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민은행이 시장 예상을 깨고 22일 사실상 기준 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 등 각종 장·단기 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중국의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 회의(3중전회)’가 끝난 직후 나온 조치다. 지난 2분기(4~6월)와 같은 경제성장률로는 올해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자, 경기 부양책을 꺼낸 것이다.
중국인민은행은 이날 5년물 LPR을 연 3.85%로, 1년물 LPR을 연 3.35%로 0.1%포인트씩 내렸다. 5년물 금리 인하는 5개월 만, 1년물 인하는 1년 만이다. LPR은 매월 주요 상업은행 20곳이 보고한 금리를 취합해 결정한다. 5년물은 통상 주택 담보 대출, 1년물은 신용 대출 같은 일반 대출 금리의 산정 기준이 되기 때문에 사실상 기준 금리로 불린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이달 LPR을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시장 전문가 36명 중 절반이 넘는 23명(64%)이 LPR 동결을 전망했다. 미국이 기준 금리를 인하하기 전 중국이 먼저 LPR을 인하한 점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위안화 약세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인민은행 측을 인용해 “이 같은 금리 인하는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려는 중국인민은행의 결의를 보여주며 올해의 성장 목표를 달성하려는 전체 회의의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소비, 생산, 투자 전방위 부진
전격적인 금리 인하가 필요할 만큼 최근 중국 정부가 받아 든 경제 성적표는 좋지 않다. 중국의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은 4.7%로 시장 전망치(5.1%)보다 크게 낮았다. 이 같은 추세라면 ‘5% 안팎’인 연간 성장 목표에 못 미칠 수 있다. 생산, 소비, 투자 모두 부진한 모양새다.
지난 몇 년 성장을 견인했던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가라앉고 있다. 중국의 6월 신규 주택 가격은 1년 전보다 4.5% 떨어졌다.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로, 5월(-3.9%)보다 낙폭이 커졌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중국 정부는 기업들의 제조업 투자를 유도해 왔지만 이조차 만만치 않다.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본토에 상장된 기업 4곳 중 1곳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 비율은 7%에 불과했다. 공급에 걸맞은 수요처가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중 갈등에 글로벌 수요처를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고, 내수도 부진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국의 지난달 소매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2022년 12월(-1.8%)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소비 촉진을 위해 오래된 자동차·가전을 교체할 경우 보조금을 주는 등 중국 당국이 각종 정책을 내놓았지만 소비자들의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고 있다.
금융시장에도 이상 지표들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달 말 중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사상 최저치로 내려왔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자 중국 지방은행들이 안전 자산인 국채를 대거 사들인 탓이다. 중국 정부는 낮은 국채 금리가 위안화 가치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상황이 반전되지 않고 있다.
◇“금리 인하는 빅뱅이 아니라 ‘리틀뱅’”
지난 18일 끝난 3중전회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소비세 지방정부 배분, 미분양 주택 국가 주도 구매, 농촌 토지 거래 제한 해제 등의 방안으로 변죽만 울리고 내수 부양 의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중국 운용사 핀포인트에셋 CEO 장즈웨이는 CNBC에 “이번 금리 인하로 중국 정부가 자국 경제에 대한 하향 압력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부동산 등을 대신할 신산업 육성, 미·중 갈등 속 공급망 확충 등의 구조 개혁 조치가 확대되지 않는다면 단기에 중국의 금리 인하가 내수 회복 등의 효과를 보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팀장은 “중국 경제는 부동산 개발, 수출에 의존해 성장해 온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다”며 “부동산 침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금리만 낮춘다고 내수가 회복되긴 어렵다”고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이번 금리 인하가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순 있겠지만 내수 진작 등 유의미한 효과를 내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3중전회 개혁이나 금리 인하는 시장이 원하는 ‘빅뱅(big bang)’은 아니다”라며 중국 당국의 경기 활성화 방침을 ‘리틀뱅(little bang)’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