)을 위한 충분한 전기를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 내년이면 큰 장벽을 만나게 된다는 예측이다.

가뜩이나 기후변화 탓에 온 세상이 전력난을 고민하는데, AI마저 여기에 동참한다는 건 왜 그럴까. AI는 전기를 많이 먹는다. 이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데이터센터가 있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컴퓨터와 네트워크 회선 등을 제공하거나 서비스를 위한 IT 인프라를 보관하는 곳이다. 보통 클라우드 컴퓨팅을 위한 장소였는데 이제는 수많은 데이터를 집적하고 연산하는, AI 전용 데이터센터가 들어서고 있다. 우리가 매일 생산하는 수많은 데이터들이 가는 곳이다.

챗GPT 검색, 구글 검색보다 전력 10배 소모

이미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는 꽤 많이 퍼졌다. 대략 80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력사용량은 새 산업이 태동하면서 증가해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과 비교해 2022년 에너지 수요 변동폭이 가장 크게 증가한 분야가 ‘가상자산 채굴’이었다. 하지만 이 가상자산 채굴 분야보다 2배 이상 에너지를 쓴 분야가 있으니 바로 데이터센터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량은 340TWh(테라와트시)다. 이게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알려면 같은 해 우리나라의 1년 전력소비량과 비교해보면 된다. 2022년 한국 전력소비량은 568TWh다.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전력이 우리나라 1년 전력소비량의 60% 정도라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는 전기를 많이 쓰는 나라다. 2022년 기준 연간 전력소비량이 500TWh를 넘는 국가는 중국·미국·인도·러시아·일본·캐나다·브라질·한국 등 8개국뿐이다.

데이터센터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고 처리하는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그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경쟁적으로 생성형AI에 도전할수록 전기는 더욱 간절해진다. 우리가 ‘구글’에 접속해 검색어를 입력하고 엔터를 누른다고 치자. 우리 모니터에는 검색어와 관련한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화면이 뜬다. 그런데 이런 검색을 할 때마다 우리는 전기를 사용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검색을 할 때마다 데이터가 해저 광랜을 통해 오가기 위해서도 전기가 필요하다.

미국 전력연구소(EPRI)가 지난 6월 5일 발표한 연구 보고서를 보자. 구글 검색을 한 번 할 때 사용되는 전력은 약 0.3Wh(와트시)에 불과하다. 반면 챗GPT는 검색할 때마다 2.9Wh를 사용했다. 구글 검색보다 10배의 전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만약 AI 검색이 웹 검색에 통합된다면 어떻게 될까. 보고서는 “구글의 AI 기능이 구글 검색에 통합된다면 검색당 전력 소모가 6.9~8.9Wh로 챗GPT보다 3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단순 구글 검색보다 최대 30배 정도 전력 소모가 더 크다는 이야기다.

이런 흐름은 ‘없어서 못 판다’는 엔비디아의 H100이 생성형AI의 대세가 되면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글로벌 에너지 자동화 전문기업인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연초 보고서에서 엔비디아가 지난해 150만개, 올해 200만개의 H100을 판매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총 350만개의 H100이 소모하는 전력량은 연간 1만3091GWh(기가와트시)다. 일부 소규모 국가의 전력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데이터센터가 가장 많이 있는 조지아주의 원자력발전소 모습. photo 뉴시스

데이터센터 온 뒤 받은 비싼 청구서

전력난은 더 이상 보고서 속에서만 등장하는 일이 아니다.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에서는 테크산업과 무관한 중서부의 옥수수밭에도 건물을 지으려 한다. 미국 조지아주는 데이터센터가 몰려든 대표 지역이다. 올해 들어서도 클라우드 글로벌 점유율 1위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조지아주의 뉴턴 카운티 코빙턴시의 부지 174만㎡를 3600만달러에 사들였다.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서다.

이곳에 데이터센터가 몰리는 이유는 이렇다. 일단 토지와 전력 비용이 저렴하다. 자연재해도 다른 주와 비교해 적다. 그리고 광섬유망이 잘 깔려 있다. 이런 이유로 이미 적지 않은 데이터센터가 들어섰다. AT&T, 구글 등의 데이터센터를 포함해 50여개의 데이터센터가 이곳에 자리 잡았다.

법인세의 풍족함에 행복할 것만 같은 이 지역은 최근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범람으로 조지아주는 산업용 전력 수요가 이전 추정치보다 17배나 더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아야 했다. 조지아 공공서비스위원회의 제이슨 쇼 위원장은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가 전에 본 적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잠재적인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주 정부도 딜레마를 안았다. 전력이 부족해지면 전력을 공급받을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게다가 전력 부족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다.

