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을 받는 카카오 창업주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지난 7월 22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을 이상적인 모델로 평가했던 건 카카오 임직원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가능성을 보이면 상장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혁신 모델을 한국에, 그리고 카카오에 이식시키려고 했다. 이 때문에 계열사의 자유도가 높았다. 네이버가 수직적이라면 카카오는 보다 수평적이었다. 규모가 커지면서 수혈된 대기업 출신 경력자들은 이런 카카오의 시스템에 깜짝 놀라곤 했다. 한 카카오 계열사의 직원은 “좋게 말하면 스타트업 같은 문화가 남아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마구잡이식으로 운영됐다”고 했다.

이런 시스템의 단점이 부각되며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된 사건이 최근 있었던 김 위원장의 구속이다. 지난 7월 23일 김 위원장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시세조종 의혹으로 구속됐다. 그는 지난 7월 18일 임시 그룹 협의회에서 “현재 받고 있는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불법 행위를 지시하거나 용인하지 않은 만큼, 결국 사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덩치 키우기’가 불러온 리스크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일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카카오가 지난해 2월 16~17일과 27~28일 사이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함께 약 2400억원을 동원해 553회에 걸쳐 SM엔터 주식을 고가에 매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경쟁이 과열되자 하이브의 공개 매수는 실패로 돌아갔고 SM 주식 39.87%를 확보한 카카오·카카오엔터가 최대 주주에 올랐다. 이후 하이브가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검찰의 카카오 수사가 시작됐다.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김 위원장이 시세조종 계획을 사전에 보고받고 승인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구속을 부른 SM엔터 인수는 이례적일 정도로 자본시장에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했던 사건이다. 카카오가 이렇게 공을 들였던 배경에는 ‘나스닥 상장’이 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2021년 당시 이진수 카카오엔터 대표는 ‘20조원’ 가치를 언급하며 미국 뉴욕 상장을 자신했다. 하지만 카카오 내 다른 계열사들이 잇따라 상장에 나서며 순서가 밀렸고 금리가 인상되고 상장 시장에 한파가 불어닥치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기업가치도 10조원으로 반토막났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티스트·음악 지식재산권(IP)을 많이 가지고 있는 SM은 기업가치를 올리기에 최적의 매물이었다. 게다가 투자자들의 엑시트도 고려해야 했다.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국부펀드(PIF)와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부터 약 1조2000억원을 투자받았는데 수년 내 상장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관해 카카오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자회사 상장이 문제가 됐던 당시 (상장을) 무리해서 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며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확인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앞서 카카오는 지난 7월 23일 “현재 상황이 안타까우나 정신아 CA협의체 공동의장을 중심으로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아직 상장하지 못한 카카오모빌리티도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는 중이다. 상장 시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기 위해 가맹택시 사업 매출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자회사인 케이엠솔루션을 통해 운수회사로부터 운임의 20%를 수수료로 받는데(가맹 계약), 광고 노출과 데이터 제공 등의 대가로 운수회사에 운임의 16~17%가량을 돌려준다(업무 제휴 계약). 지난해 7월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한 감리를 시작한 금감원은 가맹 계약과 업무 제휴 계약이 사실상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약 3%만 매출로 잡아야 하는데 상장을 노리고 몸집을 부풀리기 위해 20%를 받아 매출로 잡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알파벳은 구글과 유튜브 등의 굵직한 자회사를 가졌지만 주식시장에 거래되는 건 알파벳뿐이다. 최근 네이버웹툰(웹툰엔터테인먼트)을 나스닥에 상장한 네이버는 국내 증시에 상장한 자회사가 없다. 반면 카카오는 지난 2020년 카카오게임즈에 이어 2021년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등 자회사를 줄줄이 상장하면서 ‘쪼개기 상장’이란 비판을 받았다. 순번을 기다리던 카카오엔터, 카카오모빌리티 등은 상장을 앞두고 사법리스크로 발목이 잡혔다.

카카오가 무리한 방식으로 자회사 상장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모회사나 지배주주의 자금을 받지 않아도 신사업 도전이나 인수합병(M&A)이 가능하다. 카카오뱅크 초대 공동대표를 지낸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본적으로 자기 돈으로 회사를 만들고 주주를 모아야 하는데 카카오는 자기 돈 없이 쪼개기 상장이라는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일으켰다”며 “쪼개기 상장이 가지는 모회사와 자회사 간 이해충돌 문제는 카카오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본시장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카카오 관계자는 “이미 커진 카카오가 더 성장하기 위해선 기업공개(IPO)나 M&A를 할 수밖에 없는데 IPO가 어려우니 SM엔터를 인수하고 창동 아레나 건립도 전투적으로 한 것”이라며 “카카오가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과정에서 ‘법 불감증’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자회사 상장 경쟁의 이면에는 임직원들의 강력한 동기가 깔려 있다. 상장을 통한 이익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톡옵션의 힘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카오가 IPO를 통해 구성원들이 이익을 공유하는 전략을 폈다”고 설명했다. “목표가 상장이니 빚을 내더라도 M&A를 통해 덩치를 키우려 한다.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전략이다. 동시에 김범수 위원장을 중심으로 내부 충성 경쟁을 하도록 만드는 효과도 있다.”

‘상장’과 ‘장기 비전 부재’의 상관관계

김 위원장이 “100인의 최고경영자(CEO)를 키우겠다”고 말한 건 카카오 내에서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겨지는 명언이다. 그 뜻 그대로 풀이하면 100명의 자율경영 체제인 셈이다. 이런 시스템은 카카오의 몸집을 빨리 불렸지만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을 사법리스크로 이끈 독이 됐다. 위 교수는 “어느 순간부터 계열사들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각 계열사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자회사 내부 상황과 리스크를 파악하기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4월 기준 147개였던 카카오 계열사는 현재 124개로 줄었다. 하지만 카카오는 지난 2022년 계열사를 100개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카오 계열사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카카오를 중심으로 기업을 합병하고 인공지능(AI)을 도입해서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장기적 비전 부재의 원인조차 이런 상장 문화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 카카오 전직 임원은 “재무적 성과나 상장에 집중하다 보면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사업은 후순위로 밀린다. 네이버와 달리 카카오의 AI 성적이 부진한 건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