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갓 스무살 때 일본 도쿄에 와서 6.6㎡(2평)짜리 야끼니쿠 가게를 열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세계 3위 경제 대국이었고, 아직 한국은 1인당 GDP에선 한참 아래였다. 이제는 도쿄 신주쿠에 작은 건물도 하나 확보하고, 야키니쿠집 21곳을 운영하고 있다. ‘자영업 도쿄 진출’로는 나름 성공한 셈이다.

이달초 고향인 제주에 가는 길에 인천공항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계산하려다 깜짝 놀랐다. 워낙 비싸서다. 제주에선 친구 서너명과 소주를 마시고 계산했을 때도 “대체 왜 이렇게 비싸지”라고 생각했다. 도쿄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일주일간 귀향때 쓴 영수증을 계산하는데, 금액을 몇번이나 다시 봤다. 일본내 여행과 비교해도 결코 싸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년전에는 한국은 뭐든 일본의 반값이었는데 말이다.

도쿄의 한국인들 사이에선 “한국이 20년전보다 2배는 부자가 됐긴 했는데, 물가도 2배는 비싸졌으니, 전보다 풍요로운건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한다. 반대로 일본은 20년전과 똑같지만, 물가도 그대로니 더 가난해지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이경민씨가 일본에서 차린 '야키니쿠 엔' 매장.

일본에서 태어난 내 아이들은 한국에서 택시를 타면, “운전사 인상이 무섭다”고 말한다. 목적지를 말해도 답을 안하는 경우도 많고, 얼굴색도 어둡기 때문이다. 한국 택시의 운전사와 대화는 대개 “경기도 안좋다” “정치가 문제다”와 같이 불만이 거의 전부다. 솔직히 일본 택시 운전사들이 표정도 밝고, 친절한 건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한국과 일본 택시 운전사의 임금과 처우를 얘기해준다. 매달 정해진 액수 이상의 월급을 받는 일본 운전사와 오늘 얼마를 벌어야 겨우 수입이 남는 한국 택시 운전사가 똑같이 친절하기는 어렵다고 말이다. 매일 10여시간씩 택시 운전하고도 매달 200만~300만원도 못 벌지도 모르는게 한국 택시 운전사의 현실이니 말이다.

서민에겐 가장 중요한 건 ‘외식비’일 것이다. 야키니쿠 점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입장에서 한국의 식당은 이해하기 어렵다. 7000~8000원짜리 점심을 시켜도, 반찬이 3~4가지씩 나온다. 남긴 반찬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가는데, 식·재료비와 요리·서빙·설거지 등 인건비를 생각하면 이게 모두 비용이다. 반찬만 없애도 음식 가격을 5000원까지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은 김치나 단무지를 시켜도, 추가 요금을 받는다. 박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일본 식당에선 점심 한끼 1000엔(약 8600원)으로도 충분하다. 일본 가게는 반찬보다는 메인 요리를 어떻게 맛있고, 값싸게 내놓을지만 고민한다.

물론 요즘 일본 도쿄도 물가 인상으로 서민의 주름살이 늘었다고 난리다. 예컨대 800~900엔 하던 ‘라멘(일본식 라면)’이 1000엔으로 가격을 올랐다는 것이다. 본래 ‘1000엔의 벽’이라고 했었는데 깨진 것이다. 하지만 신주쿠나 이케부쿠로에선 여전히 800엔짜리 라멘집이 적지 않다. 라면 하나만 내놓기 때문에 가격 인상을 덜 하고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냉면 가격이 일본 라멘보다 훨씬 많이 올랐는데, ‘냉면 한 그릇’ 시키면 딸려나오는 반찬을 없애고 가격을 유지하는게 낫지 않을까.

도쿄의 저녁 술자리는 대략 1인당 2500~3000엔 정도다. 꼬치구이집에서 맥주 한두잔 마시면 나오는 금액이다. 생선회를 먹으면 당연히 비싸지만, 서민 술자리는 그리 비싸지 않다. 친구들 서너명이 저녁을 겸해서 술 한잔 걸치곤 귀가한다. 각자 나눠 결제하며, 2차는 잘 안간다. 한국은 누군가가 1차를 모두 내고, 미안한 마음에 2차를 가면 다른 사람이 낸다. 그러다보면 점차 비싼 술집으로 옮기는 상황이 된다.

한국과 일본의 물가 차이는 결국 ‘남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일본인은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하고, 본인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서 산다. 세계에서 미슐랭 가게가 가장 많은 도시 중 한 곳이 도쿄라고들 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미슐랭’이 뭔지 잘 모를 뿐더러, 간 본 적 없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도쿄에선 부자도 인기있는 라멘집 앞에선 30~40분 줄을 선다. 물가란, 결국 본인이 수입에 맞게 살면 그만이지 않을까. 남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항상 까치발하는 삶에선 ‘가고 싶은 식당’ ‘사고 싶은 물건’이 항상 비쌀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구체적인 물가 상승률은 모르지만, 적어도 물가 상승 탓에 어려운 건 일본인보다 한국인일 것이다. 그 이유는 문화와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이경민씨가 일본에서 차린 '야키니쿠 엔' 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