상충하는 문제도 있다. ‘탄소 제로(0)’를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은 너무 빠른 전력 수요 속도에 방해받는다. 전력 수요 급증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워 에너지 기업들은 화석연료 발전소의 운행 중단을 연기하자며 로비를 벌이고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고 있다. 조지아주에 있는 서던코는 2028년 퇴역 예정인 석탄발전소를 2030년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다른 주도 상황이 비슷하다. 미국 전력발전사 알리안트에너지는 위스콘신주에 있는 석탄발전소의 천연가스발전 전환 시점을 2025년에서 2028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이유는 AI 등 첨단산업으로 발생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AI 기술과 환경적 지속가능성 사이에 근본적인 미스 매치가 생긴 사례다.

게다가 이미 조지아주 주민들은 인상된 전기료 고지서를 받아들었다. 조지아주의 전력회사인 조지아파워(GP)는 조지아 공공서비스위원회에 “전력 수요가 많은데다 화석연료 비용이 예상보다 높았다”며 20억달러 이상을 사용자들에게 추가로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승인받았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5월 발간한 투자자 보고서를 통해 AI와 전기료의 상관관계를 지적했다. 보고서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전력 수요는 인구와 경제 활동이 증가했는데도 제자리 수준이었다. LED와 같은 전력 효율성을 위한 노력이 도움이 되었던 건데 이는 곧 바뀔 예정이다. 2022년에서 2030년 사이 미국의 전력 수요는 약 2.4% 증가할 것이며, 증가분 중 약 40%가 데이터센터와 연관된다”고 추정했다. 2.4%라지만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 2.4%를 위해 투자해야 할 액수가 약 500억달러(약 68조7750억원)에 달한다.

발전소도 필요하지만 더 급한 건 변압기와 전력망이다. 발전소가 지어진다 해도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보내려면 초고압변압기가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3분의1 정도가 30년 이상된 변압기로 보고 있다. 유럽의 경우는 그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AI 산업의 성장세와 맞물려 초고압변압기를 생산하는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의 주가가 올해 들어 급등하고 있다. 앞선 관계자가 “우리끼리는 이쪽 산업의 주가가 체감될 정도로 상승하는 게 21세기 들어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고 할 정도로 이례적이다. 손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이클은 교체 수요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신재생에너지 등 신규 수요가 함께 반영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2029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AI는 이제 주요국의 에너지 정책 변화도 견인하는 중이다. 탄소 제로 시대는 AI의 등장으로 요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온다. 이미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원전 확대를 공언했다. “AI시대에 대응해 원자력발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효율화를 진행 중”이라며 “이미 원전 6기를 짓고 있고, 새 원전 8기 건설도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도 최근 “원전 설비용량을 최소 3배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가 직접 원전산업 재점화를 추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빅테크들은 원자력 에너지에 적극 투자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원자력발전소 운영업체인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과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그동안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오던 MS가 데이터센터 동력에 원자력을 추가했다. 구글도 TAE테크놀러지스(TAE Technologies)에 2억5000만달러(약 2647억원)를 투자했다. 이곳은 핵융합 스타트업이다. 아마존은 아예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북서쪽에 위치한 탈렌에너지의 원자력발전소 옆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6억5000만달러에 매입했다. 이웃한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바로 공급받을 수 있는 게 매력적이라서다.

“신규 센터 감당하려면 원전 53기 필요”

우리의 상황이라고 해외와 다를 건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동안 신규 데이터센터 수요는 732개, 소요 전력 용량은 4만9397MW다. 만약 이 수요가 모두 지어진다면 필요한 전력은 얼마나 될까. 유재국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AI 혁명에 부응한 선제적 전력공급·전력망 확충 긴요’라는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가 요청한 대로 지어진다면 1000MW(1GW)급 발전기를 53기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특히 유 조사관은 변압기 용량도 부족하다고 본다. 한국전력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전국 배전단 변압기 용량은 13만9265MVA(메가볼트암페어)다.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전력수요인 4만9397MW를 공급하려면 새로 7만7168MVA의 변압기 용량이 추가돼야 한다. 이는 현재 설치된 용량의 55.4% 규모다. 유 조사관은 “변압기 용량의 획기적 증설 없이 이렇게 많은 데이터센터의 건설과 운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난 6월 3일 정부는 2038년까지 신규 원자력발전소 3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새로 설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AI 확산에 따른 전력소비량 급증에 대응하려는 조치다. 하지만 기존 원전이나 신규 원전으로 거론되는 지역 모두 지방 바닷가에 위치해 있지만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되기 때문에 전기가 있다손 쳐도 공급망 문제는 난제로 남는다. 한국전력은 2008년 동해안 일대 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동해안 송전선로 구축 계획을 내놨지만, 여전히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전력 부족 위협에 시달리는 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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