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화 대비 일본 엔화 환율이 26일 한때 160엔을 넘었다. 일본 엔화의 가치가 1986년 12월 이후 38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일본 당국의 거듭되는 구두 개입과 환율 방어 노력에도 엔화의 가치가 추락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달러당 170엔 수준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날 오후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 환율은 한때 160.39엔까지 올랐다(엔화 가치는 하락). 달러당 엔화 환율은 지난 4월 말 한때 160엔을 넘은 적이 있지만, 일본 당국의 개입으로 곧 160엔 선 아래로 내려왔다. 이후 지난 두 달 동안 일본 외환 당국은 “24시간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등의 구두 개입과 함께, 9조7885억엔(약 85조원)을 투입해 160엔 선을 넘지 않게 했다.
25일엔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일 재무장관 회의 직후 발표한 공동 보도문에서 “양국 통화의 급격한 가치 하락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공유한다”며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에 적절한 조치를 계속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160엔 저지선이 다시 뚫린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관계자가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발언을 하면서 미국의 기준 금리 인하 시기가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해 엔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들이는 움직임이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앞서 25일 미셸 보우먼 연준 이사는 런던에서 한 연설에서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며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멈추거나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반등한다면 기준금리를 인상할 의향이 여전히 있다”고 언급했다고 CNBC 등은 보도했다.
시장은 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보우먼 이사의 발언을 올해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 발언이 알려진 이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표시하는 달러 인덱스는 상승세를 보였고, 일본 엔화 가치는 하락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올 들어 12.4% 하락했다. 최근 엔화 약세는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전망과 강달러 현상 때문이지만, 평가 절하의 속도가 다른 나라 통화보다 가파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엔화 약세가 지속돼 달러당 엔 환율이 더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미국과 일본 간 금리 격차가 현재의 엔화 약세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고 일본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는 한 엔저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미쓰이스미토모DS 자산운용 관계자 등을 인용해 장기적으로 엔화 환율이 달러당 170엔 수준으로 갈 수도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