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위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의 중심에 있는 큐텐(싱가포르 법인) 구영배 대표는 2022년 2월 한국 법인 ‘큐텐코리아’를 유한책임회사로 설립했다. 유한책임회사는 외부감사를 받지 않으며 경영 실적 공시 의무도 없다. 당시 법인 등기에 따르면 큐텐코리아의 대표업무집행자는 류광진 현 티몬 대표였다. 한국 법인을 설립한 큐텐은 그해 9월 티몬에 이어 2023년 인터파크커머스와 위메프를 인수하는 등 무리하게 몸집을 불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외부감사 대상 회사는 총 4만1658개이며 이 중 주식회사가 4만1032개, 유한회사가 626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지난해까지 감사보고서 공시 대상이 아니었던 큐텐코리아도 포함됐다. 지난해 11월 큐텐코리아가 유한책임회사에서 주식회사로 조직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주간조선 취재 결과 큐텐코리아는 지난 2월 삼일회계법인과 회계감사 계약을 맺고 금융감독원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외감법 시행 후 유한책임회사 급증
원래 유한책임회사는 고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초기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 벤처기업이나 사모투자펀드 등에 적합한 기업 유형이다. 주식회사나 유한회사보다 간편하고 편리하게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2012년 국내에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2018년 11월부터 시행된 ‘신(新)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외부감사 대상이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넓어지면서 외국계 대형 기업의 한국 법인이 유한책임회사로 조직을 변경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유한회사와 유한책임회사는 유사하지만, 유한회사는 정관을 변경하려면 사원 총회 결의를 거쳐야 하고 유한책임회사는 모든 사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유한회사였던 아마존웹서비시즈코리아, 록시땅코리아,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등이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현행 상법상 유한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의 조직 변경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한회사에서 주식회사를 거쳐 유한책임회사로의 변경은 가능하다. 아마존웹서비시즈코리아는 2020년 8월 27일 주식회사를 거쳐 당해 10월 6일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록시땅코리아도 2019년 11월 8일 주식회사로 변경하고, 2020년 1월 9일 유한책임회사가 됐다.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는 2019년 11월 19일 주식회사로 전환한 뒤 한 달여 만에(12월 24일) 유한책임회사로 법인 형태를 바꿨다.
유한회사가 외부감사 대상이 아니던 2014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 변경했던 구찌코리아는 신외감법이 시행된 이후인 2020년 9월 18일 주식회사로 전환한 뒤 당해 11월 24일 유한책임회사로 조직 변경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2016년), 아디다스코리아(2017년), 이베이코리아(2019년)도 각각 주식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중국계 이커머스 플랫폼 테무는 지난 2월 한국 법인 ‘웨일코코리아’를 유한책임회사로 설립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6년 유한책임회사의 설립등기 건수에서 해산등기 건수를 뺀 순증가 건수는 2015년(149건) 대비 126.8% 증가한 338건이었다. 2016년은 신외감법 개정 논의가 시작된 직후다. 이후 2017년(313건), 2018년(353건), 2019년(405건), 2020년(478건)으로 순증가 건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유한회사에 대한 외부감사가 의무화된 이후 유한책임회사의 수는 내국 법인 기준 1781개(2019년)에서 3413개(2024년 8월)로 91.6% 증가했다. 2024년 8월 기준 외국 법인은 109개(2019년)에서 84.4% 증가한 201개였다.
업계에서는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이 기업 형태를 바꿔 외부 감사 의무를 회피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유한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바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고 주식회사를 한 번 거쳐서 바뀌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회사 형태를 전환하는 것은 외감 대상에서 빠지려는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가 발간하는 ‘회계·세무와 감사연구’(2022년 12월)에 실린 논문 ‘정책적 관점에서 살펴본 신외감법의 도입과 유한책임회사’도 “외국계 기업들이 유한책임회사로 조직을 변경해 외부감사를 회피한다면 감독기관이 해당 기업을 관리할 방법이 없어진다”며 “이는 국내의 회계투명성을 저하할 뿐만 아니라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대규모 배당을 통해 국외로 반출하더라도 파악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경영 및 회계 처리상의 투명성을 높여 제2의 티메프 사태 발생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선 자산, 매출액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유한책임회사도 외부감사를 받게 하는 내용의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대 국회에서 양정숙 당시 의원이 이 같은 내용의 외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제2티메프 사태 막으려면 외감법 개정해야
지난 10월 10일 국정감사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에게 “외국계 기업의 한국 법인이 유한책임회사로 조직형태를 변경하는 것은 국내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대규모 배당을 통해 해외로 빼돌리기 용이하고, 해외 본사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회피하려는 목적”이라며 “제도적 개선 장치가 필요한 것 아니냐”라고 질의한 김상훈 의원은 외부감사 적용 대상으로 유한책임회사를 포함하는 내용의 외감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신외감법 시행 이후 외국계 회사 국내 법인들의 유한책임회사로의 전환이 다수 발생했고, 티메프 사태를 일으킨 큐텐의 국내 법인도 비(非)감사대상인 유한책임회사로 세워졌다”며 “일정 요건을 갖춘 유한책임회사도 외부감사 대상에 포함하도록 해 경영 및 회계 처리상의 투명성을 높이고 티메프 사태 재발 가능성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주식회사에 준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가 교묘하게 형태를 바꿔 규제를 회피하면 안 된다”며 “지난 국회에서 나온 유한책임회사까지 외부감사 대상을 늘리는 외감법 개정안에 대해 금감원은 ‘수용’ 의견이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해외 주요국에선 회사 형태와 관계없이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에 대해 외부감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에선 유한책임회사가 외부감사 대상에 포함된다. 앞선 논문을 쓴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외에선 매출액, 자산 총액, 종업원 수 등의 계량적 숫자가 규제기준이 된다”며 “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가 많을수록 법률적 규제가 강하게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 교수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외감법을 폐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외감법 대상에서 빠져나가려고 의도적으로 조직 변경하는 기업과 원래 법 취지에 맞게 유한책임회사를 도입한 기업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형태를 형식적 법률로 나눠서 규제하다 보니까 지금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같은 구분이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